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과 혁신의 모순

왜 대한민국은 최신 기술을 가장 낡은 방식으로 막는가

by Simon park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보안 프로그램부터 설치하라 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고, 기업은 디지털 전환을 부르짖는다.
학교에선 AI와 빅데이터 교육을 시작했고, 언론은 메타버스를 다음 시대의 먹거리로 치켜세운다.
그런데 당신이 온라인 민원을 넣으려 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익숙한 낯짝—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제 안다.
그 창은 ‘보안’을 위한 게 아니라, ‘면피’를 위한 것이다.

속도도, 효율도, 사용자 경험도 모두 망가뜨리며,
그저 "우린 책임을 다했다"는 증거로 기능한다.


액티브X의 좀비가 아직도 살아 있고,
공인인증서의 유령이 모양만 바꾼 채 귀환한다.
웹사이트마다 설치해야 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혁신이 아니라 관료적 공포의 화석들이다.


왜 이런 모순이 계속되는 걸까?

첫째, 혁신은 책임을 요구하지만, 보안은 책임을 회피하게 해준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한국 조직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막는다’.
엑셀 파일 하나 열려 해도 “외부 유입 차단”이라는 메시지가 먼저 뜬다.
‘혁신하라’면서, ‘그건 위험하다’는 이중 메시지.
결국 아무것도 혁신되지 않는다.


둘째, 보안이라는 명분은 어떤 혁신보다도 강력한 정당화 도구다.
사용자는 불편해도 불만을 말할 수 없다.
왜냐고?
“그건 다 당신을 위한 보안”이니까.
감시도, 통제도, 제한도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합리화된다.
이 얼마나 완벽한 감옥인가.
우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우리를 철저히 통제하는 시스템.


셋째, 보안 산업은 혁신의 무덤이 되었다.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대신,
수십 년 된 보안 솔루션에 예산과 에너지가 몰린다.
왜냐하면 예산이 혁신으로 가면 위험하지만,
보안으로 가면 책임 면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혁신은 '말'이 되고,

보안은 '면책'이 된다.

이건 기술의 역행이자, 의식의 퇴보다.


정말 아이러니한 건,
우린 해커보다 사용자를 더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해커는 외부에 있고, 사용자는 내부에 있다.
그래서 시스템은 해커를 막는 것보다,
사용자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집중한다.
의심은 기술 밖에 있는 적이 아니라, 기술 안에 있는 ‘우리’에게 향한다.


그래서 우리는 “혁신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혁신은 늘 누군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보안을 이유로, 신기술은 미뤄지고, 창의성은 포기된다.


“보안을 강화한다”는 말이 “혁신을 멈춘다”는 뜻으로 읽히는 나라.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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