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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Aug 21. 2024

An American in Paris

윌리엄 크리스티의 샤르팡티에 <메데이아>

노블레스 매거진 2024년 9월호 게재


하버드 대학 졸업 뒤 다트머스 대학에서 가르치던 하프시코드 연주자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 1944년생)가 베트남 전쟁의 징병을 피해 파리에 온 것은 1971년이다. 1979년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의 작품에서 이름을 가져온 ‘레 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 ‘꽃피는 예술’이란 뜻)을 창단한 그는 바로크 음악사로 돌진해 전인미답의 업적을 쌓으며 어느 프랑스 예술가보다 이 나라 정신을 알리는 데에 힘써왔다. 

2023-07 Les Arts Florissants at Lanaudière. © Agence Big Jaw

지난 시즌 파리 오페라는 레 자르 플로리상이 연주하는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메데이아 Médée>를 주력 공연으로 내세웠다. 1984년과 1994년 이들이 연거푸 녹음해 세상에 알린 숨은 걸작이었다. 마침 옛 동료이던 에르베 니케가 작년에 샹젤리제 극장에서 같은 곡을 지휘해 <메데이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달에 살펴보았듯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는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작품이다. 남편의 외도를 자녀 살해로 되갚는 비상식적 이야기가 어떻게 아직도 호소력을 가질까? 현대에도 종종 자식 살해의 비극이 전하곤 하지만 대개는 빈곤이나 장애를 비관해 벌어진 가슴 아픈 사연이거나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이고, 그나마 동정과 연민으로 가리기엔 큰 죄이다. 하물며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제 자식을 죽였다니, 그러면 원한이 풀리기나 하는 것인가!

메데이아 신화를 그린 폼페이 벽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에 그쳤다면 모를까, 로마의 세네카도 이를 다시 소환했다. 루이 13세 때 피에르 코르네유가 <메데이아 Médée>(1635)를 공연했고, 루이 14세 때인 1693년 그 희곡을 각색한 샤르팡티에의 오페라가 초연되었다. 당시 음악을 향한 열정이 줄었던 국왕 대신 왕세자가 공연을 후원했다. 샤르팡티에는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참신한 화성과 세련된 춤곡을 프랑스어에 접목해 전임자 장 바티스트 륄리(피렌체 출신이다)의 성과를 일신했다. 지나치게 이탈리아풍이라 생각한 관객은 <메데이아>를 깎아내렸고, 작품은 단 열 번 공연 뒤 막을 내리는 푸대접을 받았다. 

<메데이아>가 초연된 파리 팔레 루아얄, 현재 프랑스 정부 청사이다

한 세기 뒤인 1797년, 이번에도 피렌체에서 온 루이지 케루비니가 똑같은 코르네유 원작의 <메데이아>에 프랑스혁명의 공기를 담았다. 베토벤까지 열광케 한 케루비니의 <메데이아>는 19세기 내내 프랑스보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끌다가 20세기 그리스 태생의 마리아 칼라스로 인해 급부상했다. 피렌체(1953)와 밀라노(1954)의 연이은 성공은 바다 건너 댈러스(1958)까지 이어졌고, 칼라스는 ‘메데이아의 화신’이 되었다. 

Maria Callas’s Medea in Dallas (1958) [Rare Video]

그런데 운명이 그녀를 옭아맸다. 1968년 칼라스의 애인 오나시스는 이아손처럼 그녀를 버리고 케네디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했다. 이듬해 칼라스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감독한 <메데이아 Medea>에 출연했다. 노래 한 곡 없이 몇 마디 대사뿐이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칼라스는 메데이아였다.

Medea (1969) by Pier Paolo Pasolini, Clip: Medea rages

파리 오페라의 주연은 이제 겨우 서른이 된 메조소프라노 레아 데잔드레(Lea Desandre, 1993년생)이다. 2015년부터 크리스티의 마스터클래스 ‘목소리의 정원 Jardin des Voix’에서 훈련받은 그녀는 이듬해 이미 케루비니의 <메데이아>로 데뷔했고, 이후 정상의 무대를 섭렵하며 샤르팡티에의 <메데이아>로 우뚝 섰다. 공연 직후 그녀는 노르망디 상륙 8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불렀고, 여름 동안은 엑상프로방스 축제에서 장 필리프 라모의 잊힌 오페라 <삼손>을 부활시키는 데 매진했다. 크리스티가 서곡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샤르팡티에의 마법에 사로잡혔다. 실연으로 처음 본 데잔드레의 존재감은 역시 대단했다. 메데이아의 걱정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광기가 되는 3시간 동안 데잔드레의 숨이 가르니에 극장을 가득 채웠다.

