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 기형도 문학관
문학관은 어떤 공간일까.
책을 읽는 것에도 의미를 찾고 있는 요즘, 문학관을 직접 방문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과 문학의 의미. 그런 생각에서부터, 이 문학관 탐방기를 시작하고 싶다.
SNS가 발달하며, 긴 글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짧은 글만 읽어오던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완독하기도 쉽지 않다. 책을 읽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고 게다가 책 내용을 간단하게 줄여 동영상으로 요약해주는 유튜브도 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독서의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 과거 사람들은 왜 책을 읽었을까?
그런 의문으로부터, 존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를 일부 살펴보려 한다. 이 두 글은 모두 독서론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영국 대중이 뜻깊은 글을 이해하는 일은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영국 대중은 광적인 탐욕에 사로잡혀 사고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앓는 이 질병이 아직은 구제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심금을 울리는 게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진실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든 벌이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의 모든 목적이 너무 깊이 감염됐습니다. (...) 무엇보다 돈만 벌면 그만인 군중인 국민은 지속할 수 없습니다. 문학, 과학, 예술, 자연, 연민을 무시하고 영혼이 돈 생각으로 가득한 국민은 벌을 면할 수 없고 존속할 수도 없습니다.
-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민음사, 56-57쪽
존 러스킨의 위 글을 읽어보면, 독서는 굉장히 진취적인 목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돈 생각만으로 행동하며, 문학, 과학, 예술 등의 것을 무시한다면, 국가와 국민의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제로 독서가 필요함을 밝힌다. 독서는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쉽게 외면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한다. 심금을 울리며 말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은 이제는 없어진 언어의 아름다운 형태들을 고스란히 전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습과 감정에 대한 추억이며, 현재의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것으로, 시간의 두께에 따라 아름다운 색채가 덧입히는 과거의 흔적이다.
- 같은 책, 181쪽
마르셀 프루스트는 독서 중 느꼈던 감각을 중요시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독서는 그러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 추억을 찾는 것에 가장 효과적인 행위로 보인다. 책을 읽는 중, 책에 묘사된 것들과 감정에 몰입하며, 나를 스쳐가는 바람, 그날의 날씨 등을 감각적으로 떠올린다는 것이다.
마치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었을 때, 한순간 내가 과거의 거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독서는 나를 추억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독서하는 이유는 무엇이 옳은지 정해져 있지 않다. 독자마다 독서하는 이유는 다르다. 현자들의 지식을 얻고 싶어서. 재미를 위해서. 삶의 실존적인 문제를 찾고자. 과제 때문에 억지로 등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독서하는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 독서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더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이유를 떠올릴수록 사람은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전공 공부를 위해서기도 하며, 심금을 울리는 글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듯 딱 정해진 이유가 아닌, 여러 가지를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것이 책의 의미인 것 같다. 각 독자마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다르다.
독서의 이유를 생각해봤으니, 문학관 탐방의 이유를 생각해보자.
요즘 전시관 중에는, VR을 사용한 온라인 전시회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각종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난 것이다. SNS를 통해, 이런 탐방기를 통해서도 쉽게 문학관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직접 문학관을 방문하는 게 좋을까?
이런 의문에서 이 탐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학관 탐방기. 이 소소한 프로젝트는 삼 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12월까지 다양한 문학관을 탐방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금 예정한 문학관으로는, 이번 첫 번째 탐방기의 주인공인 기형도 문학관. 이후 김수영 문학관, 이상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이다. 이후 여러 작가들의 저서를 살피고, 더 추가할 예정이다.
문학관 탐방기 일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문학을 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마음 하나로, 여러 문학관을 직접 돌아보고, 그 작가의 작품 일부와 함께 문학관의 의미를 찾아나서겠다. 현대 사회에 문학관의 의미는 무엇일지. 그런 생각을 향해, 첫 번째 탐방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기형도 문학관 탐방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면 좋겠다. 어느 문학관을 탐방하든, 이처럼 작가의 작품부터 살펴본 뒤 찾아갈 예정이다.
