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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l 21. 2022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다.

 - 에드바르 뭉크 <태양> 

우리는 현재를 산다. 그 현재는 중심에 항상 내가 있다. 나에게 오는 모든 시간은 과거다. 미래도 과거로 온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은 엄청난 과거의 시간이다. 바로 앞에 있는 친구도 동시로 느껴지지만 아주 짧은 과거다. 더 혼란스러운 점은 우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살이다. 우주에는 많은 시간이 공존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아빠와 늙은 딸이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와 미래와 공존할 수 있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서는 시간이 얽혀 있다. 과학자는 시간을 정확히 정의 내리지 못한다. 여전히 시간은 많은 과학자가 밝히고 싶어 하는 연구 대상이다. 


뭉크의 <태양>은 해돋이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희망 가득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 모든 이에게 희망의 햇살을 흩뿌리고 있다. 표현주의 작가인 뭉크는 <절규>, <병든 소녀>, <우울> 등 늘 죽음이 도사리는 삶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고흐의 작품과 그의 생애를 접하고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그가 어떻게 희망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지에 큰 감명을 받는다. 그 영향으로 탄생한 <태양(The Sun)>은 희망의 크기만큼 거대한 크기로 그려졌다. 


철학 영역에서 시간은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행과 또 하나는 매일이 반복되는 순환이다. 우리 삶은 태어나 죽음이라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지나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해는 떠오르고 진다는 점에서는 시간은 반복된다. 과거 대통령 후보의 말처럼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늘 그 모양 그 꼴로 반복된다. 니체는 영원 회귀로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반복한다고 설명한다. 


교사의 시간은 학생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흐른다. 학생 시간보다 늘 느리다. 학생의 변화는 너무 빨라 교사가 같은 경기를 뛰어서는 그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교사는 학생과 같이 경쟁해서는 안된다. 교사는 태양처럼 세상을 넓게 바라봐야 한다. 학생이 가는 길을 밝게 비추고 있어야 한다. 갈림길에서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교사가 학생을 감당할 수 있는 기본은 기다림 일지 모른다. 학생을 믿고 태양처럼 한결같이 따뜻한 시선으로만 학생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업보 일지 모른다.  


교사는 인간의 시간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교사는 학생의 미래를 위해 과거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과거는 학생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가끔은 학생을 따라잡기 위해 성급하게 나아가지 말자.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정지된 시간을 가지자.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학생을 돌리기 위해 따라가도 학생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갈림길에서 미리 기다릴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모두는 자기 시간을 가진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 새 시대 새로운 교사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까? 새 시대 새 희망을 담은 큰 태양이 필요하다.


< 태양 (Sun) >

예술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년~1944년)

국적: 노르웨이

제작시기: 1910년~1913년

크기: 455×780cm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Universitetet i 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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