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보다 무서운 건 눈치다
한국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교육은 국회가 아니라 회의실에서 이뤄진다.
회의는 종종 결정보다 공감대를, 실력보다 눈치를 중시한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보다 “그걸 듣는 누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가”가 더 결정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에서 일보다 ‘위치’를 먼저 계산한다.
말은 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있는 ‘순서’는 따로 있고,
열심히는 할 수 있지만, 열심히 해야 할 ‘분위기’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게, 한국의 조직은 ‘일의 논리’보다 ‘사람의 논리’로 움직인다.
보고는 사실이 아니라 배려로, 기획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위계로 판단된다.
말보다 ‘말투’를, 결과보다 ‘태도’를, 성과보다 ‘관계’를 신경 써야 하는 이곳에서
진짜 정치는 조직 안에 있다. 국회는 그냥 드라마다.
직장 내 정치는 정당 없이도 작동한다.
이해관계와 파벌, 서열과 기회, 침묵과 동의.
이 모든 요소는 현실 정치의 축소판이다. 아니, 어쩌면 더 정교하다.
진짜 정치는 ‘누가 나를 이롭게 하는가’를 기준으로 정당을 고르지만,
직장 내 정치는 ‘누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내 편을 만든다.
회의실에서 말 많은 사람은 '주의 인물'이 되고,
신입이 아이디어를 내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흐른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는 서랍 속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난함'과 '복붙'이 차지한다.
MZ세대가 떠나는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은 합리적으로 설계되었지만,
‘일터’는 여전히 비합리적으로 작동한다.
성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보상은 인간관계에서 결정되고,
수평 문화를 말하지만 회의실은 눈치를 읽는 게임이 된다.
입사할 땐 ‘능력’, 퇴사할 땐 ‘분위기’가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조직 안의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싸움에선 용기보다 침묵이 유리하고, 변화보다 유지가 안전하다.
한국 사회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매일 ‘정치’를 하며 산다.
다만, 그 정치는 국회가 아니라 회의실, 온라인 메신저, 복사기 옆에서 벌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눈치로 읽는 이 문화 속에서,
진짜 문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치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하지만 직장 내 정치는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 기술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입사와 동시에 ‘정치인’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