기형도 시집은 전집도 있고 산문집도 있고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하지만, 나는 이전에 사뒀던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된 기형도의 시집을 사용했다. 우선 기형도 시인은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이후 전체적으로 시집을 읽고 좋았던 시를 인용하며, 감상을 느껴보는 것이 목표이다.
기형도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시인 기형도씨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했으며 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 정치부-문화부-편집부 등에서 근무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그는 이후 독창적이면서 강한 개성의 시들을 발표했으나 89년 3월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위는 문학과 지성사, <입 속의 검은 잎>에 나오는 시인 기형도에 관한 소개글이다.
위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형도 시인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뇌졸중이라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기형도 시인의 생애를 먼저 살펴본 이유는, 기형도 시인의 시 속에 그의 생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라는 장르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시는 좀 더 시인의 내밀한 고백들이 드러난다. 형식시에도, 새로운 실험시에도 시인의 내적 고백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이 시의 매력 아닐까.
기형도 시인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가계 전체가 가난하게 살게 된 일이나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 광명이라는 지역-안양천이라는 주변 환경 등 여러 생애 속 이야기를 시에 녹여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를 읽으면 좀 더 감정이 깊이 쓰이고, 마음이 아프면서도 동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이 시집에서 기형도 시인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로테스크 현실주의로 명명될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고 아름다운 시 공간 속에 펼쳐 보인다.
이처럼 기형도 시인의 시 속에는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 공포 등의 심리 구조를 깊이 담아내고 있다. 이상하게 겨울만 되면 다시 찾게 되는 이 시인의 시집을 한 번 읽어보면서, 앞의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소개글은 얼마나 시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 또 이 시집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가도록 하겠다.
시작 메모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시인의 말, 시작 메모로 시집 감상을 시작해보려 한다.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는 기형도 시인은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고 말한다. 기형도 시인이 살았던, 안양천-광명의 배경과 산업화 속의 대한민국의 거리. 그 거리는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기형도 시인은 거리를 다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듯하다. 그의 시에서 느껴진다.
이후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자연이란 뭘까. 자연은 시인들의 거대한 사유하는 공간인 듯싶다. 과거, 이데아론을 펼쳤던 철학자나 라틴 아메리카라는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시를 써갔던 시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 속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한 거대하고 위대한 잠언이 존재할 것이며, 그 때문인지 시인은 마지막 문장을 '눈이 쏟아질 듯하다.'로 정했다. 눈이 쏟아지는 자연적 상황의 마무리는 이 시집 전반에 걸친 고독과 외로움 등의 감정을 온전히 전한다.
시집 속 시를 전부 좋아하지만, 몇 가지만 뽑아 보았다.
대학 시절, 진눈깨비, 질투는 나의 힘, 나리 나리 개나리 이렇게 네 편이다. 사실 다른 유명한 작품을 고를까, 생각하다가 정말 읽고 너무 좋아했던 작품 네 편을 골랐다.
먼저 <대학 시절>을 읽어보자.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이 시는 특별함이 없다.
여기서 특별함이란, 이상처럼 실험적인 형식이 보인다거나, 아니면 독특한 표현이 눈에 띄는 건 아니다. 단순히 자신이 가졌던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다.
시위를 해야만 했던 혁명의 시기, 대학의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황이 그려진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후배와 선배 모두가 어떠한 혁명적 방식으로, 또는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각자만의 신념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화자는 다르다. 화자는 외톨이가 되었고, 대학을 떠나기 두려워한다. 어떠한 신념의 흔들림이나, 자아를 확립하기 두려운 모습이다.
이런 외로움과 고독은 자신을 자신으로 정체화하지 못했을 때 드러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 때문에 대학을 떠나기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시라 고르게 되었다.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은백양, 목련철,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등의 자연적인 시간 흐름이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이렇듯 자연적인 사물을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그리움이 느껴지는 듯한, 추억하는 특이한 화법을 전개하는 한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자연적 색채를 가져오면, 시를 읽을 때 그게 물씬 느껴진다. 마치 홍차에 찍어 먹은 마들렌처럼 말이다.
