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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Aug 04. 2024

식당의 탄생

46. 거센 비 헤치고 온 당신

  지루했던 장마도 그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되었네요(사람들이 사라진 서울에는 무더위만 남았어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저희처럼 평범한 식당의 경우에는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한가한 시기랍니다. 식당의 비수기가 찾아온 거죠. 인근 대학이 방학(여름과 겨울)에 들어가면 손님의 절반이 줄어듭니다. 여름 장마철과 휴가철이 되면 설상가상입니다. 비수기의 절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나날이 이어지면 식당 주인은 슬럼프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그럴수록 힘을 내어 모처럼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식당 안팎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이겠지요.


  그러나 태풍이 몰려와 거센 폭풍우라도 몰아치는 날을 맞이하면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적이 끊긴 식당에도 에어컨은 변함없이 켜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비가 내리는 날은 짜장면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어제 비가 내려 짜장면을 먹었는데 오늘 또 비가 내린다면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을 찾았습니다. 내일 또 비가 내린다면? 할 수 없이 우산을 펴야 합니다.


  요즘에는 배달 음식도 다양하고 편의점 도시락도 제법 맛이 훌륭하기에 비를 피하는 방법은 옛날보다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그에 비례하여 식당 주인은 비가 내리는 날이 무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럼 이대로 비 오는 날은 손님이 없는 날로 접어 두고 말아야 할까요?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속 편할까요? 그건 아니지요. 비 오는 날에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가고 인건비 또한 줄어드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비가 내릴 때마다 매번 메뉴를 바꾸어 비가 오면 생각나는 파전이나 칼국수를 팔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식당 주인은 환장하고 맙니다. 해결책은 하나입니다. 손님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손님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 물론 쉽지 않습니다. 6년 동안 수많은 방법을 궁리하고 궁리하였지만 제대로 먹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거겠죠.


  도대체 비 오는 날, 손님을 부르는 묘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비 오는 날마다 가격 할인을 할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비 오던 어느 날의 일기를 들추어 봅니다. 그저 고민의 연속입니다.


20210211 목

비가 내리는 날이면 손님이 뜸하다. 장사가 죽 쑤는 날이다. 어떻게 하면 손님을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벤트를 하면 손님이 오실까? 생각 생각 생각을 해야 한다. 회원 고객에게는 비 오는 날 이벤트 안내 문자를 보낼 수 있다. 비가 올수록 손님이 많아지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1. 비가 내릴 때면 일기예보를 보고 사전에 문자 보내기 : 정기적, 비정기적 이벤트 모두 가능

2. 비가 내리면 꼭 하는 이벤트 알리기 : 고객 회원에게 우선적으로 문자를 보내야 하지만 이것이 루틴화하여 일반 손님들도 알게 되면 이후에는 비가 오는 날의 상징적 이벤트로 굳어져 널리 알려지고 이를 통해 손님을 부를 수 있다.

3. 비 오는 날만 생기는 메뉴 만들기 : 평소에는 일반 메뉴에 없다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꼭 생기는 메뉴 만들기. 즉,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 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비 오는 날 먹고 싶어 하고 생각나는 메뉴를 비 오는 날만 판매하기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음식 1) 1위. 전요리(파전, 김치전 등) 2) 2위. 맑은 국물요리(수제비, 칼국수, 어묵탕 등) 3) 3위. 고기요리. 4) 4위. 얼큰 국물요리(라면, 부대찌개, 김치찌개)

비 오는 날 메뉴

새로운 메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작은 가게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하다 마는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작은 가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큰 가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식당의 규모를 감안하여 일을 벌여야 한다. 하다 그만두면 아니 한만 못하다. 지금의 나 자신의 분수를 깨달아야 한다. 가능하면 작은 가게가 재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몸집이 크고 주방장이 따로 있는 가게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

1. 맑은 국물의 수제비

2. 매운 국물의 짬뽕


20210218 목

당신은 비 오는 날의 냄새를 아나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눅눅하고 습기 찬 공기 속에 비와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흙냄새를 기억하시나요? 창문밖으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나를 팽팽히 끌어당기고 있던 삶의 긴장이 비와 함께 사라지는 날, 이런 날에는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차 한 잔이 위로가 되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비 오는 날에는 당신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우산 하나 들고 편한 마음과 편한 복장으로 저희 따뜻한 식당을 찾아주세요. 당신을 위한 특별한 음식과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20210907 화

도대체 어제처럼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 어떻게 해야 손님이 올 수 있게 만들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질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비 오는 날 손님들이 몰려오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


20210929 수

비가 내린다. 그래서 또 걱정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손님이 없을까…


20211109 화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점심 장사는 아예 꽝이었다. 요즘 점심 장사가 제법 잘 되는 편인데 어제 매출을 보면 정말 같은 가게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저녁 손님이 평소보다 많아 조금은 만회할 수 있었다. 식당 장사 정말 어렵다.


20211110 수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비가 내리면서 영업은 엉망이 되었다. 참 어렵다. 이 음식 장사란 것. 참 힘들다. 재미도 없다. 그 핑계로 술을 퍼마셨다. 핑계 대지 말고 그냥 놀자. 술 마시고 알코올에 의존하지 말고 그냥 놀고 쉬자.





  비가 내려도 세찬 비를 헤치고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바보입니다. 세찬 비 헤치고 온 손님보다는 발길을 끊은 손님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저는 정말 멍청한 사람입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오게 만드는 마케팅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빗속을 뚫고 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었습니다. 세찬 헤치고 당신,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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