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골키퍼 쇄국정책...여전히 필수불가결한 제도일까?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축구팬에 불과하다. 아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미디어에 축구를 주제로 몇 차례 글을 기고해본 적이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축구나 스포츠 비즈니스에 대해 특별히 전문적인 공부를 해본 적은 없어 이러한 칼럼을 쓰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다. 그러하기에 지금 내가 하는 얘기들이 현 시점의 한국프로축구 시장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생각이 있기에 그것을 정리,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 내용들 중 일부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실행이 가능한 것, 구단 등 K리그의 구성원들과 협의가 필요한 것, 혹은 일고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담겨 있던 아이디어들, 나라 밖에서 스포츠를 즐기며 목격한 것들에서 비롯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지금은 21세기다. 그것도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난 2018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는 다소 구시대적인 로컬룰이 여전히 유효하다. 10만원대의 월급을 받으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역 군인, 경찰들이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프로페셔널 선수들과 동일한 리그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을 꼬집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실은 차치하고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이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특정 포지션에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포워드, 윙어, 미드필더, 센터백, 풀백... 그라운드의 모든 포지션은 가능하지만 단 하나의 포지션 골키퍼만큼은 한국인이 아니라면 K리그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일견 비상식적인 조항이다. 이제는 너무나 오래 되어 대수롭지 않게 당연한 로컬룰로 여겨지기도 하나 전 세계의 프로축구 시장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며 국가와 리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상을 생각하면 조금은 넌센스처럼 느껴지는 규정이기도 하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999년부터 외국인 골키퍼의 영입을 완전 금지하고 있다. 그 전의 몇 년간은 외국인 골키퍼의 출전 비중을 제한하는 일종의 포지션 쿼터 제도가 적용됐다. 외국인 GK들은 1996년은 시즌의 2/3 내에서, 1997년은 시즌의 1/2 내에서 출전할 수 있었고, 월드컵 영향으로 경기수가 적었던 1998년에는 오직 10게임 이내로 출전이 허용되었다. 오랜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규정이 신설되는 데에는 '신의손' 사리체프의 영향이 컸다. 구 소련 출신의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가 K리그의 판도를 바꾸는 활약을 펼치자 다수의 K리그 구단들은 너도 나도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나섰다. 이 시기에 활약한 외국인 GK로는 포항의 드라간, 부산의 일리치, 부천의 샤샤, 전북의 알렉세이, 전남의 유리쉬시킨 등이 있었다. 실력과 경력이 출중한 동시에 몸값 역시 합리적이었던 유러피언 골리들이 K리그에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선수들은 백업 키퍼로 밀려났고, 전국의 축구 꿈나무들은 골키퍼 포지션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K리그는 국내 선수 보호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골키퍼의 출전을 제한해갔으며, 종국에는 모든 외국인 골키퍼가 한국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오직 하나의 자리만이 주어지는 특수 포지션의 자국 선수들을 보호하고, 꾸준한 출장을 통한 경기력 유지로 국내 골키퍼들의 기량을 발전시킬 수도 있는 합리적인 규정으로 보이기도 하나, 그때의 잣대를 현 시점의 K리그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인 골키퍼가 득세했던 1990년대 중반의 K리그는 겨우 7~8개 팀 정도가 경쟁하는 작은 리그였고, 경기수 역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K리그1(클래식), K리그2(챌린지)에 모두 22개의 클럽이 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선수 영입이 자유롭지 않은 군경팀이 속해 있기는 하지만.) 그밖에 머지 않은 미래에 프로로 전환될 수 있는 내셔널리그, K3리그 등의 하부리그도 잘 조직되어 선수들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구단들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리그 경기의 수도 크게 늘었으며, FA컵의 규모와 가치도 커졌으며, 국제대회인 아시아챔피언스리그(및 클럽월드컵)까지 열려 한 시즌에 구단이 소화해야 할 게임이 클럽에 따라 많게는 50게임 이상 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는 기회도 있다. 알다시피 최근 들어 한국 골키퍼들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일본의 J리그로 진출하고 있는 추세다. J리그 클럽에 소속된 한국인 GK는 10명 안팎에 이를 정도며, 그중에 권순태, 정성룡, 김승규 등은 K리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최정상급 골키퍼였다.
