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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야 Nov 28. 2024

반복되는 증상들

눈부신 햇살이 신혼 방 커튼 사이를 향해 들어온다. 금일 오전은 함께 산부인과 방문을 위해 반차를 쓴 덕에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할 수 있었다. 때마침 얼굴 방향으로 햇살이 비쳐왔다. 아침이 왔음을 느낀 후 몸을 부스스하고 일으켜 가장 먼저 눈을 비볐다. 그들의 침구류는 모두 신혼을 티 내기라도 하듯 하얀색으로 깔끔히 맞춰져 있었다. 한참을 비비던 손을 땐 후 힘겹게 눈을 뜨자 덮고 있던 이불이 새빨간 색으로 변해있었다.


“어?”


침대 옆 작은 탁상에 있는 티슈 몇 장을 뽑아 코를 막았지만 무리였다. 어제보다 많은 양이 피가 흘러 이미 여러 번 티슈를 뽑는 행동을 반복했다. 옆에서 슥슥 하는 긁히는 종이 질감 소리에 도인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새빨간 휴지를 한가득 한 손으로 잡고 코를 막고 있는 손하였다.


“뭐야? 코피 나?”

“아 그게 안 멈춰서…”


피가 완벽히 멈추기까지 무려 1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몸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했다. 피가 멈추자 둘은 예정대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산부인과 검사 결과는 초음파상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으니, 스트레스 조절을 하면서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것뿐이었다. 도인은 손하의 회사까지 차로 바래다주기로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응… 스트레스 맞겠지?”

“응. 그럴 거야.”


아직까지 속이 좋지 않았던 탓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회사로 출근 중인 게 마음에 걸린 도인은 회사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운 채 말했다.


“속 괜찮아지면 죽이라도 챙겨 먹고, 또 몸 아프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응. 조심히 들어가.”


옷차림새를 다시 한번 정돈하곤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다들 어디 갔는지 이미 출근한 도희의 모습만이 보였다.


“다들 어디 갔어요?"

“아까까지 자리에 있었는데 글쎄요?”


가방과 입고 온 재킷을 의자에 걸어두곤 밀려있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순간 마우스 위로 주황색의 앙증맞은 모양의 귤이 올라간 조각 케이크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행동의 주인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자 역시 이주임이었다.


“아까 점심 먹고 근처에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 다녀왔어요!”

"내 것도 챙겨준 거야?”

“네, 생크림 케이크 좋아하시잖아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케이크를 받아 한 입에 크게 넣었다. 서서히 퍼지는 상큼한 귤과 부드러운 생크림의 촉감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어제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한 것이 이제는 좀 만족이 되나 싶었다. 그것도 잠시, 포크를 내려놓는 순간 다시금 더부룩한 느낌이 위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서랍에 있는 비상약을 찾아먹으려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울렁거리는 느낌은 마치 새벽 배낚시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을 연상시켰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입을 가린 채 도희의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대로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먹은 거라곤 고작 귤 케이크 한 조각이었지만, 그마저도 이젠 먹은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속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냈다. 이상했다. 이유조차 제대로 찾지 못했다. 먹은 양이 적어서 인지 게워낼 것이 많지 않아 속은 금방 평온해졌다. 변기의 물을 힘겹게 내리고 나와 세면대에 서 손을 닦고 양손에 물을 받아 입을 헹궜다. 거울로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손하가 화장실을 걸어 나감과 동시에 옆 칸 문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표정은 약간 얼타있다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내 천천히 걸어 나와 아무도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코피랑 구토?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한 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핸드폰 화면에 뜨는 국제번호를 발견하곤 익숙하다는 듯 수신버튼을 눌렀다.


“이모, 밥은 먹었어? 아 맞다 근데….”

.

.

.

그렇게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손하의 생일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점점 야위어가는 모습과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팀원들은 임신이 아니냐 물었지만, 가엽게도 아니었다.


병원에 가도 이유는 불명이라 말하고, 링거만을 처방했다. 죽지 않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실 것에는 다행히 반응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손하는 오늘도 역시 음료만을 잔뜩 사서 자리에 가져다 놨다. 오늘은 한 사원과 함께 거래처 미팅을 가는 날이다. 회사 법인 차량 옆자리에 서윤을 태우고 서둘러 미팅 장소에 갈 준비를 했다.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 중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는 한 사원의 손톱이 반짝하고 빛났다.


