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니엘 페나크
비교적 튼실한 몸을 타고났습니다. 안경을 맞추려고 갔던 안과와 하수구에 빠져서 다리가 부러져 정형외과에 간 일과 아주 어렸을 때는 아세톤을 물로 착각해 마신 후에 위세척받으러 응급실 간 거 말고는 크게 병원에 간 기억이 없습니다. 심지어 치과도 스케일링 말고는 다닌 적이 없어서 축복받으며 살고 있고 약도 따로 잘 먹지 않아서 두통약을 가끔 먹으면 오분이면 낫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가 비슷한 르브론 제임스는 아직도 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방치된 제 몸을 부끄럽게 바라보다 노력한 시간이 없었다는 생각에 미안해지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 숲에 혼자 버려져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후부터 주인공은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 년 뒤 거울 속 비친 타인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본격적으로 몸에 관해 적기 시작하는데 이후 주인공이 쓴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대한 글은 사랑하는 딸에게 남겨놓습니다. 주인공은 2차 성징에 얽힌 경험과 어린 시절 친구와 하던 기절 놀이나 하품의 전염성 등등 실험을 합니다. 또 흠잡을 데 없는 똥을 관찰하거나 새로 생긴 점과 점 사이를 그어보며 피부가 늙어감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어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게 된 것과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 등에 대한 아쉬움을 기록하고 또 기록합니다.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의 신호를 이해하고자 한 주인공의 근면한 열정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놀라웠던 부분은 열세 살 때 쓴 “무엇인가를 기록하기 전에 꼭 마음을 진정시킬 것”이라는 문장이었습니다. -3살 때 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나 생각하니 많은 차이가 있어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몸을 기록한 화자도 몸의 작은 변화나 앞날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발가락에 티눈이 생기거나 과로로 인한 출혈로 열흘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얼마 안 되어 다시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병에 걸리지만 그 모든 증세를 적기만 할 뿐 “왜 예상하지 못했냐?” 는 감정적 참견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짧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마다 찾아오는 현기증, 굳어버린 무릎, 터지는 정맥, 쉰 목소리, 허는 입술, 자꾸만 잊고 잠그지 않는 바지 앞 지퍼에 대해서도 그저 기록만 합니다.
P 86세 2개월 28일 :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 없다.
특별한 일기라고 생각했던 이 책은 보편적인 인생 이야기입니다. 몸을 통해 내면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있어서 주인공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육체가 결코 정신의 대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육체와 정신이라는 이분법으로는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두 가지를 조화시킬 때 존재 또한 균형을 잡고 살아나갈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누군가의 육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 존재를 알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