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균열

고요 속에서 작게 흔들리던 마음

by 서녘

며칠째 하늘은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었다.


구름도, 바람도, 특별한 일도 없었다.

내 마음도 그 하늘을 닮은 듯했다.


잔잔했고, 조용했고, 괜찮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괜찮음이 낯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이전엔 늘 무언가가 터져야만

하루가 지나갔다.


마음이 소란해야 살아 있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요즘의 나는 그런 증거들을 잃었다.


불안도 줄었고, 울 일도 없었다.


대신 묘한 공허가 조금씩 자리를 채웠다.


평온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겉으론 좋지만,

그 안쪽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틈이 있다.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조용해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아주 가볍게 떠올랐지만,

내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날 오후, 산책을 나섰다.


늘 걷던 길인데,

오늘은 바람이 묘하게 차가웠다.


길모퉁이에서 웃는 사람들을 봤다.


그 웃음이 내게 닿지도,

나를 지나치지도 않았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다가

문득 내 얼굴을 만졌다.


입가가 조금 굳어 있었다.

웃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아니면 웃을 이유가 없는 걸까.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바람이 내 앞머리를 밀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 안의 고요가 완벽한 게 아니었다는 걸.


어딘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흔들림이 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방불을 켰다.


불빛 아래에서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그게 내 마음 같았다.


나는 여전히 괜찮았다.


하지만 그 괜찮음 안에는

작은 균열이 있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고,

그 바람 속에 아주 작은 생기가 들어왔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창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그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내 안의 균열을

천천히 어루만지는 듯했다.


모든 게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