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군사대국이 되고, 韓은 ‘전략적 침묵’을 택한다.

동맹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다

by Simon park

한때, 일본은 군대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나라였다.
이제는 “전수방위(專守防衛)”를 말하면서도,
F-35 전투기를 수십 대 더 사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전후 80년.
패전국의 그림자를 벗은 일본은 이제 ‘정상 국가’가 아니라, ‘전략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한국은?
동일한 위협 아래 있지만, 놀랍도록 조용하다.


한국의 전략은 침묵이다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은 유독 일본의 군사화에 대해 입을 닫는다.
위안부, 독도, 강제징용이라는 정서적 지뢰밭을 걷고 있음에도,
정부는 오히려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자고 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미일 협력 구조는 미국이 그리는 인도-태평양 안보 아키텍처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서 한국은 지정학적 완충지대이자, 기술 공급망의 핵심이다.
즉, ‘예스’ 말고는 말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한쪽이 군비를 늘릴 때, 다른 한쪽은 입을 닫는다

일본은 2023년에만 6.8조엔(약 60조 원)을 군비로 썼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로 재무장 중이고, 대만 유사시를 가정한 작전계획도 미국과 공유한다.
한국은 이런 급격한 안보 지형 변화 속에서, 안보 정책보다 외교 수사에 집중한다.
“전략적 모호성”, “균형 외교” 같은 말로 실제로는 전략적 침묵을 택하고 있다.

침묵은 전략일 수 있는가?
혹은, 전략이 아니라 무기력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외교 주권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지금 한국은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동아시아 안보 사면체 안에서 사실상 ‘자동 반응’만 하고 있다.
정책은 있고 철학은 없다.

외교는 있지만 주권은 없다.

한미동맹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 등에서

한국은 매번 결정된 이후의 협상만 할 뿐이었다.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 결정에 반대하지도 못한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동맹’인가?


지정학적 종속이 자율을 위협할 때

사르트르는 자유를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책임지고 있는가?

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이 이해의 일치가 아닌, 구조적 종속으로 작동할 때 그건 자율이 아니라 의존이다.
지금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도 자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자기 전략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이 없으면, 침묵도 전략이 아니다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어가는 이유는 단지 안보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 서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리더, 평화적 패권, 기술 강국.
이런 이야기 속에서 군사력은 수단이자 신뢰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이야기가 없다.
그저 ‘위협에 대응한다’, ‘경제를 지킨다’, ‘균형을 유지한다’는 말뿐이다.

이야기가 없는 국가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 속 캐릭터가 되기 쉽다.

전략적 침묵은, 때때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침묵 뒤에 아무 철학도, 아무 비전도 없다면
그건 침묵이 아니라 침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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