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전두환의 1979년 12ㆍ12 반란을 다룬 드라마는 더러 있었다. 특히 김영삼의 문민정부 때 정치드라마가 봇물이 터졌고 그 이후 12ㆍ12를 다룬 드라마가 몇 편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12ㆍ12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처음이다. 광주 5ㆍ18을 다룬 영화는 몇 편 있었는데 12ㆍ12는 처음이라고 한다. 광주의 5ㆍ18도 직전 12ㆍ12가 있었기에 벌어진 불행이었는데 전두환의 반란 12ㆍ12가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해가 좀 안 된다. 아무튼 김성수 감독은 한국사의 암울한 역사인 전두환의 12ㆍ12 반란을 영화로 만들어 오랜만에 관객과 만났다. 오랜만에 영화에 복귀한 것인데 이런 굵직한 메시지를 들고 왔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다.
영화(줄거리는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박정희의 저격 사건으로 전두환이 합동수사본부장에 오른 후부터 시작한다. 그 후 약 한 달간 수사를 거의 끝낼 즈음 권력에 관심을 둔 전두환이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박정희 저격 사건에 왜곡 연루시키면서 12ㆍ12 반란을 획책하는 것에 러닝타임(141분) 약 3분의 1을 쓰고 나머지는 12ㆍ12 반란의 9시간(대략)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당시 전두환, 노태우가 어떻게 반란을 획책하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12ㆍ12 반란의 9시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곁가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즉 제목에서도 나오지만, 박정희가 죽자 대학가 위주의 사회에서는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민주화가 시작되려나 하는 기대에 들떠 있었는데, 영화는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민주시민들의 ‘서울의 봄(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는 전혀 담지 않았고 오로지 전두환의 반란에만 역점을 두고 영화를 밀고 나간다. 이런 영화적 구성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영화는 전두환의 반란에만 초점을 두면서 반란 9시간에 사건의 플롯을 맞추고 긴장감을 선사한다. 반란군이 대통령, 국방장관, 참모총장을 어떻게 협박했는지, 대항군이 어떻게 힘도 못 써보고 반란군에 무릎 꿇었는지를 아주 밀도 있게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다 보니 엄청난 액션이나 총격씬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아쉬울 수는 있으나 영화적 밀도와 긴장감은 영화 내내 아주 훌륭하다. 12ㆍ12사건 9시간을 두고 플롯, 인물, 촬영, 편집, 연기 등 모든 것이 좋고 그 합이 뛰어나다. 감독의 역량일 것이다.
세계 역사, 아니 한국 역사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고 성공하는 데는 아주 꼼꼼한 계획으로 성공하는 것만은 아닌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돌이켜보면 전두환의 12ㆍ12 반란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8공수단(?) 등 부대가 서울 도착 직전 돌아가는 바람에, 또 육군본부나 특수단 등 많은 부대가 오판과 머뭇거림을 여러 번 하는 바람에 반란을 제압하지 못했다. 또 정우성이 연기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의 명령에만 부하들이 잘 따랐어도 전두환을 궤멸할 수 있었다. 결국 여러 번 전두환의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이런 저런 실수와 오판으로 결국 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반란을 보면서 하늘의 뜻이 전두환에 있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역사의식이라곤 없는 악마일 뿐이다. 다시 말해 전두환 같은 악마가 너무나 평온하게 죽었다는 사실에 더 격분하게 된다. 1년인가 징역 살고 사면받고 나온 후 국민을 분노케 하는 말과 행동만 한 채 평온하게 죽었으니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처럼 영화도 다 보고 나면 너무 찝찝하다. (서사 장르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권선징악의 결말을 보여준다. 그것이 서사 장르를 대하는 사람의 바람이고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라 악마인 전두환의 승리로 끝나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관객의 묘한 감정선을 건드린다.) 전두환의 승리로 끝나니 말이다. 왜 우리나라는 역사의 죄인을 철저히 단죄하지 못할까. 이런 영화를 보고 영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분노할 줄 모른다면 전두환과 같은 악마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분노했다면 두 번 다시 이런 악마가 탄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이고, 죄인이 생겼다면 그 역사적 죄인을 철저히 단죄할 수 있도록 역사의식을,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