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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정 Nov 10. 2021

모래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건

<듄>과 <듄의 메시아>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원작의 내용이 다수 포함 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를 대부분 본 사람이 되었다. 이전에 리뷰를 쓴 적도 있는데, 오리엔탈리즘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블레이드러너 2049> 를 재밌게 본 사람으로서 드니 빌뇌브의 스페이스 오페라라니! 이건 못 참지! 게다가 쏟아지는 호평은 코로나 이후 한번도 가본 적 없던 극장으로 나를 이끌기 충분했다.


어쩌면 이미 수많은 시리즈들을 통해 변주된, 예지된 영웅과 그의 능력 그리고 그가 어떻게 우주 또는 인류를 구원하느냐 라는 얄팍한 스토리에 불과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듄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스타워즈의 신비로운 '포스'와 맞먹는 예지를 가능하게 하는 '스파이스'와 '멜란지'가 있고, 신체 능력을 월등하게 발전시킨 '멘다트', '베네 게세리트'가 있다. 문명은 발달한 것 같지만, 황제가 다스리고 각 행성을 다스리는 귀족이 있고 상행위는 길드와도 같은 우주 연합과 초암사라는 주식회사가 책임지는 중세 봉건시대 같은 배경이 특징이다.


듄의 세계에서는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1. 정치적인 권력(황제) 2. 경제적인 권력(초암사 지분) 3. 종교적인 권력(베네 게세리트)  1부의 황제인 패티샤 황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해서 초암사가 공급하는 물질 스파이스을 독점하는 초암사의 지분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스파이스는 아라키스라고 불리는 듄에서 생산되는 물질로 스파이스를 가공한 멜란지는 인간에게 예지력을 선사하고 젊은 모습을 간직하게 하며, 수명연장을 가능하게 한다.


아라키스는 모든 곳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이고, 프레멘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잘 훈련된 전사이다. 아라키스 모래속을 헤집고 다니는 거대한 샌드웜을 교통수단처럼 타고 다니고, 어려서부터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라키스를 독점하려는 세력들이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듄의 1부에서는 황제가 레토 아트레이데스 공작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해서 그의 정적인 하코넨 남작을 이용해서 그를 제거한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그런데 레토 공작의 아들인 폴 아트레이데스가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선지자로서의 자아를 깨워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의 일원이 되는 것 까지가 듄 part 1에 등장한 이야기였다. 이후에도 원작에서의 무대는 쭉 듄이며, 원작의 제목이 듄의 연대기(Dune Chronicle)인 만큼 누가 어떻게 듄을 차지하느냐가 영화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듄의 스파이스와 멜란지가 있어야만 1~3을 모두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스타워즈의 신명나는 라이트 세이버 싸움과 화려한 전투기 조종을 기대했다면 아마도 극장을 나오며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평론가 듀나(Djuna)는 듄을 일컬어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라 행성 로맨스(Planetary Romance)라고 했는데, 공감이 간다. 듄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듄이라는 행성만 나오니까. 그나마 드니 빌뇌브의 <듄>에는 원작에는 묘사도 제대로 안 나오는 칼라단도 등장하고, 하코넨의 모행성도 아주 짧게나마 등장해서 우주 라는 배경에 충실하기 위해 많이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밤에 몰래 하코넨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장면도 원작에서는 묘사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데 실감나면서도 영화가 가벼워지지 않도록 매우 신경 쓴 장면처럼 느껴진다. 억지 감정 쥐어짜는 신파 없이 아주 깔끔하게 표현했다.


듄 스틸컷 ⓒ워너브라더스


특히 사막의 프레멘들이 주인공인 폴 아트레이데스와 레이디 제시카에게 계속 '물이 많다'고 하는데, 바닷가 절벽에 선대 가주들의 무덤이 있는 칼라단을 보면 그 말이 저절로 이해가 간다. 전체적으로 약간 스코틀랜드 같아서 찾아보니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아트레이데스가 켈트족의 전통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켈트 느낌의 백파이프 부는 장면도 나오고, 아트레이데스의 모행성도 스코틀랜드처럼 보이도록 한게 아닐까. 숲이 있고 바다가 있고 비가 내리는 칼라단은 물이라곤 전혀 없는 아라키스와 대조적이라, 낯선 이방인으로 듄에 떨어진 폴의 신세가 더 두드러진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위협과 그 위협에 맞서야 하는 우주 전쟁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정의로운 아트레이데스가 아라키스를 착취하는 하코넨에 맞서서 아라키스를 자유롭게 하고 물이 넘치는 행복한 행성을 만든다고 하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작소설 '듄'과 '듄의 메시아'에서 다루는 것은 아트레이데스의 폴이 어떻게 퀴사츠 헤더락, 이산 알 가입으로 각성하는가, 그리고 그 퀴사츠 헤더락이 어떻게 듄을 구원하는가(또는 실패하는가)가 라는 중요한 두가지 사건이다.


베네 게세리트라는 종교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교단의 유전자 교배 프로그램에 의거해서 예언자의 운명을 타고난 폴은 프레멘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메시아, 이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라고 추앙받게 된다. 이는 베네 게세리트 선교단이 뿌려놓은 미신의 씨앗에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견디며 살아온 프레멘들의 간절한 갈망이 담긴 신앙이다. 이들이 믿는 예언에 따르면 폴은 이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 즉 메시아 이다.


뛰어난 베네 게세리트인 레이디 제시카가 어릴때부터 그에게 베네 게세리트의 훈련법을 전수했고, 원래는 딸이었어야 할 그가 이 능력을 배우고 다루게 되면서 베네 게세리트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폴이 퀴사츠 헤더락이 된다. 베네 게세리트에게는 오랜 시간 축적된 유전자의 배합을 통해 완벽한 퀴사츠 헤더락을 탄생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제시카가 딸을 낳는다는 약속을 깨트리면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되고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폴은 종교적 예언자를 넘어 정치적인 지도자까지 발돋움 하려 한다.



영화에서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를 퀴사츠 헤더락으로 부르는 연출을 통해 폴의 운명을 드러내는데 그 단어의 뜻을 몰라도 누구나 그가 특별한 인물, 즉 메시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와 사막에 떨어져 완전히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한 폴. 하지만 폴은 예지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종교전쟁을 목격하며 울부짖는다. 그는 사막 속으로,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으로 뛰어들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그 운명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원작 소설의 1편까지의 이야기 이다.


우리에게도 메시아라고 불리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전하는 수많은 그의 기적사화들을 알고 있다. 물위를 걷는 기적, 병자를 낫게한 기적, 오천명을 먹인 기적....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동족의 모함에 의해 죽게 된다. 프레멘들이 그렇듯, 이스라엘 사람들은 프레멘들의 물과 같은 절절한 뭔가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원한 구원을 예수는 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위험한 교리로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샀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박해는 이어져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했고, 순교자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널리 퍼져나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지만 그 말이 퍼져나가는 2천년동안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걸고 전쟁을 벌이고,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때로는 이웃을 배척하고, 죽이고, 상처입혔다.


폴은 어떻게 될까? 이미 떠나간 많은 선지자들의 뒤를 따르게 될까? 아니면 예언에 맞서서 자신의 의지로 변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듄은 어떨까? 메시아인 폴이 과연 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프레멘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애초에 구원이란게 가능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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