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지 몇 달이 지났다. 집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은 언제나 답답함을 동반했다. 작은 방,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끊임없이 짓누르는 생각들. 아내는 묵묵히 출근했고, 딸은 학교에 갔다. 나는 혼자 남아 새로운 동네를 걸었다. 낯선 골목을 지나며 ‘여기에서의 생활도 언젠가는 익숙해질까?’ 생각했지만, 아직은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탁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간판이 삐걱대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멈춘 내 발걸음.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곳에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탁구장 내부는 오래된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탁구대들은 모서리가 까진 것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이신가요?" 관장이었다. 중년의 남자, 주름진 얼굴에 느긋한 미소를 띤 그는 친절하게 나를 반겼다. "탁구 배우러 오셨어요?"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배우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그 질문에 넘어갔다.
탁구 기계가 공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라켓을 들고 그 공을 맞히려 애썼다. 하지만 공은 내 의지와 달리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공은 벽을 향해 달렸고, 나는 그 공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발이 바닥을 쓸며 내는 소리와,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내 몸이 기계에 휘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땀이 흐를수록, 묘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탁구 기계는 끊임없이 공을 던졌고, 나는 그 공들을 맞히려 계속 애썼다. 실패와 좌절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공을 맞히고 못 맞히고는 그저 상황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땀을 흘리며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탁구장에 자주 가기 시작했다. 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자주 오시네요." 나는 별다른 답 없이 라켓을 들었다. 탁구가 내 인생을 변화시킨 건 아니었다. 그저 공을 치고, 땀을 흘리며, 그 순간만큼은 내 생각을 덜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관장이 물었다. "실력이 좀 나아지셨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아진 건 내 탁구 실력이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 상태였다. 공을 맞히든 못 맞히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내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탁구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딸이 종종 물었다. "아빠, 탁구 잘 쳐?"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 잘 못 쳐." 딸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묘하게 무언가가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탁구장에서 느끼던 해방감과는 달리, 가족과의 순간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탁구장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림자가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탁구장에서 잠시 잊고 있던, 무언가를 놓친 기분.
내가 정말로 싸워야 할 상대는 그 기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