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지 20년, 사막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라떼는 말이야...', '워라밸', '번아웃'...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들이라 전해 들었다. 한국에는 매년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나고 워킹 문화가 바뀌어 간다. 그 속도는 뉴욕이나 실리콘 밸리의 그것과도 사실 비교할 수가 없게 빠르고 열정적이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과학 기술의 빠른 발전과, 해외 유학, 해외 취업 등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응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새문화가 들어오면 늘 과도기가 있는 것이 당연한 터라, 있었으면 좋았을... 그리고 있었어야 했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목소리와 결행이 가끔 조금 과하다 싶을 때도 있다고 느껴질 때는, 나도 '라떼는 말이야' 경고를 받는 것은 아닌지... 괜한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문화도 변하기 마련이고, 늘 우리는 한바탕 쓸고 지나갈 소용돌이로 다가오기도 하고 잔잔하게 흘러들어 자연스럽게 삶에 흡수되어버리는 물과도 같은 변화와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전쟁을 치르며 지내시면서 또한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함께 해내셨던 조부모님 세대의 분들은 부모님 세대들에게 너무나도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엄격하셨을 것이고, 부모님 세대의 분들은 또 우리 세대를 보고 '이런 편한 조건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 볼멘소리를...?'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또래의 그리고 선배들의 눈에는 20대의 워라밸을 요구하며 번아웃을 바로 인지하고 방지할 수 있다는 문화가 참 부럽기도 하고, 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권리를 실컷 누려줘!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또, 지금의 20대가 40대가 되면 또 그때의 20대가 누릴 새 문화에 부러운 눈치를 줄지 모를 테지만...
20대 시절, 호기심에 사주 카페든, 타로카드든, 점 집이든 가서 사주팔자를 가끔 보곤 했다.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일복이 넘친다고 했다. 처음에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내 일에 열심히 매진하면서 사는가 보다며 괜스레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그 복(福)이 넘치니 화(禍)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의 20대, 30대는 나름 경주마처럼 눈의 양 옆을 가린 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양 옆이 안보이니까 앞만 보며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왔겠지... 한편으로는 사실 그래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마치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가면, 산의 정상을 올라갈 때 숨이 턱에 닿아 더 이상 못 가겠다 싶을 때, 그때를 조금 참고 계속 가다 보면 힘들어도 꾸준히 계속 올라가게 되는데, 중간에 한번 쉬게 되면, 그 뒤로는 계속해서 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이제 와서 지나고 보니 오후 6시가 '정시퇴근'임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그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해 본 기억은, 정말 맘을 먹고 일찍 가야 하는 특별한 날들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다. 나와 일의 인연은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았다. 무슨 일이든 책임감 있게 열심히 잘 처리하니까 회사에서는 늘 더 일을 맡겼고,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일을 더 맡겨도 순진하고 우직하게 그 정해진 시간 안에 또 맡은 일들을 다 해내고는 해서 일을 또 한가득 맡아 처리하고는 했다. 한쪽에서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만 그 악순환이 멈출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늘 맡은 업무가 남들보다 많았고, 내 개인의 시간들까지 투자해 맡아서 그 업무들을 처리했다. 오전에 강남역에 그 많은 사람들이 반짝반짝 깨끗한 모습으로 출근할 때 나는 턱 아래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애써 가리지도 못하고 질끈 묶은 머리와 흘러내리는 안경, 반쯤 감겨가는 눈을 비비며 꾀죄죄한 모습으로 퇴근을 했다. 걸어갈 기운이 없어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가서 씻고 잠깐 2-3시간 눈을 부치고는 점심시간에 또 나와야 했다. 회사 경비아저씨께서도 안타까우셨는지 지난밤, 아니 아침까지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다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나에게 몰래고 캔커피를 건네주시고는 힘내라고 하셨다. 게다가 장난반 진담 반으로 팀장님이 주말에도 싱글인 나는 할 일이 없을 테니 나와서 일을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정말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하기도 했다. 또한 어쩌다가 업무가 많지 않은 여유 있는 일정이 생겨도 일복(?)이 넘쳐나는 나는 늘 예상치 못한 일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덮쳐버리고는 했다.
어쩌다 밤 12시가 되기 전에 일이 끝나는 날에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논현역에 있는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하던 또 한 명의 일복 터진 내 대학 동기 친구 녀석과 함께, 지금의 신논현역 근처 포차에 얼른 소집해서는 육회나 닭똥집 안주에 각자 소주 1병씩 깔끔하게 짧은 시간에 비우고는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쓰러지려 할 때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가끔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 수 있었던 쌍둥이 자매 같던 친구와 함께 파이팅하며 보냈던 마법 같던 한 시간 남짓의 충전과,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도 바다 건너 연락을 하며 지낼 수 있는 정말 끝내주게 화목하고 유쾌하고 또 멋졌던 회사 동료들 덕분이었다.
이젠 풀리지 않는 뻣뻣해져 버린 어깨 목 근육과, 늘 저리는 팔, 그리고 메스꺼움, 어지럼증으로 손끝으로 힘마저 다 세어나간 지친 몸을 보면서...
내가 맡아 처리하는 프로젝트의 개수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세어보면서...
그리고 또다시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만 맞춰지는 회사의 일정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 사이 사라진 팀장님들의 빈자리들을 보면서...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때 적은 일기들을 읽어보면 매주 대부분의 글들은 많은 업무와 끊임없는 야근과 주말근무에 대해 허덕이는 모습이었고, 위장약, 각막염 약, 소화제, 두통약 등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견디었다. 내 어깨는 거의 매일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목과 함께 계속해서 주무르고 또 주물러 마사지를 해야만 풀려서 겨우 며칠 버틸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같이 일하는 많은 개발자분들도 일을 먼저로 생각하고 본인의 몸을 돌보는 것을 뒤로한 분들이 많이 계셨다. 뇌출혈과 장 하혈로 고생하다가 휴직하시는 직원분도,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고생하시다가 그만두신 직원분도 계시고, 디스크로 통원치료를 3개월 동안 받아야 하는 직원 분도 계셨다.
야, 야. 때려치워! 무슨 회사가 그 모양이야!
너, 네가 지금 젊다고 무시하나 본데, 몸이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도 무시하면 그러다가 그대로 가버리는 수가 있어.
결국 스물일곱이 되던 해, 첫 번째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때는 그것이 번아웃인지 몰랐다. 그런 단어도 증상도 알지 못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니 폭주기관차를 지치지 않고 달리게 만들던 절절 끓던 불가마의 열기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끼이이이이이익!!!'
엔진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질주를 멈추었다.
- Photo by 선인장. New Orleans,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