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김홍재 Oct 09. 2020

Me-time, 나를 위한 시간

'미-타임'

가까운 출장지인 도쿄나, 홍콩으로 갈 때는 대부분 주중 아침에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장거리 도시로 해외 출장을 가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비행기를 타야 했다. 출장 가는 해외 도시에서 일정은 주로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장지의 스케줄에 맞춰서 주말에 일찍 비행기를 타는 일은 절대 즐거운 일이 되지 못한다. 서울에서 보낼 주말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런 경우에 컨디션 관리를 위해 보건휴가와 비슷하게 Compensation Leave, ‘보상휴가’를 하루 사용할 수 있지만, 어딘가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누워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함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많고 말도 많은 금융 서비스업에 일하고 있으니 자기 관리 못하는 놈으로 뒷말이 돌기 쉬운 일이라 영양제나 챙겨 먹으며 컨디션 관리하는 방법이 마음 편한 일이다. 인천공항에서 북미 방향으로 날짜 변경선을 넘어가는 장거리 비행. 그중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은 토요일에 출국해서 14시간을 비행해도, 같은 토요일, 같은 시간에 뉴욕에 도착한다.


토요일 오전 10시쯤 인천공항에서 뉴욕 JFK공항으로 이륙한 비행기는 토요일 오전 11시쯤 뉴욕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뉴욕공항까지 비행기 안에서 14시간을 먹고 잤는데, 여전히 토요일 오전이다. 회사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뉴저지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했다. 우리 회사 옆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의 신용도를 ‘A, B, C’와 ‘플러스, 마이너스’ 표시로 평가하는 글로벌 신용평가회사가 있고, 반대편 옆에는 연고나 캡슐, 알약에서 이름을 보았던 글로벌 제약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인데, 뉴욕 옆의 뉴저지(New Jersey)라는 곳이다.     


토요일 오전에 비행기를 탔으니, 비행 중에 깊은 잠을 자기 어렵다. 때때로 지루함을 느낄 만큼 혼자 시간을 때워야 하는 것이 장거리 비행이다. 좋은 점도 있다.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원 없이 멍 때리기가 가능하고, 챙겨 온 책을 읽어도 좋았고, 계속 커피를 마시고 생각하기도 좋은 시간과 공간이다. 이어폰 틈새로 들어오는 약간의 비행기 엔진 소음과 잠을 자지 않는 다른 승객들의 대화 소리는 화이트 노이즈로 두면 된다. 밥은 친절한 승무원들이 기내식으로 때가 되면 알아서 챙겨주고, 커피와 디저트까지 꼬박꼬박 시켜 먹어도 좋은 곳이니, 비행기에서 혼자 먹고, 마시고, 노는 시간은 출발 전부터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삼았다.


14시간이나 되는 비행 중에 말을 줄이려고 작정하면, 딱 서너 마디만 하면 되었다. ‘치킨’이나 ‘비프’, 그리고 ‘커피’이거나 ‘와인’. 말을 할 필요가 거의 없었지만,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끼기보다 꾹 참고 기다려왔던 여유와 휴식의 시간으로 기억되는 것이 장거리 비행길이었다.


토요일 낮에 뉴저지의 호텔에 도착하고 체크인했으니 14시간의 장거리 비행에 이어 월요일 출근 전까지, 앞으로 이틀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당시 뉴욕과 뉴저지에는 신종 플루가 돌고 있어, 친구가 먹고 남은 타미플루를 챙겨 왔으며, 외출이 꺼려지는 상황이었다. 팬데믹을 겪는 요즘처럼 월요일 아침까지 ‘호텔콕’을 선택하고, 식사는 햄버거 룸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장거리 비행에 이어 뉴저지의 호텔방에서 월요일 출근 전까지 혼자 남은 시간은 온전하게 ‘미 타임(me-time)’이다.


‘me-time’


2013년에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새 단어이자 신조어인데, ‘나를 위한 시간 + 혼자만의 시간 + 힐링의 시간’을 뜻하는 단어 ‘미 타임, me-time’이다.


