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 12월 30일>
-1828년 12월 30일
몸과 정신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3주일이 넘게 걸렸다. 폐 속에 차 있는 유독가스가 쉽게 빠지지 않았던 탓이다. 연말로 인한 붕 뜨는 분위기가 절정을 이루던 때였다.
내가 화상으로 돌아온 건 해가 넘어가기 마지막 날 늦은 밤이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지나를 집에 보낸 후 나는 퇴원 절차를 밟았다. 나는 누워 있으면서 줄곧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찝찝함이 묻어있는 가시덤불에서 온종일 뒹군 느낌을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적이던 때가 있었던 화상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쥐죽은 듯 잠잠했다.
그때쯤 나는 방화의 주인공을 베이커 씨로 확신하는 중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과제‘를 완성한 후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나고자 그 일을 저질렀고, 어차피 죽은 여동생과의 약속을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인 만큼 마무리만 한 후에는 태워져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에서였다. 되레 그 행동을 그리스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종교의식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올드벅을 떠올렸다. 그는 내 등에 업혀 온 직후 그 말을 하고 숨을 거뒀다고 했다. 아주 가끔 그나마 볼만한 그림을 그리던, 여태 주목받지 못한 화가였다. 사람도 아닌 그림을 구하고자 생을 바친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책임감도 케이크 조각처럼 잘라간 듯 그 날 화재현장으로 몰린 사람 중 장례식장을 찾은 이는 극소수였다고 했다. 사인은 연기로 인한 질식사였다. 내가 앓아누워있을 당시 장례는 조촐하게 진행됐다.
아직 내 서랍 안엔 술에 취한 올드벅이 포르토벨로 다리 아래 강물로 내려보내려고 한 그림 몇 점이 이 또한 주인을 잃은 채 남아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그를 위한 나의 장례였다. 어떤 방법이든 이별을 맞아서는 이에 맞는 의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걸 나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이런 절차는 필요했다. 이게 강박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실 나는 가슴 속에 또 다른 큰 구멍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트를 꺼내 입고 그의 남은 그림들을 챙겼다. 구름 한 점 없이 달빛이 유난히도 밝은 날이었다. 포르토벨로 다리로 가는 길의 밤공기는 차가웠고, 다들 한 해 마지막을 가족들과 보내는 듯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올드벅이 쪼그린 채 앉아있던 그 지점에 앉아 그림들을 펼쳤고, 이를 얼음장과 같은 강물 밑으로 떠내려 보냈다.
“그리 원망하지 말게.” 나는 중얼댔다. “어차피 죽은 그림 아니었나. 내가 살린 그림을 내 생각대로 자네에게 다시 보내는 것이니 보이거든 그림 공부나 더하시게. 그림 때문에 죽은 양반이 그림 하나 없이 하늘로 올라가면 얼마나 비웃음을 사겠나.”
그림들은 순풍을 탄 쪽배처럼 하늘하늘 흘러갔다. 예전부터 운명을 직감한 양 미련 없는 움직임이다. 그 흐름을 보며 올드벅에 대한 생각들을 정제하고, 여과하는 절차를 천천히 밟았다.
늦은 밤, 망자(亡者)를 위한 나름의 의식을 하고 나니 왠지 여동생의 묘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혼이 담긴 십자가는 마을 가장자리 묘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과 생년월일, 조촐한 십자가만 있을 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리 시끌시끌했던 장례식과는 달리 그녀의 묘지는 죽은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눈에 띄게 한산했다. 나조차도 이런저런 일에 휩쓸려 그 날 이후 제대로 찾아간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 다 끝나가."
큰 언덕을 두 개 넘고 온 나는 한참 숨을 고른 다음에야 십자가에 손을 얹고 말했다. "둘이 무슨 약속을 한 거니." 혼잣말을 더 이어가려는 순간, 정적을 깨고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결이 상한 목관악기가 쩍쩍 갈라지는 듯한 이 소리는 결코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귀신 불에 홀린 사람처럼 이 음을 찾아 길을 더듬었다. 이 같은 기현상(奇現象)과 함께 혹시 베이커 씨가 돌아온 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이끌었다.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를 돌아왔다. 소리는 작지만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 발원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기대는 단지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 소리는 언덕 아래 듀크 미술관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노라 할멈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라 할멈은 자식들을 모두 잃은 니오베와 같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찌나 몸을 떨고 있던지, 그 모습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죽어가는 사이프러스 나무 같기도 했다. 아픈 사람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가 두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사람이 아닌 짙은 갈색의 카디건을 두른 마른 나무장작을 흔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땅을 치며 무언가를 중얼대는 중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이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어떤 문장을 찾는 모양새였다.
“날이 추워요. 일단 들어가요. 어서요.”
내가 말했다. 얼마 전만 해도 평온하기만 했던 내 일상의 판은 여동생의 죽음 이후 짧은 기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집어졌다. 노라 할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내 나는 그녀가 나뭇가지 같은 긴 손가락을 들고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직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고개를 돌린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분에 휩싸였다. 과장 없이, 나는 숨이 턱 막히는 엄청난 걸 봤다.
“맙소사.”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퍼즐이다.
노라 할멈이 듀크 미술관 맞은편 벽면에 다닥다닥 붙인 베이커 씨의 그림들은 사실 하나였다. 그 수십장 그림들은 따로 봤을 때 모두 하나를 표현하기 위한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큰 십자가가 박힌 테두리는 콜론 교회의 일부였다. 실핏줄과 같은 굵은 선이 담긴 종이 몇 장을 이어 붙이니 살아 움직이는 듯한 마호가니 나무가 됐다. 시계추에 붓을 달고 흔든 양 긴 호흡을 그렸을 잘린 원의 일부는 포르토벨로 다리 아래 강에 비친 달빛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꼬마가 된 베이커 씨와 내 여동생이 그림 안에 담겨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하나하나 뜯어볼 땐 이게 두 사람인지 눈과 입이 있는 기하학적 표상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완성한 퍼즐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툭툭 끊긴 그림들이 갑자기 요동치는 듯하더니, 이내 하나의 그림이 돼 나에게 다가왔다. 소년은 잡풀들이 가득한 언덕 위에 앉아 스케치북으로 그림을 그린다. 소녀는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운 양 바로 옆에 엎드려서 두 팔로 얼굴을 받친 채 지긋이 쳐다본다.
언덕 아래 강물이 요동친다. 울리는 교회 종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는지 알려준다. 이들은 곧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태동하는 봄날처럼 활짝 웃으면서.
그의 상징과도 같은 거침없는 붓놀림에, 중간색이 없는 타협 없는 짙은 선이 벽면을 가득 채우지만, 그간 다가오던 기괴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하다.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그림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 얼굴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