훌륭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해외로 떠나 보내야 하는 구단도 속이 쓰리겠지만, 그들의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즐길 수 없는 팬들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팬들을 위해서라도 훌륭한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할 수 있다면 리그와 클럽에 경쟁력이 배가될 수 있지 않을까? 팬들은 특급 골잡이, 천재 미드필더도 보고 싶어하지만, 팀의 수호신과도 같은 철벽 골키퍼 역시 K리그 그라운드에서 만나기를 원한다. 이제는 정말 외국인 골키퍼 영입 금지라는 규정에 조금씩 변화를 줘야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당장 무조건적인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몇 년간 출전 경기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두며 완전 금지에 이르렀듯이, 하나 둘씩 작은 변화를 주면서 외국인 골키퍼들에게도 K리그의 골문을 지킬 '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넓지 않은 아주 작은 문틈일 지라도 말이다.
어떤 팀이든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바라지만, 당장 외국인 골키퍼 보유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서는 클럽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명맥이 끊겨져왔던 탓에 조심스레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축구라는 종목의 그 어떤 포지션보다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한 자리이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운영보다는 방어적, 보수적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K리그 구단, 지도자들의 특성상 거의 '미지와의 조우'와도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할 팀이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이다. 과거처럼 리그의 거의 모든 팀들이 외국인 GK를 보유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되는 팀도 생각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니 K리그의 모든 골문을 푸른 눈의 사내들이 지키게 되지 않을까 우려할 필요는 없다.
K리그의 경기력 수준 향상, 임대, 이적 등으로 인한 수익 발생, 팬들을 위한 볼 거리 증대, 세계적인 축구 트렌드에 발 맞추는 것... 그 모든 것을 생각해도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을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싶다. 아시안 쿼터만이라도 골키퍼 영입 제한을 해제할 것! 혹은 현행 4명 보유(비아시아 3명, 아시아 1명)의 외국인 쿼터를 변경해 골키퍼를 영입하는 구단은 2명의 쿼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부적절한 조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K리그 클럽들 중 4명의 외국인 보유 쿼터를 모두 활용하는 팀이 많은 것은 아니니 골키퍼 1명과 다른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 2명을 보유하게 하는 것도 크게 불합리한 밸런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외국인 골키퍼 영입이 가능해지면서 발생하는 시행착오 역시 어느 정도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축구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은 조금이라도 바꿔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축구 K리그의 가치에 걸맞은 움직임이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프로축구의 이상향으로 바라본다.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것이 옳고, K리그의 모든 것이 그르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순히 '골키퍼' 포지션에 한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만약 프리미어리그에서 외국인 골키퍼 영입, 보유를 전면 금지한다는 규정을 신설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축구적인 이슈로 찬반 양론이 들끓는 정도가 아니라 상식, 비상식의 문제로 커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는 스페인 국적의 데 헤아다.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는 브라질의 에데르송, 첼시는 벨기에의 쿠르트와, 아스날은 체코의 체흐, 리버풀은 독일의 카리우스, 토트넘은 프랑스의 요리스를 쓰고 있다. 그 어느 순간 이들이 모두 리그에서 사라진다면, 클럽과 리그 모두 경쟁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팬들이 커다란 즐거움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팬들의 즐거움을 앗아간 리그가 과연 매력적인 리그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K리그는 우수한 외국인 골키퍼들의 플레이를 만끽하는 팬들의 즐거움을 앗아갔다. 이제는 그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축구팬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상 K리그에서 다시 외국인 골키퍼를 보고 싶다는 한 축구팬의 넋두리였다.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전북 현대 모터스나 FC서울 같은 빅클럽에는 팀의 명성과 수준에 맞는 훌륭한 외국인 골키퍼가 꼭 한 명 있어야 할 것 같다. 전북과 서울의 골문은 현재의 골키퍼들이 지켜내기에는 조금 넓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