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극장, CJ토월극장, 자유소극장이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면, 웅장한 모습으로 건물 자체가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좀 늦은 시간의 공연이라 아름다운 예술의전당 야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덤으로 얻은 선물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오페라극장 로비 중앙에 대형 홍보막이 걸려있다. 원형의 중앙을 비운 건물 구조에서 아치형으로 둘러싸인 2층 높이를 차지하는 홍보막을 보면, 붉은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위에서 본 카메라의 시선으로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은 실루엣처럼 각인되고, 바탕의 붉은색은 그 주변을 휩싸고 돈다. 그리고, 한 줄의 문구가 자리한다.
‘신이여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이 문구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서사성을 함축해 주는 문구이자 관람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포토존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이다. 포토존 옆에는 뮤지컬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벽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주연급, 조연급, 엑스트라급 배우들의 사진 크기를 보면, 예술 분야에서도 계급의식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전 세계 라이언스 초연,
레프톨스토이의 걸작,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뮤지컬로 탄생
시선을 압도하는 테크놀로지
드라마틱한 음악
원작에 기초한 탄탄한 드라마
완벽한 밸런스의 대작 뮤지컬 탄생
음악과 시각 효과부터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다
톨스토이 작품에 대한 이 음악적 해석은 모두를 놀라게 한다
크리에이티브 팀의 절대적인 성공작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상찬 하는 문구다.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는 정선아다. 여러 뮤지컬에 출연하였고, 수상 경력이 많은 배우다. 처음 보는 배우였지만 상당히 매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 주인공으로 알렉세이 브론스키역을 맡은 배우는 이지훈이다. TV드라마와 뮤지컬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프로그램북의 표지 또한 강렬하다. 여기에는 출연한 배우들의 극 중 관계도가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만원 정도의 가격에도 매번 뮤지컬을 관람할 때면 구입해서 본다. 작품의 흐름을 파악하고, 정보를 알기 위해서다.
톨스토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외국에서 창작하여 로열티를 지불한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최근에 본 <광화문 연가>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라고 한다면, 내한 공연을 한 <시스터 액트>는 투어 뮤지컬로 분류할 수 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라이선스 뮤지컬답게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그것은 원작이 주는 스토리텔링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시대적인 배경과 러시아라는 국가가 주는 고유한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의 연애 상대로 등장하는 알렉세이 브론스키 역을 맡은 배우 이지훈의 복장을 보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배우들이 입고 등장하는 화려한 의상은 제정 러시아 시대라는 특수성이 있어 더욱 빛난다. 특히 무대 배경은 기차역과 전원 풍경을 아우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는 산업혁명 이후로 새로운 문물들이 도시를 통해 유입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완전히 근대화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는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극 중에 등장하는 경마 시합과 스케이트장, 철도역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프로그램북을 보면 민음사에서 출간한 이진숙의 <롤리타는 없다 1>을 인용한 대목이 나온다. 안나 카레니나와 알렉세이 브론스키와의 부적절한 사랑을 두고, ‘사랑은 사회적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극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열차에 몸을 던진 이유도 결국은 사회적인 조건을 초월한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시대적인 제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의 원작인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토스토엡스키를 비롯하여 독일의 토마스만, 미국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문학계의 거장들조차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프로그램북에서 소개된 사진 자료들을 보면 다양한 여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발레, 연극, TV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 형태로 변주되는 작품의 위대성을 다시금 통감할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예술작품으로서 완전무결하다’는 표현이 그리 과한 표현이 아님은 이 때문이다.
극의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제정 러시아 시대에 귀족들이 주로 활동하던 곳이어서 그런지 화려한 무대를 연출하는 무도회장이나 연회장, 오페라 극장 등은 뮤지컬 공연의 백미인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특히 기차역을 중심으로 기차를 형상화한 다양한 무대 소품들은 스크린을 통한 영상미를 극대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자주 바뀌는 배경 탓에 빠른 무대 장면의 전환이 약간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도 들기는 했지만 무거운 장비들을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스텝들의 수고로운 노력이 없었다면 제대로 된 뮤지컬을 감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투어 뮤지컬, 창작 뮤지컬에 이어 라이선스 뮤지컬로서는 처음 접하게 되는 뮤지컬로 나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로열티를 주고, 작품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뮤지컬 공연 방식이다. <캣츠>처럼 배우들의 춤사위가 화려하지도 않고, <광화문 연가>처럼 추억을 소환해 주는 뮤지컬은 아니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이 즐거워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진지하게 극을 이끌어 준 배우들의 춤과 노래, 연기는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