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춘풍대아, 봄바람처럼 스며드는 강의

[휴머니튜드 강의를 하며]

by 너울

가끔 책 속 문장을 만나면, 지금 내 강의의 방향을 점검할 수 있는 거울이 됩니다.

최근 집필한 『간호사, 다시 나를 돌보는 시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교재를 따라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은 언제나 변수가 가득합니다. 교재대로 했는데도 어르신은 여전히 식사를 거부하고, 산책을 권해도 “나가기 싫다”며 이불을 덮어버리십니다. 준비한 미소와 외워둔 사례가 단 한 마디에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교과서는 공통점을 모아 만든 책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의 글귀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나 돌봄은 기술 이전에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휴머니튜드 강사이자 전문가이지만, 현장에서는 늘 다짐합니다. 겸손해야 한다. 돌봄 앞에서 잔잔해야 한다. 왜냐하면 늘 이런 물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치매 어르신을 직접 돌봐 보셨습니까?”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강의의 방향을 점검하는 일은 제게 당연한 과제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으며 다시 되새깁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이다. 이는 논쟁이 아니라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춘풍대아(春風大雅)한 감화로 나타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강사의 역할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닙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회를 건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일입니다.
객관화, 자기 점검, 자기 검열.


버릴 것과 붙들어야 할 것을 구별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나간 방법에 얽매이지 말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용기. 쉽지는 않지만 나를 3인칭으로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보아야 문제도 좁아지고 얕아집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춘풍대아.”


급격한 열풍도, 차가운 바람도 아닌 봄의 따스한 바람. 어느새 스며들어 마음을 젖게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사입니다. 내 기분이 좋으면 강의도 풀려 나갑니다. 그래서 스스로 감정의 안전지대를 지켜야 합니다. 존중이라는 이름의 작은 노력이 관계의 초석이 되지요. 그 존중이 자연스러워질 만큼 숙달될 때 비로소 타인에게 전달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강의에서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억지로라도 더 웃으려 합니다. 강의 후 입가와 턱이 얼얼해져도, 그 고통은 누군가와 함께 웃고 감화된 시간이었음을 증명합니다.

휴머니튜드 강사 김옥수를 따라 스며드는 시간, 그 끝에는 결국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존중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비록 치매라는 질병이 가로막더라도, 우리는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지식을 쌓는 강의가 아니라, 존중을 남기는 강의. 그것이 제가 꿈꾸는 춘풍대아입니다.

keyword
이전 03화스스로를 간추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