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구상(具常)이 이중섭을 보고 "이중섭은 지우개가 필요 없는 작가다"라며 극찬했던 일화는 그림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이중섭의 드로잉 실력은 단 한 번을 지울 필요도 없이 완벽했다는 뜻이겠지.
자, 나를 그리고 여러분의 그림을 생각해보자....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지우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무언가를 한 번에 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쓴 지 3년 차에 들어섰고, 주변에 많은 글쟁이들을 봐도 평온하게 타자를 쳐나가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 꽤 힘을 주고 백스페이스를 연달아 누르는 힘찬 손짓은 그 글이 얼마나 불만족스러운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강박이 심한 편이다. 한 번 집을 나가기 위해서는 확인해야 할 것들이 수만 가지. 약속 장소 반절을 가서 왜인지 주방에 가스불을 안 꺼놓고 온 것 같다며 다시 돌아간 적도, 에어컨을 켜 두고 외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이 가능한 모든 식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얼른 우리 집에 가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일을 할 때는 꽤나 도움이 되는 편이다. 지난 글에 적었듯 누군가에게 힘든 글이 될까. 아니면 맞춤법이 틀렸을까?를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취재원과의 약속을 잡을 때도 여러 번 확인해 일정이 어긋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여러 번 확인하는 내가 답답하고,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이 급할 땐 초조한 마음이 앞서 표정도 굳고, 언성도 높아진다. 가장 힘든 건 주변 사람들이겠지.
그래서 나만의 노트에서는 과감히 맞춤법 따위는 생략한다. 어? 결론이 왜 그렇게 되느냐 묻는다면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지우지 않고 끄적이고 싶으니까.
최근 전시를 통해 나는 삶의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꼭 반듯할 필요는 없다는 것. 몇 십억에서 백억이 넘는 그림까지도 앞에서 찬찬히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직선으로 반듯하지 않다. 약간은 삐뚤고 또 살짝 엇나간 부분도 많다. 되려 자로 재고 그린듯한 반듯한 직선들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딱딱하고 정 없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네모 반듯 모난 곳 하나 없이 일직선이기만 한 사람은 멋있고, 배울 점도 많겠지만 쉬이 다가갈 순 없다. 어딘가 거리가 느껴지고 내 마음을 터놓기 두렵다. 꼭, "그래서? 왜 나에게 그런 걸 털어놔?"하고 매섭게 반문할 것만 같다.
나는 그냥 조금은 삐뚤 해도 반듯하지 않고, 모난 곳이 좀 있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