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졸이야.
그런데 지금껏 살며 고졸학력을 단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어. 1979년생은 원래대로라면 98학번이 일반적일 거야. 하지만 스무 살이 됐어도 중3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학교에서의 배움, 교재를 펼쳐하는 공부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
1997년 첫 번째 수능시험은 아예 응시조차 하지 않았고 1998년 1tym 1집 데뷔를 며칠 앞두고 치른 두 번째 수능은 거의 빵 점에 가까운 결과를 받았어. 그리고서 1999년 세 번째 수능 때는 아주 조금 공부를 한 덕에 그나마 중간 위 어디쯤 점수를 받을 수 있었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 도곡역 근처 중앙사대부속 고등학교에서 3번째 수능을 봤던 기억이...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를 00학번으로 입학한 뒤 그 이듬해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 음악학과에 01학번으로 재입학을 했어. 1학년 때는 의욕을 갖고 나름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 동기생들이랑 학교 구내식당 가서 밥도 잘 먹고 정지훈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ㅋ그렇게 1학년을 무난히 잘 보내고 2학년이 됐을 때 나에게 어떤 일이 하나 생겼어.
그 배경부터 우선 말해볼게.
그때 당시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는 주임교수가 두 분이 계셨거든. 그중 교수 한 분은 러시아에서 공부를 한 유학파였고. 그래서일까 그 교수님은 클래식 음악을 늘 최고라 여기셨어. 그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도 수업시간에 자주 내비치시고 말이야. 교수의 그와 같은 잦은 어필은 어느샌가 학생들의 반감을 사기 시작했어. 그리고 해당 교수님이 과연 포스트모던 음악학과가 탐구하고 지향하는 음악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능력이 있는지 그 자질에 대해서도 의심을 불러일으켰어.
한편 그 교수님은 은근히 나를 까막눈 취급하며 무시하는 듯한 말도 곧잘 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좋은 감정이 당연히 없었어. 그러던 여름 방학 전 어느 날. 기말 실기 평가 때 나는 자작곡을 담은 CD를 제출했어. 그때 제출한 곡은 당시 미발표곡이던 "서로가 서로를"이었고.
근데 교수님이 유독 나만 콕 집어서 CD로 제출한 자작곡의 멜로디를 모두가 보는 곳 앞에 나와 칠판 악보에다 그려보라는 거야. 내가 악보를 그리고 읽는 게 서툰 걸 분명히 알면서도 말이야. 학생들 앞에서 내게 개망신을 주고 싶었나 봐.
아니꼽던 감정의 줄기가 안 그래도 전부터 서서히 뻗어 나오고 있음을 느꼈을 그때. 그 일을 겪고 나니 그 줄기는 순식간에 담쟁이덩굴처럼 자라나 교수와 학교에 대한 나의 호감을 뒤덮고서는 죄다 쥐어뜯어버리더라고.
그 후 2학년 2학기때 원타임 스케줄과 앨범 작업 등의 이유로 휴학을 신청했어. 휴학은 원타임 마지막 5집 앨범이 나온 2005년까지 내리 3년 연속 이어졌고.
솔직히 휴학계를 제출하고 난 후로는 학교에 관심도 없고 다시 돌아갈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내 학적이 어떻게 되던 알 바도 아니었어.
치기 어린 철딱서니는 20대를 제 잘난 맛에 취해 살기 바빴고 30대를 거치며 만만하지 않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조금은 깨닫게 됐지.
40대 초중반을 거치며 스스로의 수준과 가치를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이 세상에는 나보다 못난 사람보다 잘난 사람이 몇 제곱 값보다 더 많고 또한 나는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그저 미성숙하고 부족한 수준의 인간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어.
한 시절 때의 과대망상 속 내 가치.
저 터무니없는 과다한 값을 절반 이하로 후려쳐 비로소 실제와 가깝게 인식하게 된 현재의 내 가치.
저 서로 다른 두 값의 간극에서 오는 어색함, 허무함, 괴리감, 혼동 이런 것들을 다듬고 버리며 인정하고 눈떠보니 어느덧 40대 후반인 지금이네.
진부하고 뻔한 어른들의 잔소리가 결국 진리였고 진짜였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너무 늦게 깨달았지.
잠깐 샛길로 이야기를 흘리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의사 선생님, 법조인 분들을 뵐 때면 늘 존경심을 표하며 정중한 인사를 드려. 그분들은 시기를 미루거나 놓치지 않고 정확히 해야 할 시점에 공부를 하셨거든. 그것도 그냥도 아닌 열심히. 낙숫물로 언젠가 바위를 뚫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묵묵히 공부하여 일궈내신 그분들의 격조 높은 삶에서 나는 늘 경외감을 느껴.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인사를 드리는 거야.