“이번에 새로운 네일 했나 보네요?”

“오~ 팀장님 센스! 이번에는 겨울맞이 그레이 톤으로 맞춰봤어요.”


자신의 손을 쭈욱 뻗어 양쪽으로 살짝 흔들며 손하에게 자랑해 보인다.


“팀장님은 매번 이렇게 맨 손톱이시네요?”


운전대를 잡은 손하의 손톱을 매만지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네일아트는 관심 없으세요? 제가 추천해 드릴까요?”

“난 손톱 꾸미는 게 어렵더라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하는 탄성이 들렸다. 자신이 만지고 있던 손하의 손톱을 유심히 보던 서윤은 이내 아예 손을 자신의 몸 가까이 가져갔다.



“팀장님 검지에 이 흰 반점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응?”



손하의 검지 손톱에 생긴 흰 반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분명 한 달 전 손하의 생일에 발견 한 초승달 모양의 반점이 아직도 그 위치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상했다, 손톱은 자라나고 그럼 당연히 흰 반점의 위치도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이론상 맞기 때문이다. 손하는 평소 긴 손톱을 불편하게 여겨 짧은 보디를 유지하는 편이다. 조금만 자라도 자르는 게 일상이었는데 서윤의 물음에 지난 한 달을 생각해 보니 30일이라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손톱과 발톱을 자른 적이 없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한 달 전 찍은 사진을 인화하고 보니 정체 모를 형체가 함께 찍힌 걸 발견한 기분이라고 하면 그 비유가 찰떡일 만큼 공포스러웠다.


“내가 몸이 안 좋잖아. 또 생겼나 보다, 이제 출발할까?”


상황을 모면하고자 서둘러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한 시간 정도를 달리고 보니 어느새 미팅 장소에 도착을 했다. 미팅 장소는 미용실이었다. 헤어숍을 운영하는 데 인스타 계정을 활성하고 자 의뢰를 해왔다. 미용실은 사장님의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한걸음에 달려 나온 사장은 이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내하는 장소로 이동해 인스타 홍보방법과 원하는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모든 걸 혼자서 하려니 막막하다는 이유였다. 이쪽 분야에서는 이미 경력이 쌓일 대로 쌓인 손하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차분한 톤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사원은 손하의 업무 능력을 옆에서 지켜보기 위함으로 동행한 것이기에 열심히 노트에 손하의 행동과 말들을 적었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여전히 예의가 바른 사장님은 시간을 많이 빼앗아 미안하다 말하며 손 팀장과의 미팅에 만족한 듯 계약을 체결했다. 잘 부탁드립니다는 말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사장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동그래진 눈빛으로 경쾌한 박수를 쳤다.


“오신 김에 머리 스타일링 받고 가세요.” 확실히 미팅 때와는 다른 반짝이는 눈이었다.


“진짜요? 저 받고 가도 돼요, 팀장님?”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사장보다 더욱 반짝이는 눈으로 ‘제발요’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미팅이 있는 날은 오후 일정이 널찍한 편이기에 그러라고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미팅을 위한 테이블이 아닌 커트 보를 두르고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손하는 딱히 머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팀장님은 머리 안 받으세요?”


의자 아래로 신이 나 동동거리는 발과는 달리 좋은 기회를 놓친 다는 듯 안타까워하는 말투였다.


“저는 괜찮아요."


서윤의 머리가 진행되고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의 어깨 정도까지 오는 중 단발머리끝을 손으로 매만졌다.


“저 사장님, 혹시 한 달 정도면 보통 머리 길이가 어느 정도 자라나요?”


사장님은 가위질을 멈추지 않고 ‘한 1센티에서 1.5센티 정도 자라죠.’라고 답했다.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무언가 떠오른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맞아,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뉴스는 처음이었잖아요.”


중 단발의 머리를 다섯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사장님의 말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헤어 일을 하다 보니깐—이런저런 검색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근데 이런 걸 봤어요.” 사장님의 말은 마치 어린 시절 구연동화를 읽어주는 선생님 마냥 확실한 악센트로 이야기를 고조시켰다.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이 머리가 안 자란다면서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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