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

박석신 / 비엠케이

by 정작가


이름꽃 화가의 드로잉 콘서트라는 다소 생소한 퍼포먼스를 연수 시간에 접하고 나서 바로 책을 구입했다. 박석신이라는 화가였는데, 본인이 이름꽃을 그릴 동안 정진채라는 음악가는 옆에서 기타를 치며 기존의 시에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색적인 콘서트였다. 드로잉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감정의 울림은 폭포수가 되어 깊은 내면 속을 자극했다. 드로잉 콘서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은 그것이 한두 해 이루어진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책날개의 지은이 소개를 보면, 추사 김정희의 고향 예산에서 태어나 화가의 꿈을 키워왔던 저자의 이력을 읽을 수 있다. 잔재주가 많아서 먹고살기 힘들겠다는 말을 듣고 자란 이력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보면, 그의 ‘잡놈론’이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화가, 강사, 갤러리 관장, 농부, 교수, 카페주인장, 종합병원홍보대사라는 직함을 보면, 대략적 그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프롤로그를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프롤로그의 제목조차도 온기가 느껴진다.


상처를 만져줄 작은 마음을 보냅니다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장인 ‘잡것의 행복’에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과정에서 체득하게 된 성찰을 통해 고독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그가 고독과 함께 성장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는 여행, 악기, 차였다. 목적 없이 떠난 여행에서 새롭게 얻게 되는 두려움과 기대에 대해 말하고, 고독이라는 힘든 과정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악기를 다루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다소 독특한 관점은 차(茶)라는 것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한 잔의 따뜻한 차를 마시며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 점이다. 늘 사람들과 함께하며 꽃그림을 그려주는 화가지만 그에게 있어서 고독은 역시 예술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잡것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를 통해 드로잉 콘서트를 기획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며, 잡것과 잡것이 만나 펼쳐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일종의 ‘잡종론’을 펼친다.


개성이 강한 두 존재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파트너인 시노래 가수 정진채를 염두에 둔 듯하다. 이런 잡종과 잡종과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줘야 하며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적인 이익 배분에서 오는 잡음을 없애기 위한 모종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핵심 가치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이들의 협업이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화가인 저자는 풀뿌리로 만든 붓에서도 지면을 할애해서 그 가치를 설명한다. 사진 도판을 보면 지리산, 백록담에서 직접 채취한 풀뿌리로 만든 붓을 볼 수 있다. 민초를 상징하기도 하는 잡초를 존재의 의미로 환원하는 저자의 시선은 이름꽃 화가로서 정체성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의 시선은 다소 삐뚤어진 것 같아도 있는 그대로의 존재 가치를 설정하는 측면에서 예술가의 의식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딴짓을 권하기도 하고, 속도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천천히 걸을 권리를 주창하기도 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내 멋대로 놀기’라는 장에서는 활쏘기 체험을 이름꽃밭으로 치환하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백지 위는 모두가 노닐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라고 역설(力說)한다. 미술을 배워 본 적이 없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즐기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온전한 몰입의 시간이다.


책을 읽다 보면 예술가로서 저자의 생각이 깨어있음을 확연히 실감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허물고, 기존의 미술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싣기도 한다. 엉뚱한 생각이 문제를 해결하고, 크레파스를 버리면 창의력이 보인다고 주창하는 내용이 그렇다. 이렇듯 기존 관념에 대한 전복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 가능성을 가일층 높여주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한다. 창의적 인재 육성을 모토로 하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도리어 창의적이지 못한 교육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작가의 안타까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이름꽃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자리하고 있다. 한 인간에게 상징적으로 부여된 이름이 그 정체성을 십분 발휘할 때까지 저자가 이름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그의 생각의 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모두 이름이 있지만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역할을 하느라 진짜 이름을 잊고 살아갑니다. 더 늦기 전에, 더 잃어버리기 전에 내 이름을 찾고 내 이름을 살아가세요.


고로 박석신의 이름꽃 그리기는 잃어버린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공공프로젝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럴만큼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수행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책의 말미에 저자가 직접 그린 굽은 어머니의 등을 묘사한 그림의 글귀는 한동안 멍하니 삽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내 엄마의 등은 내가 밟고 넘어온 산등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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