자 다시 원래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달콤한 감상에 젖는 걸 제일 븅신 같은 행동으로 여겨. 다들 알지? 되돌릴 수 없는 한 때 영광에 사로잡혀 실실 웃음 짓는 행동은 마치 멀티탭 코드를 멀티탭 자체에 꽂고 멀티탭의 전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실실 웃는 멍청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그런데 지나간 일 중 어떤 하나의 생각이 자꾸 내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유발하며 날 괴롭혔어. 그게 어떤 생각이냐면 "내가 제도권 안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그 중요한 시기에 어째서 공부를 등한시하고 그렇게나 게을리했을까" 이거야.
지나간 건 되돌릴 수 없는 죄다 쓸데없는 거라고 믿는 내가 한참도 더 지난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자꾸 자책하고 집착하는데 이 생각에 한 번 매몰되면 늘 멍 때리듯 가만히 있게 되더라고...
곧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고 여기서 더 늦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어. 그동안 어렴풋하게 떠올리기만 한 나의 다음 할 일, 그걸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장 내게 어떤 게 필요한지 또 뭘 해야 하는지 도식화해서 따져보니 답을 찾았어.
"학사 학위"
난 저게 반드시 필요한데 그렇다고 47살에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를 엄두는 솔직히 나지 않았거든. 그래서 큰 용기를 내어 작년 11월에 원래 다니던 경희대학교에 재입학 신청서를 제출했어. 23년 만에...
신청서를 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2005년도에 3년 연속 휴학으로 내 학적은 제적되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의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강사가 나보다 서너 학번 아래인 후배라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새삼스럽지만 만일 내 재입학 신청이 허락된다면 난 01학번으로서 06년생인 25학번들과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
마지막 세 번째가 제일 께름칙했지만 어쨌든 제출한 신청서가 통과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어. 그리고 앞으로의 스텝을 내 현실과 어떻게 타협시켜 밟아나가야 할지 구체적인 고민도 시작됐지.
현업으로 삼은 음악을 그만둔 지가 벌써 15년이나 됐고 또한 앞으로도 내가 음악을 다시 현업 삼을 일도 없을 테고... 아무리 학사가 필요하다지만 곧 50인 이 나이에 낮에는 자식 뻘되는 학생들과 부대끼며 음대 다니고 밤에는 이자카야에서 닭꼬치 굽고... 이렇게 과연 2년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위에서 밝힌 것들은 다 지엽적인 고민일 뿐이었어.
본질적 근본적 고민의 해결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끝에 학교 측에 연락을 해서 조심스레 문의를 했지.
"저... 혹시 재입학이나 복학을 전과(轉科)해서 신청할 수 있나요?
"답변은 전과불가능"
내게는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답을 듣자마자 그냥 재입학 신청 취소시켜 달라는 말과 함께 문의통화를 끝냈어. 나는 음대가 아닌 일어일문학과로의 전과를 희망했지만 저게 불가능하다고 하니 나머지 지엽적 고민들은 자연스레 사라졌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경로를 통해 해결책을 수소문했고 드디어 운 좋게 방법을 하나 찾게 됐어.
한국사이버외대...
그곳을 먼저 졸업한 나와 친한 동생이 알려준 덕택에 작년 12월 입학신청서를 제출했지. 내 인생에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도전일 것 같은데 그 도전의 첫걸음 시도 결과가 어제 받은 "합격" 발표 소식이야.
이로서 나는 올해 3월에 다시 늦깎이 대학교 1학년 생이 돼.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내게 사이버대학교는 최선의 선택지였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이자카야를 운영하며 집이던 매장이던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일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고 "계절학기"까지 수강하면 3년 만에도 학사학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데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았고.ㅋ
자~! 내가 왜 학사에 눈독을 들이는지 이유를 밝히면 이 글을 더 쓸 이유도 없어.
나는 대학원 진학이 목표야.
대학원 시스템에 대해 지금은 아직 잘 몰라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는 일본어, 일어일문과 관련된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손에 넣을 거고 그다음 박사학위 취득을 최종적 목표로 정했어. 최소 앞으로 7~8년은 걸리겠지? 내가 음악으로는 끝을 못 봤지만 일본어 공부로는 뭐가 됐던 끝장을 볼 각오거든.
더 이상 여기저기 기웃대며 잔재주나 배울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 내겐. 우선 나는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에 현업인 이자카야 운영을 게을리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닭꼬치나 구우면서 살 생각 또한 전혀 없어.
분명 더 나은 모습의 내 인생 다음 페이지가 있을 거라 믿어. 나의 정직한 노력과 집념은 언젠가는 지금의 페이지를 반드시 넘겨 내가 원하는 스토리가 적힌 삶의 다음 페이지를 나로 하여금 꼭 읽게 만들 거야.
-48살 늦깎이 대학교 1학년 생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