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실패와 실망

연합고사의 추억

by 오온

직업 특성 상 이력서를 자주 썼다. 자기소개서는 건너뛸 때도 많은데 간혹 정말 간절히 하고 싶은 일에는 자기소개서를 정성스럽게 첨부했다. 한 번은 자기소개서에 '실수와 실패와 실망으로 점철된 사람'이라고 적었다. 시련 속에서도 해결책을 찾는 인재란 걸 어필한 문장이었겠지만, 한동안 그 문장은 나를 상징하는 문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잘 풀리는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요즘, 문득 나의 첫 실패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생각해보면 '나의 첫 실패'는 '나의 첫 기적'과도 맞닿아 있는 사건이었는데, 비밀처럼 꼭꼭 숨겨놓느라 나조차도 잊고 있었다.


요즘은 고등학교 입학 절차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라떼는 연합고사를 통과해야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의 아이들만 시험을 봤기에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내 성적이 조금 애매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면 제법 괜찮은 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이면서도 연합고사는 조금 불안한 정도?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는 건 당연한 수순처럼 생각했던 터라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연합고사를 택했다. 성적이 조금 애매하지만 떨어질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얼마 후 합격 커트라인이 발표됐다. 그때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당시 커트라인 점수를 지금도 기억한다. 여학생 137점, 남학생 117점. 불합격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평소 성적이 비등비등했던 친구들은 모두 합격했는데 몇 점 차이로 나는 절벽 끝에 내몰렸다. 요즘 말로 수치풀이었다. 당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엄마는 다른 대안을 알아봐 줄 여력이 없었다. 당사자인 내가 혼자 고입 재수와 야간 학교를 알아봤다. 알아본다고는 하지만 대책 없이 돌아다닐 뿐, 뾰족한 대안을 세우지도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며칠을 방황하다 일찌감치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이 결정 된 친구와 만났다. 그 친구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시키고 햄버거에 초를 꽂았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소원을 빌라고 하자 친구가 "오온이 고등학교 붙게 해주세요"라고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제야 "진짜 나 이제 어떡하지?"라며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친구에게 쏟아냈다. 열여섯 살 짜리 아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맥없이 텔레비전을 트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학생 커트라인이 남학생에 비해 너무 높다며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섰다는 뉴스였다. 화면 안에서 소리 지르고 우는 엄마들이 모두 내 엄마인 것 같았다. 든든하고 울컥했다. 드디어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 더이상 혼자 울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 촌지가 상식이던 시절, 그로 인해 차별 받은 적도 많아 자식 일에 유난 떠는 아줌마들에게 적대감같은 게 있던 나였다. 그런데 왠지 내가 적대감을 느끼던 그들이 나를 살려주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며칠 후, 기적은 일어났다. 남학생 커트라인 점수였던 117점 이상 받은 여학생들은 모두 합격 처리가 된 것이다. 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커트라인 조정으로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 때문에 교실이 비좁다며 볼멘 소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나에게 온 이 기적을, 이 행운을 가만히 누리고 싶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그만큼 큰 충격으로 와닿았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또래들이 겪을 법한 실패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시위 현장에 나간다. 사람들을 대할 때 편견 없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잊고 있었는데 아마도 연합고사 사건 이후 자연스레 그런 사람으로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작은 목소리라도 함께 내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을 것이다. 별로였던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체득했을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시련은 성장을 동반한다. 그 역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체득된 사실이다. 언제 겪든 시련은 너무 아파서 성장따위 안 해도 되니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지만, 살아있는 한 '한 번 씩 꼭 찾아오는 시련'이 결국은 삶의 증명이자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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