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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Dec 21. 2023

나는 왜 쓰는가

by 조지 오웰

특별히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눈을 뜹니다. 잠시 어렵기 뜬 눈을 다시 감은 채로 허리를 바로 세운 후, 몸을 틀어 발바닥을 땅이 붙여버립니다. 고개는 숙여져 있고 머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발가락에 힘을 주어 무릎에 탄력을 이용해 일어난 다음 반쯤 뜬 눈으로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십니다. 식탁에는 오늘 읽을 책과 좋은 글귀나 생각들을 적어놓은 노트, 책과 관련된 페이지에는 보통 펜을 끼워놓습니다. (오늘은 이상하게 젓가락이 있네요.) 그리고 거실에 소파를 기대어 노트북을 켜고 메모장을 킨 다음에 이렇게 한 글자씩 채워나갑니다. 어느 정도 쓰고 나면 다시 읽고 고치기를 여러 번 하면 출근 시간 정도가 되어 커피를 가져와서 마십니다. 왜 나는 매일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이렇게 할애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피드를 일 년 동안 해오고 원대한 포부를 여러분에게도 설명을 드렸지만 저에게 드는 한 질문은 이 책의 제목과 같았습니다. 일 년이 되던 날 다시 부여잡은 책이었고 워낙 유명한 책이라 항상 뒤러 미뤄뒀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보통 오웰의 글쓰기 지론을 담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둘째,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적 충동. 넷째, 정치적 목적. 오웰은 이렇게 네 가지 글 쓰는 동기를 관찰한 다음 자신은 천성상, 평화로운 시기에 살았다면,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해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글을 썼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히틀러의 등장을 보면서,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면서, 어느 시기부터 한 줄의 글을 쓰더라도, 그것은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오웰은 저에게 있어서 정치적이지 않은 글쓰기는 없는 작가였습니다. 이 책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 알았던 그의 글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이상적인 술집, 서평 쓰기의 괴로움, 봄의 즐거움, 부정할 수 없는 애국심,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에세이를 들여다보니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다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적이라는 뜻은 작가는 신념의 총 폭탄이 돼야 한다는 문장으로 치환이 되었고 작가는 정직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에세이 <정치와 영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긴 수사와 젠체하는 단어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글을 제대로 읽거나 쓸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전에 읽을 따 밑줄 하나 없던 에세이에서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채워주는 에세이로 다가왔습니다.



P :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어떠한 사건도 신문에 정확히 보도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었는데, 그러다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신문이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을 보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거짓말에서 은연중에 내비치기 마련인 최소한의 관련성조차 없는 보도였다.



저는 사실 정직해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있는 그대로 썼다가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다거나 미학적으로 서툴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했고 이런저런 변명을 속으로 늘어놓다가 내면이 일그러지게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런 제게 이 책과 오웰은 스승이자 등대였습니다. 그의 건강한 정신을 닮고 싶었고 유머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확실한 답을 구하지 못했지만 오웰 스승님을 따라가다 보면, 또는 언젠가 다시 읽을 이 책을 기억하고 있다면 왜 글을 쓰고 노트를 채워나가는지 알 거 같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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