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Jan 03. 2024

속일 수 없는 것

영화 6ㅡ파계

    오드리 햅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번은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커트의 상큼한 모습으로 변한다. 한번 스타일이라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한 적도 있다. 영화에서 청순 발랄한 번의 모습이 강렬하다. 그 뒤로 번이 출연하는 영화를 몇 번 봤지만 비슷한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고전 영화 「파계」에서 번은 성직자(수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아와  엄격한 계율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숙한 모습을 연기한다. 수녀로 변신한 그녀는  실제 인생처럼  영화에서도 헌신적이고 사랑이 많은 수녀로 나온다.


벨기에의 유명의사의 딸 가브리엘은 수녀가 되기  위해 가족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녀원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너무나 엄격한 규율에 정죄감으로 갈등하는 가브리엘. 간호 수녀로 콩고에 가기를 원했고 콩고에 도착한다. 유능한 의사의 보조로서 최선을 다하던 가브리엘은 열악한 근무시간으로 결핵에 걸린다. 의사는 가브리엘의 폐결핵을 치료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읽는다. 좋은 수녀가 되고 싶지만 엄격한 규율을 따라가지 못해 괴로워하는 가브리엘의 속마음을 지적하는 의사. 그녀는 벨기에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오고, 전쟁이 시작되며 아버지는 독일군에게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를 죽인 독일군까지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는 계율에 그녀는 ‘자신과 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원장수녀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파계를 결정하고, 들어올 때 입었던 세상의 옷으로 갈아입고 문 하나 너머의 세상으로 걸어 나간다


  훌륭한 간호수녀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칭찬에 결코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가브리엘. 유명 의사의 딸이라는 사실과 그에 따른 기대와 칭찬이  가브리엘에게는 괴롭다.

원장 수녀에게  말한

'자신과 신은 속일 수 없다' 가브리엘의 고백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정직함이며 동시에 내 마음을 찌르는  말이다.


  나는 5남매의 막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까지  모두 윗사람뿐인 대가족이라는 환경에서 내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표현은 고사하고 존재감 없는  늘 어리숙한 막내로 취급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라면서 밖에서는 똘똘하게 보여야 된다는 압박감인지  학교나 사람들 앞에서는 칭찬 듣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애를 써왔다. 살아온 나이와 경험도 있지만,   능력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자신은 알고 있다. 사람들은 겉모습의 나를 보고  일을 맡긴다. 정작 집에서는 허당소리 듣는 내가  주어진 가정 밖의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간혹  듣는 과한 칭찬이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그 칭찬은 나의 진짜 모습은 아니다. 사람이  안팎이 꼭 같을 수는 없지만 진실은 나만이 알기 때문에,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을 안다. 칭찬받는 기쁨은 잠시이고 불편한 양심은 오래간다.


  누구에게나 도덕과 양심은 있기 건강한 사람은 본능과 욕구를  억제하고 조절한다. 반면  지나치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떤  이는  후회로, 어떤 이는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살아간다.  

한때,  상대방에게  실수의  말이나  행동한 기억이 떠오르면 미안함과 후회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하도 괴로워  상담을 받으니 '초자아'가 강해서 그렇단다.

늘 규칙과 예의를 목숨같이 여기셨던 아버지의  교육 탓인가 싶다. 병은 아니니 다행이다 싶었다. 초자아가 강하다는 의사의 말이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자신을 알고 나니 후회에서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가브리엘도 내내 정죄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선다. 수도원 뒷문이 열리고 바로 이어지는 긴 골목. 비밀스럽고 엄숙한 수도원과 속세는  문 하나 넘어 있었다.

  영화를 보며 양심과 도덕방황. 자아의 방황. 이런 방황에서 벗어나는 길도 어쩌면  처럼 단순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속이며 도저히 거룩한 성직자가 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가브리엘처럼  나도 건강한 자아와   솔직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햅번은   봉사와 헌신으로 살다 생을 마쳤다. 그녀는 그 삶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바로 그녀였다.

햅번은 언제나 옳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중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