두 번째 시는 <진눈깨비>이다.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이 진눈깨비라는 시는 내가 시집을 읽을 때마다 매번 몇 번이고 곱씹는 작품 중 하나다.
좋은 점은 우선 배경이다. 그냥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진눈깨비라는 흩날리는 눈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눈발 사이를 걸어가는 화자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그의 외로움, 추위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위의 인용한 부분에는 전부 적지 않았지만,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이 부분 또한 좋다.
기형도 시인은 앞서 본 시, <대학 시절>처럼 추억을 기반으로 둔다. 과거의 어떤 일들을 회고하는 듯한 그의 시작 스타일은,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불행하다,는 말은 현재의 불행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불행하다,는 과거의 있던 모든 일들이 전부 현재로 모아지며 피어난 감정이다. 그렇기에 더욱 무겁고, 슬프다. 그런 점에서 기형도 시인의 추억을 되살리는 듯한 시작법은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힌다는 것, 계속해서 걷는 사람, 걸어야 하는 사람은 진눈깨비가 내려도 하얀 눈 위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런 화자의 모습을 마치 눈 앞에서 영사기가 틀어진 것처럼 볼 수 있는 게, 이 시의 매력이다.
세 번째 시는, <질투는 나의 힘>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은 굉장히 유명한 시이다.
유명한 만큼이나 계속 오래 기억에 남는 시이기에, 가져오게 되었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의 책처럼 펼쳐보는 이 시는, 추억과 기억 회상이라는 기형도 시인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무엇보다 이 시는 분석보다는 몇 번이고 곱씹고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라는 이 부분은 살아온 날을 돌아보는 화자의 심정이 잘 느껴진다. 그렇게 삶을 돌아봤을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가지나.
화자는 말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부분을 읽으면 늘 마음이 아프면서, 시집을 다 읽은 후에도 여운이 남는다. 이렇게 여운이 남는 이유는, 책을 펼쳐보듯 내 생애를 돌아본 시이기 때문이다. 내 생애를 돌아봤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나 또한 나 자신을 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까. 정말 질투를 힘으로 삼아 살아온 걸까. 그런 회고를 하게 만드는 시이기에, 더욱 여운이 남는 듯하다.
마지막 시는 <나리 나리 개나리>이다.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나리 나리 개나리>를 읽기 전, 기형도 생애를 돌아봤던 앞선 이야기를 먼저 보면 좋겠다.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손 위 누이를 잃었다. 그의 생애 속 죽음을 적은 시다. <나리 나리 개나리>처럼, 시인의 생애가 깊이 담긴 시들은 늘 좋다고 느낀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작가의 삶과 내면적 고통이 담긴 시들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인간을 향한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시의 주된 요소는 바로 봄과 같은 자연물이다. 노란 자연물-'나리 나리 개나리' 같은-을 사용하면서, 시인은 그 시기를 불러온다. 봄, 향기가 느껴질 듯한 시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산뜻한 느낌이 가득해야 될 것만 같은 이 시는, 산뜻한 느낌보다는 슬픔이 감돈다.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는 마지막 행이 그를 알려준다. 봄의 산뜻한 색채와 분위기가, 화자의 내면적 슬픔과 대비되면서도 적절하게 섞인다.
이렇게 네 편의 시를 살펴봤다.
우선, 이 시집에는 위 네 편 외에도 좋은 시가 참 많다. 앞선 소개글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 몇 가지를 꼽아보려 한다.
추억, 자연, 슬픔
이 세 가지 요소는 기형도 시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형도 시인은 자연을 이용하여 추억하는 듯한 내용으로 시를 전개하며, 그 속에 슬픔을 담담하게 녹여낸다. 그의 이러한 세 가지 요소, 특징을 살피며 읽어보면 시집이 더욱 재밌을 듯하다.
그 다음으로, 시를 일부씩 인용한 이유는 직접 읽어보면 좋을 듯해서이다. 사실 시를 전문으로 읽지, 이렇게 나눠서 보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시집을 빌리거나 구매해서 읽어보면, 이 브런치 글로도 느낄 수 없는 더 깊은 감정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일부만 인용해봤다.