우리말에서 탄생하는 줄임말과 신조어는 주로 10대와 20대가 컴퓨터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 중에 탄생하고,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고 알려지면 신조어가 되는 패턴이다. 남들이 쓰는 ‘신조어’라고 하면, 모르면 안 될 것 같아 ‘티 안 내고’ 검색으로 알아두려는 습성이 있다. 우리 사회의 특성 중에 그런 신조어를 모르면 뒤처지거나 아재가 되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검색으로 뜻을 알아내긴 하지만, 예문을 잘못 만들어 쓰면 ‘노력하는 아재나 꼰대’가 되어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날도 있는데, 신조어 따라잡기는 숙제처럼 검색과 학습의 대상이 되니 부담이 되는 날이 있다.


그런데, 부담이 되는 우리말의 신조어와 달리, 영어식 신조어 ‘me-time’은 듣는 순간, 의미를 검색할 필요도 없이 한숨과 함께, 가슴에 콕콕 파고드는 단어가 된다. ‘시간’, 그리고 ‘내’가 있다. 다른 어떤 길고 어려운 단어도 끼어 있지 않고 쉬운 단어 둘의 조합으로 만들어졌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두 단어가 합쳐져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마음속에 잔잔한 터치를 남긴다.


뉴저지는 뉴욕과 붙어있는 곳이지만, 뉴욕과 달리 창밖으로 숲이 우거지고 너무 커서 사슴이라 부르기 머쓱한 자이언트 사슴이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곳이다. 호텔에서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 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두 눈으로 바람을 볼 수 있는데, 평화로운 뉴저지 교외의 바람은 호수 수면에 생겼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주름이 된다. 태어나고 자란 해운대 바닷가에서 듣던 크고 시원한 파도 소리가 아니어도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러 호수 위에 살짝 앉았다가 사라지는 바람이 남긴 작은 소리를 저장하고 해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 다음 ‘미-타임’을 가질 때 다시 보고 듣고 싶은 풍경이었다.


한 번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호텔 건물 모서리에서 사슴과 부딪힐 뻔한 적도 있었다. 의외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이만하면 14시간 비행에 이어서 완벽한 미-타임(me-time)을 위한 환경이다.     

  

어디서든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이기만 하면 내밀한 나와 침묵으로 대화할 수 있는 ‘미-타임’은 육아로 바쁜 엄마에게도 필요하다고 읽은 적이 있다. 독신이라면 미-타임을 위해 길든 짧든 혼자 휴가를 떠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뉴욕행 비행기에서 처음 발견한 ‘미-타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서울에도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서울 사람들의 주요 서식지는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이거나 오피스 빌딩이다. 말소리와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다. 손에는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 같은 핸드폰이 쉬지 않고 알림을 표시해준다. 서울의 이런 환경에서 내밀한 나와 침묵으로 하는 대화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타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방법은,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디지털 디톡스, Digital Detox’, 또는 영어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테크놀로지 프리, Technology Free’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거나, 차분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될 것이다. 손에는 핸드폰 대신 머그잔이 있고, 머그잔 안에는 마실 커피와 차가 있다. ‘me-time’ 안에는 시간과 나, 나와 시간을 방해하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뉴욕으로 가던 14시간의 비행시간과 주말을 보낸 이틀간 뉴저지 호텔에서 누렸던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 ‘미-타임’에서, 대단한 깨달음을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가슴에 남겨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일이 있다. 나에게 필요한 시간, ‘미-타임’을


1. 규칙적으로

2. 꾸준히

3. 반복해서


가지겠다는 결심이었다. 세 가지 모두 비슷한 말이지만, 무엇보다 김네다와 바쁜 일상에 지쳐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 비행하고 호텔콕하던 시간이 뭐가 그리 좋았었는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실천하려고 했다.


‘미 타임’을 지속해서 가질 수 있는 방법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일했던 스케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꽤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미-타임’을 지속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에, 하루를 오후 3시 기준으로 2 등분하면, 주말에 4개의 큰 덩어리 시간이 생긴다. 주말에 1,2,3,4번 네 개의 시간 덩어리이다. 토요일은 1번과 2번, 일요일은 3번과 4번. 결혼식, 약속, 집안일 등의 할 일들이 있지만, 네 개의 덩어리 시간 중에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갖는 ‘미-타임’으로 정했다. 상황이 생기면 변동을 줄 수 있는 여지를 두되, 주로 1번 토요일 3시 이전 이거나, 4번 일요일 3시 이후의 덩어리 시간 하나를 주로 ‘미 타임’으로 정했다.


