7화. 스물다섯, 여름

by 김귀자

스물다섯, 여름이었다.
진급과 함께 다른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다.

혼자 사는 방은 작았지만 낯설고 조용했다.
주방도 변변치 않았고, 화장실은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곳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공간이었다.

부서배치는 민원계다.
호적, 병사, 주민등록, 전산보조원 사이에 앉아
그녀는 제증명 업무를 맡았다.

처음 주민등록 업무를 맡았을 때, 가장 떨렸던 것은
신규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러 온 학생들의 지문을 찍는 일이었다.
손이 떨려 열 손가락 지문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계장님이 조용히 도와주었다.
옆자리 여직원이 연습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때의 떨림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시절의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시험 같았다.

주민등록증에 인적사항을 적을 때도 손에 땀이 났다.
한자가 서툴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전산 메뉴를 열어보고,
편람을 뒤적이며, 선임에게 전화를 걸어 배웠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다.
하지만 노력은 생소함을 익숙함으로 바꾼다.
그녀는 그렇게 일을 배워갔다.

민원창구에 앉아 있으면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종종 찾아왔다.
그들에게 서류를 대신 써주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민원창구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정부의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일은 서서히 손에 익었지만
마음은 늘 어딘가 허전했다.
처음으로 독립한 삶은 자유로웠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 무렵, 면사무소에 자주 오던 민원인의 부인이
볼링을 함께 치자고 권했다.
그렇게 작은 볼링클럽이 만들어졌다.

그를 처음 만난 것도 그곳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동호회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말이 많지 않았고, 과하지도 않았다.
스카치로 편을 먹고 치던 날,
스트라이크를 치고 서로 손을 가볍게 부딪히며 웃었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는 세 살 어렸지만
어른인 척하는 태도가 있었다.
낚시를 가자고 먼저 제안했고,
라면을 끓여주며 아무렇지 않게 챙겼다.

연애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고,
그렇다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졌다.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속초를 가고,
볼링장을 들락거리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어느새 전화는 매일 이어졌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들,
그저 그런 일상의 대화였다.

그녀는 그 시간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편했다.

그러나 편안함은
조용히 마음을 깊게 만든다.

자취 생활도 자리를 잡았다.
월셋방을 옮기고, 작은 냉장고를 들이고,
들꽃을 꺾어 병에 꽂아두었다.
친구들이 놀러 와 자고 가는 날도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그녀의 스물다섯은 빠르게 흘러갔다.

일에 지치면 볼링장을 갔고,
볼링이 끝나면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웠다.

그와의 관계는 사랑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어딘가 그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2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직장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너무 멀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거리였다.

그가 내려간 뒤에도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가끔 올라왔고,
어느 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고향에 왔다.

그때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어머니와 마주했다.

어머니는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얘는 일요일엔 교회 가야 하고,할 줄 아는 것도 많지 않다.”

막내딸이 고생할까 봐, 딸 대신 말을 해주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날 이후,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겼다.

서로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연락이 뜸해졌고,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느 날, 그가 하얀 승용차를 타고 찾아왔다.

별것 아닌 말다툼이 있었고,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붙잡지 않았다.

차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 바라보았다.

직접적으로 헤어지자는 말은 끝내 없었다.

그저 그렇게, 멀어졌다.

몇 달 뒤, 전화가 한 통 왔다.

“잘 지내냐.”

짧은 안부였다.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야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다시 만나자고 했다면,
아마 만나러 갔을 것이다.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그녀는
일과 삶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민원창구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전산 화면을 열어 업무를 처리하고,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사랑보다 앞에 있었던 것은 삶이었다.

그리고 스물 일곱의 가을은

아프지만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는
그저,
그로 남았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6화6. 그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