(2025년 5월 30일까지 전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크리스티와 레 자르 플로리상은 17세기의 샤르팡티에와 다음 세기의 라모를 21세기에서 경쟁시킨다. 그러면 메데이아의 복수가 정당화될까? <메데이아>를, 콜키스(지금의 조지아) 출신의 미개한 마녀가 앞선 문명의 그리스(코린트)에서 빚은 ‘문화 지체’로 해석하기도 한다. 샤르팡티에가 이탈리아 물을 먹었다고 파리에서 이방인 취급당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에우리피데스 당시 아테네는 이교도 여인과 사이에 낳은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법률을 시행했다. 제한된 토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정책은 초기에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폐쇄적인 결혼제도는 인구 감소를 불러와 결국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에우리피데스가 외국인 아내와 한 약속을 어기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아닐까? 메데이아가 화난 것은 그저 남편의 부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공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리 루브르와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의 에우리피데스 조각

다음날, 생각을 매듭짓기 위해 현재 상원 의사당인 뤽상부르 궁전으로 향했다. 유럽 중앙에 자리한 프랑스는 줄곧 혼인을 외교의 한 축으로 삼았다. 왕비 대부분은 유력한 이웃 나라 출신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앙리 2세의 아내 카트린과 앙리 4세의 아내 마리였다. 두 왕비는 르네상스 문화의 요람이라 일컫는 메디치 가문 태생이었지만, 프랑스가 보기엔 도시 국가 피렌체나 토스카나 공국에 불과했기에 촌색시 취급을 받았고, 국왕의 애정도 쉽게 얻지 못한 ‘메데이아 신세’였다. 스페인이나 오스트리아 태생의 다른 왕비도 원치 않는 결혼의 희생양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쯤 되면 왕자의 교육으로 <메데이아> 만한 교본이 또 있을까? 왕비와 화목하지 못하면 자식(미래)을 잃는 것과 같은 화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뤽상부르 궁전 내 메디시스 분수

마리 왕비가 고향 피렌체의 피티 궁전을 본떠 만든 뤽상부르 궁전 한구석에는 메디시스 분수(Fontaine Médicis)가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분수 중앙에는 그리스 신화 속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묘사되어 있다. 거인 폴리페모스는 님프 갈라테이아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양치기 아키스를 향해 있다. 이는 메데이아와 거꾸로, 현실이 강요하는 사랑과 이상적인 사랑 사이에서 정략결혼의 희생이 된 여러 왕비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파리 오페라 <메데이아>의 마지막 장면

톨레랑스(Tolérance: 관용)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 정신을 아우르는 최선의 가치이다.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가 혼재한 현대 프랑스, 나아가 지구촌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에우리피데스, 코르네유, 샤르팡티에, 나아가 ‘파리의 아메리카인’ 크리스티, 이탈리아 아빠와 프랑스 엄마를 둔 데잔드레가 모두 톨레랑스의 기수이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 기차 안에 함께 탄 흑백 커플과 그들의 아이가 톨레랑스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아직도 아이들의 친구, 해리 포터

아이는 태블릿 PC에 나오는 또 다른 이방인 이야기 <해리포터, 마법의 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금방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하다. 아참, 런던과 파리는 1시간 시차가 있다.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한다.

각각 좌우에서 본 세븐 시스터스 해안 절벽

다음날 나는 영국 남해안 절경인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에 와 있다. 군락을 이룬 노란색 고스(Gorse) 덤불이 흰 석회암 절벽과 끝없이 어우러졌다. 많은 영화 배경이던 이곳을 최근에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다시 봤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주인공이 마지막을 보낼 곳으로 세븐시스터즈를 찾는다. 대략 1억 4천만 년에서 6천5백만 년 전에 형성된 백악기 지형이니 천문학적인 규모의 SF 영화를 찍기 적합하다. 그에 비하면 인간이 만든 신석기 유적 스톤헨지는 ‘채’ 1만 년도 안 되었다. 

해안 인근 마을 앨프리스톤(Alfristone)에는 600년 전에 지은 목사관이 보존되어 있고 1397년에 인가받은 여인숙도 영업 중이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뽑혔던 ‘걱정 많은 책방’(Much Ado Books)에 한참 머물렀다. 

셰익스피어의 <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사랑에 무관심하던 두 주인공을 누구보다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든 한바탕 소동!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걱정했으면 결과는 좋아야 한다. 이번 여행도, 파리 올림픽도, 올여름도, 2024년도, 이번 생애도 무사하길 기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런던으로 돌린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이번엔 통하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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