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능이 있었습니다. 수능이라는 글자만으로도 긴장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현 고2, 두 달이 지나면 고3이 되는 저의 큰딸 역시 그중 한 사람입니다. 딸은 제게 해맑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이제 365일 남았어요.”
고3 수험생 엄마도 같이 수험생이라는데... 저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수능을 본 세대이고, 수능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오며 펑펑 울었던 그날의 꿈에서 벗어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45살의 수능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 욕심 많은 꼬맹이로 자라며 공부가 인생 전부처럼 살았죠. 도시로 나가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부족했을까요? 아니면 방법이 달랐을까요?
수능으로 인해 저만의 한계가 정해졌고, 그 한계에 굴복하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36년이 지난 지금, “수능” 은 저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그저 인생에서 건너야 할 하나의 관문이었을 뿐이지, 제 삶의 한계선을 영원히 그어내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거기까지 바라볼 수 없었던 무지함과 연약함이 만든 억울함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제 예비 수험생에게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 해줄 말이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저는 딸의 불안함과 걱정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엄마여야 하니까요. 그러나 엄마의 역할에만 머물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생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더욱이 제가 걸었던 그 길을 걸어보겠다는 용기를 낸 딸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대학 간판의 종류에 따라 만나고 겪는 경험이 달라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사실조차 부정할 수는 없으나, 결국 시간이 걸릴 뿐 되고자, 하고자 하는 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지금은 압니다.
지금 점수로는 어느 지역의 어느 대학교 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딸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학과를 바꿔야 하나, 학교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흔들리는 그 마음을 잡아주는 것은 오직 흔들림을 끌어안을 용기뿐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놓고 불안하고 걱정한다고 오늘 당장의 현실이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반드시 대학은 가게 되어 있어. 너는 대학을 갈 생각이니까. 큰 변동이 없다면 학과도 정해진 곳을 가게 될 거야. 지역과 학교만 달라질 뿐이잖아. 그런데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걱정과 불안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냐가 될 거야.”
예비 고3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조금 더 현실성을 더해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재우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상에 앉아 수학 한 문제를 풀어내는 시간, 영어 단어 하나를 암기하는 노력이다. 아주 작은 1점 같지만, 그 1점이 너의 선택을 달리 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거야.”
딸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나 역시도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된다는 보장을 놓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주어진 강의에 최선을 담는 시간, 좋은 온라인 학습을 위해 작성된 스토리보드 대본을 자연스럽게 숙지하는 시간, 나를 홍보하는 SNS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 시간, 유튜브 영상 제작을 위한 시간.
단 1분이라도, 그 시간이 저의 미래를 바꾼다는 것을 믿습니다.
딸의 365일과 저의 1분은 다르지 않습니다. 딸의 작은 1점이 선택지를 늘리듯, 저의 1분은 제 삶의 지평을 넓히는 '노력의 적립금'이 되어줄 것입니다.
미래의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비밀은, 결국 알 수 없는 미래를 오늘 당장의 현실로 끌어와 작고 구체적인 노력으로 채워나가는 끈기에 있습니다. 불안은 미래의 일이지만, 노력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