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김경신.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 다 통일신라 사람이었다. 김주원은 차기 대권 1순위였고 김경신은 그 다음쯤 되었다.
어느 날 김경신이 꿈을 꿨다. 벼슬아치가 쓰는 모자인 복두를 벗고, 삿갓을 쓰고 12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가는 내용이었다. 복두를 벗는 건 벼슬에서 쫓겨날 징조고 삿갓을 쓰고 가야금을 드는 건 칼을 쓰는 거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건 감옥에 들어갈 징조입니다.라는 해몽을 들었다. 그걸 듣고 멘붕에 빠져서 궁궐에 출근도 못 했다.
여삼.이라는 사람이 그 꿈을 듣더니. 아 그거 아닙니다. 복두를 벗는 건 당신 위에 사람이 없어질 거라는 뜻이고 삿갓을 쓴 건 면류관을 쓸 징조이고 12 현금을 든 것은 12대손까지 왕위를 전달하는 의미이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갔다니 이는 궁궐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하고 해몽을 했다.꿈이 현실화되려면 경주에 있는 알천.이라는 시내의 신에게 기도를 하라고 말을 더했다. 김경신은 그대로 했다.
선덕왕이 죽고 다음왕을 정해야 했다. 1순위는 김주원이었다. 근데 갑자기 비가 엄청 내려서 알천이 막 넘쳤다. 알천 너머 사는 김주원이 궁궐로 건너갈 수 없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고 왕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김경신이 왕을 이어받았다. 신라 38대 원성왕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읽었다. 전자는 일연 스님이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서점 문학 코너에 있었다. 후자는 김부식이 유교역사관에 입각해서 지은 역사책이라 교양 코너에 있었다. 시간/공간 배경은 같다. 이야기책은 술술 읽었다. 역사책은 그야말로 무거운 한문 해석본이었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읽느라 좀 늦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김주원과 김경신의 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비가 많이 와서 왕이 바뀌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지만 그만큼 김경신의 권력의지가 강했다는 거 아니었을까. 권력의 공백이 생긴 걸 판단하고 ‘서라벌의 봄’ 같은 걸 일으킨 게 틀림없다.
사주, 타로, 토정비결, 점 같은 건 거의 믿지 않는다. 꿈은 좀 믿는 편이다. 꿈이 내 무의식의 발로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내 현재 생각과 심리상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역사는 그 일은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신이 그런 거야. 전생의 공덕이 있어서 그런 거야.라는 우연적 세계관에서 필연적인 원리를 밝혀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읽었는데 오히려 더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이따금씩 역사책을 읽어봐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