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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an 18. 2024

비앙카

영화 7ㅡ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찌 한 두 번 이랴……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지하철을 타려고 플랫폼에 서니 앞 스크린 도어에  쓰인 시이다. 갱년기를 넘어가며  한창 마음이 힘들어할 때 친구가 메일로 시 한 편을 보내줬다. 그때 이 시를 읽어 내려가며 마지막 한 구절이 얼어붙은 내 마음에 한 줄기 훈풍을 불어주었다. 그 시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 같다. 겨울이 지나는 것을 기다리면 꽃 필 차례가 있다는 것. 뻔한 자연이치이지만 이 한 구절 때문에 어두운 터널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고, 마지막 구절을 부적처럼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이 시를 생각할 때마다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주인공이 자신만의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과 어울리는 과정이 독특하고 의미 있게 그려진 영화이다.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주인공 ‘라스’라는 청년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그래서 같이 사는 형 부부는 늘 동생이 걱정스럽다. 어느 날 ‘라스’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집으로 데리고 오겠단다.

 형 부부는 잔뜩 기대했지만 막상 여자 친구라고 데리고 온 사람은 휠체어에 앉은 사람 크기만 한 리얼돌! 이름은 ‘비앙카’라고 한다. 형은 기가 막혔지만 부모 없이 형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동생을 생각하며 리얼돌 비앙카를 동생의 여자 친구로 인정을 해 준다. 한 발 더 나아가 라스는 비앙카를 동네주민들의 모임에도 데리고 가서 소개를 시키고, 마을 사람들도 리얼돌 비앙카를 자연스럽게 대하며 말을 걸어준다.  덕분에 라스는 비앙카를 통해 동네사람들과의 교제가 늘어나게 된다.

 비앙카와 행복하게 지내던 라스는 어느 날, 비앙카가 아프다며 병원에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의사와 얘기를 하며 비앙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의사는 비앙카의 사망선고를 내리고 라스는 그제야 상처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게 되며 평소 라스를 좋아하던 동료 여직원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비앙카’라는 리얼돌을 통해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걸까?’를 계속 생각하며 본 영화였다. 비앙카와 지내며  서서히 변화되어 가던 라스는 스스로 비앙카의 병과 죽음을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비앙카의 죽음과 함께 떠나보내며 내면이 회복된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리얼돌을 통하여서 치유되는 과정을 보며 현실에서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며 참 감동스러웠던 것은 비현실적인 라스의 생각과 행동을 형과 마을 사람들, 심지어 의사까지도 이해하며 묵묵히 기다리며 지켜봐 주는 것이다. 만약 리얼돌이 아니고 라스의 아픔을 섣불리 해결해 주려는  여자 친구였다면 라스의 내면은 회복되었을까? 오히려 말 못 하는 리얼돌이기 때문에 라스가 스스로 회복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현실에 맞지 않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며 바로잡기 위해 온갖 충고와 으름장을 놓고 내 뜻에 맞추게끔 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고 또 그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어떤 이는 가만히 들어줄 곁의 사람을,  아니면  공감해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영화를 통해,  어설픈 충고와 성급히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내면의 이해와 기다림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가 보내 준 시 한 편은 긴 터널 같은 상황 속에 갇혀 있던 나에게 기다리면  꽃 피는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준 ‘비앙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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