주말을 계속 4개로 나누어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주말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이나 티비로부터 자유로운 한 덩어리의 큰 시간을 확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주말을 ‘관리’했다는 느낌이 남는다.


주말에 핸드폰 몇 시간 안 본다고 뭐 그리 급한 일이 있을까? 핸드폰을 꺼 두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좀 걸린다면 톡의 알람만 꺼 두는 시간이어도 좋았다. 진짜 급한 일은 전화가 올 테니까. 스마트폰에서 방해금지 모드, 집중 모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요약하면, 주말마다 오후 세시를 기준으로 주말을 4 등분한다. 그중에 하나를 ‘미 타임’으로 정한다. 테크놀로지 프리. 그리고, 반복. 


어떤 일을 ‘반복’해서 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경우가 많은데, 좋아하는 반복이 되면 즐겁게 반복을 해낼 수 있다. ‘미-타임’을 규칙적으로 갖는 일은 ‘좋아하는 반복’에 가까운 일이었고, 주말을 4 등분하고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약간의 노력만 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일을 ‘반복’을 하다 보면, 그 일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은유, ‘메타포’가 된다.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고 자주 말하지만, 실제 약속과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그 사람을 말해준다. ‘미-타임’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은 주말을 ‘관리’할 줄 알고, 꾸준히 자기를 돌볼 줄 아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외국 회사에서 회사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라고 부르는데, 회사의 EAP 지원으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3년 정도 꾸준히 대화를 이어가던 선생님은 나를 환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3년 동안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심리 상담 선생님에 대해서도 꽤 알 수 있었고, 정서적으로 부담이 있는, 정적인 직업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빡빡한 상담 스케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이유는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내담자의 마음을 여유롭게 듣고 공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리 상담사가 건강해야, 내담자인 나, 친구가 된 나를 정서적으로 안아줄 수 있다고 하셨다.


가족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주말의 1/4을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가지겠다는 것은 이기적인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가족과 자녀에게 이기적인 주말의 ‘미-타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미 타임’의 정의에 대해 언급한 데로, 미타임은 ‘나를 위한 시간 + 혼자만의 시간’에 더하여 ‘힐링의 시간’이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바쁜 일상에서 정서적으로 ‘힐링의 시간’이 되는 일이고, ‘미-타임’의 전과 후를 비교하면 ‘일상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로 이동해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 ‘미-타임’은 내가 정서적으로 여유롭고 건강해지는 일이자, 동시에 가족이 건강해지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일이 된다. 짜증스럽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태, 부정적인 에너지가 남아있는 상태는 나의 가족 구성원에게도 그대로 전이되는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심리 상담 선생님의 스스로 건강한 자신을 만들려는 노력처럼, ‘미-타임’을 가지는 일은 절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선순환의 시작이다. 주말의 1/4이 부담스럽다면, 1/6 또는 1/8을 찾아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네다와 홍콩 출장에 지치고, 서울에서 회식 및 접대 저녁식사로 알콜에 절어 있을 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삶의 형태가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내가 확보할 수 있는 ‘미-타임’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찾아내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 ‘미-타임’은 30대 초반, 뉴욕행 비행기에서 처음 발견한 일이었고, 반복을 통해서 습관이 되었다. 혼자 비행기를 탈 때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비행 중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항공사가 있지만, 다행히 우리의 국적 항공사는 아직 비행 중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설탕 땅콩을 서비스에서 제외시켜 버린 항공사에 인터넷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을 주지 않아서 아직까지 온전한 ‘미-타임’을 즐길 수 있는 비행이 된다.     

혼자인 장거리 비행에서 시작된 ‘미-타임’, 그리고 신종 플루 덕분에 ‘호텔콕’, 그렇게 긴 ‘미-타임’의 끝은 월요일 아침 출근. 당장 월요일인데, 넉넉한 ‘미-타임’을 즐기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나’와 침묵 속의 깊은 대화를 하다 보니, 시차 적응에 있어서는 완패하고 말았다.


긴 비행과 낮잠, 계속 마시던 커피, 틈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다 보면, 낮과 밤은 마음대로였다. 시차 적응 실패자의 출장 첫날은 ‘지독한 젯 랙’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거리 비행에는 자주 들러붙어서 출장이나 여행의 일정을 힘들게 만드는 시차 적응 문제와 ‘젯 랙’이 있다.     


(To be continu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