이제 기형도 시인의 작품 <입 속의 검은 잎>을 한 번 돌아봤으니, 문학관 탐방 일지를 작성할 차례이다.
문학관 탐방은 사진과 감상 위주로만 적어둘 것이다. 나중에 직접 방문해 보면, 나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형도 문학관은 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에 위치해 있다.
월요일은 휴무고 관람 시간이 화요일부터 일요일이기에 이를 꼭 참고하여 가면 좋겠다. (옛날에 어디 문학관인지 음식점인지 방문했는데, 월요일 휴무라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기형도 문학관은 주차 공간도 있고, 하나의 건물로 된 꽤 큰 규모이다.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구경할 곳은 1층인 전시실 하나다. 다른 2층은 북카페로 책을 읽는 곳이고 3층은 강연할 때 쓸 수 있는 강당과 창작체험실이 있다.
내가 방문한 곳은 1층 전시실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는데, 1층 전시실은 어렵지 않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고, 이야기 테마가 잘 짜여 있어서 좋았다. 테마 마다의 기형도 시인의 시와 생애를 함께 볼 수 있다.
위 사진처럼 기형도 시인의 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야기는 총 세 개이다.
첫 번째는 유년의 윗목, 두 번째는 은백양의 숲, 마지막은 저녁 정거장이다. 이름에서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각 세 개의 이야기는 기형도 시인의 생애와 맞닿아 있다. 유년의 윗목은 기형도 시인이 어렸던 당시의 이야기와 함께 시를 전개하고, 은백양의 숲은 대학 시절, 저녁 정거장은 문단 활동과 신문 기자 활동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세 개 외에도, 안개의 강이나 빈집, 더 넓게 더 멀리,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등의 기형도를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있다.
전시 공간의 특이성은 타이포 그래피를 볼 수 있었던 점과 직접 외로움과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전시, 그리고 다큐멘터리 상영 등이었다. 직접 문학 공간을 방문하는 이유는 크게 없다. 이렇게 타이포그래피, 공간 전시 등으로 시를 더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 공간의 매력이라 느꼈다.
또, 기형도 문학관에서는 기형도 시인과 관련된 각종 굿즈도 무료로 주고 있다. 위 사진처럼 예쁜 엽서나, 책갈피, 기형도 문학관을 돌아볼 때의 가이드맵 등이 있다. 그렇기에 기형도 시인의 팬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서 굿즈를 가져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설문조사를 하면 볼펜도 주는데, 생각보다 좋은 볼펜이라 잘 쓰고 있다.
기형도 문학관을 돌아봤다.
시인의 생애와 시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은 전시 공간이라고 느꼈다. 시인이 지냈던 어린 시절의 아픔과 많은 죽음들. 그게 반영된 시 속 슬픔과 외로움.
또, 시인이 살았던 광명-안양천의 안개와 여공들의 이야기 등.
시에 반영된 여러 장소와 생애를 함께 돌아보며, 시인에 대하여 더 깊이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중요한 점은,
책 속의 시를 읽을 때와 벽면에 쓰인 시를 읽을 때의 감정은 다르단 것이다. 기형도 문학관에서는 벽면에 시가 적혀 있었는데, 고개를 들고 그 시를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읽은 시는 느낌이 더 다르게 다가왔다. 시와 대등하게 서서 읽어가는 감각. 그러한 감각을 느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위는 시 <엄마 걱정>의 전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 전문을 적은 것은, 문학관에 함께 방문한 어머니가 이 시를 읽고 시의 제목을 손으로 쓸어본 모습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벽면에 적혀 있었는데, 그를 읽어내려가는 동안의 감정은 시집으로 볼 때와는 달랐다. 이런 깊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직접 문학관을 방문하는 게 아닐까.
이번 첫 번째 문학관 탐방기, 기형도 시인의 문학관을 탐방하면서, 왜 문학관이 필요한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의 탐방은 아마 김수영 문학관이 될 듯하다. 그때까지 또,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그의 문학관을 혼자 상상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