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새 습관 아닌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내가 앉아있는 사무실 바로 옆, 회의실의 구석에 서서,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보며 '멍' 때리는 일이 그것이다.
처음엔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층에 있는 휴게실에 가서 멍하게 바깥을 바라보거나,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풀곤 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남들도 다 좋아하는 장소인 경우가 많지 않겠는가, 많은 부서 사람들이 휴게실로 와서 휴식하며 그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동료들의 이야기들을 내가 함께 듣는 통에 좀처럼 오래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오래 있어봤자 10분 내외 기는 하지만, 그 10분의 휴식시간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핫 플레이스' 이기 때문에 부서원들의 왕래는 잦은 편이었다.
혼자 무리에서 따돌림당한 아저씨처럼 홀로 휴게실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허리춤에 팔을 댄 채 허리와 목을 빙빙 돌리는 해괴망측한 몸풀기를 하는 필자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가 휴게실에 방문하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그 장소를 온전히 나의 안식처로 만들기는 어려웠었다.
나는 어느 날 회의 도중에 우연찮게 회의실 내부, 옆 건물과 바깥이 동시에 보이는 딱 한 군데의 통창이 있는 작은 공간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내 자리에서도 휴게실보다 매우 가깝다!)
우연히 발견한 그 '핫 플레이스'에서는 오로지 서있을 수 있는 공간, 게다가 딱 '한 명'만이 멍을 때릴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먼발치에 유유히 흐르는 잠실 한강변을 바라보며 햇빛의 변화를 느껴보기도 하고, 이 추운 날씨에도 요트를 타는 저 부유하고 튼튼한 사람들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 사람들의 여유를 함께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아주 작은 자투리 공간이지만, 회의실 창문 사이로는 인근의 중학교도 보이는데,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세상모르고 축구를 한다. 그중에 제법 몸놀림이 가벼운 친구, 공을 잘 안 뺏기는 친구가 보이는 한편, 나의 어린 시절처럼 달리기도 잘 못하고 방향 전환도 안 돼 속수무책으로 공을 뺏어보지도 못하고 체력만 허비하는 친구도 종종 볼 수 있다.
'저 친구들은 행복하겠지? 아니야, 저 나이대에도 고민은 항상 있었어. 학업, 이성, 진로 등등'
'저 나이대로 돌아가면 행복할까? 아니야, 저때는 이루어진 건 없지만 불안하고, 지금은 이루어진 게 있어도 불안해.'
오만가지 혼잣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나의 독백이 이어지는 사이, 학교의 쉬는 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는지 아이들이 황급히 축구공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울러, 우리 건물과 불과 몇십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옆건물에서 회의하는 사람들과, 맞은편 창가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분명, 나와 같은 회사 사람인데도, 바깥에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프로페셔널' 해 보였다. 무언가 전화도 엄청 열심히 받고, 셔츠도 걷어가면서 무언가 매진하는 모습. 회의실에서는 안경을 쓴 직원이 엄청 상냥한 표정으로 회의를 이끌고 있다.
'저 사람들은 즐거워서 일을 하는 걸까? 일을 하면서 즐거워지는 걸까.'
이러저러한 망상들을 하다가, 조금 오래 서있었는지, 이제 다리가 아파와 내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간혹 개인 평가를 잘 받았거나, 원하는 무언가의 일이 성사되는 경우가 아니고서, 필자는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있으면서 홀로 웃을 일이 좀처럼 없다. 그래서 웃으면 사람들이 무슨 좋은 일 있냐고 이상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게다가 필자의 안 좋은 버릇인 '혼잣말'이나 '한숨을 쉬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최대한 정신을 놓지 않고 앉아있는 편이다. (이 행동들도 전혀 나에겐 나쁜 의미가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신경을 쓰게 되더라, 그저 내가 불안해서 하는 행동들인데)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 '혼자 도망칠 공간'을 하나 더 찾아낸 거 같아 즐거운 감정이 몰려왔다.
이곳에서는 홀로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며 웃음 지어도, 즐거운 동영상을 보며 즐거워해도, 혼잣말이나 한숨을 너무 크게 하지 않는 한 남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비록, 회의실 안에 작은 통 창문 앞에 서서, 앉아 있을 수도 없이 불편한 짝다리 자세로 옆 회사 건물과 바깥이 동시에 보이는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겐 잠시나마 홀로 도망칠 수 있는 '옥탑방'과 같은 존재랄까.
이런 공간들을 좀 더 찾고 싶다. 공간뿐 아니라, 사람들, 물건, 장소등, 이기적이겠지만 나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는 도망칠 수 있는 공간들을 더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