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나탈레스 그리고 토레스 델 파이네로의 세 번째 여행입니다.
한국까지 합쳐도 어떤 연고가 없는 장소를 세 번씩이나 가봤던 곳이 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반구 겨울인 6-8월에는 토레스 델 파이네 여행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11-3월 기간은 여행하기에는 딱 좋지만, 항공권, 호텔 등 제반 경비가 많이 비쌉니다.
항공권도 호텔비도 저렴한 비수기 9월 한 주말에 떠나기로 합니다.
여전히 한겨울 강추위가 몰아칠 수도 있습니다.
운 좋으면 한여름 못지않는 청명한 날씨 속 환상적인 토레스델파이네를 만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은 특히나 더, 날씨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함께 리스크를 걸어볼 두 가족을 섭외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기후인 줄 뻔히 알면서도...
3주 전부터 우리가 여행할 해당 주말 날씨를 수시로 체크합니다.
다른 가족을 함께 끌고 간다는 점이 역시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2박 3일 일정이지만, 금요일 밤늦게 도착하기에, 실질적으로는 1박 2일 여행입니다.
이틀 중 하루는 눈비 예보, 하루는 흐린 날씨 상황이 출발 며칠 전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괜히 함께 가자고 꼬셨나 계속 후회됩니다.
산티아고에서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반이 걸립니다.
하루에 보통 대여섯 차례 운항합니다만, 대부분은 푸에르토 몬트 경유입니다.
잘생긴 화산들과 반짝반짝 석양빛을 반사하는 호수. 언제 보더라도 남부 칠레는 축복입니다.
잠시 멈춰서 내릴 사람 내리고, 탈 사람은 올라탑니다.
칠레 최남단 항구 푼타 아레나스에 착륙합니다.
도착 후 한참 동안 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강풍에 화물칸 문을 열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 거센 바람 속에 안전하게 착륙한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네비를 찍어보니, 밤 11시 반은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수기, 푸에르토 나탈레스 대부분 식당은 11시 이전에 닫습니다.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기다려 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기다릴테니 천천히 오라고 합니다.
대 식구 쫄쫄 굶길까봐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입니다.
이런저런 음식을 고루 시켜서 함께 맛봅니다.
킹크랩, 해산물 스프 등등.. 청정한 바다를 그대로 씹는 듯, 참 신선합니다.
한시가 다되어 호텔에 도착합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들 탄성이 나옵니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감탄하며...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엘키계곡 못지않은 별밤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첫날입니다.
전날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합니다.
매정하게 이불 걷어내고 흔들어 깨웁니다.
막 조식이 준비 중입니다.
일찌감치 등장한 우리팀 때문에 주방이 갑자기 바빠집니다.
3면에 창이 나있는 예쁜 식당입니다. 식사를 다 마치니, 동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거실 벽에 붙여두었던 옛 사진을 재현해 봅니다.
더 자고 싶은 아이들 억지로 깨워 아침밥 먹일때 나오는 표정입니다.
비슷하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엊그제 이곳을 방문했던 것 같은데.. 참... 8년이라는 세월이 찰나입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출발해서 토레스 데 파이네 입구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웅장한 대자연에 감탄 감탄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대부분 시선은 수키로, 수십 킬로 이상 원거리에 맞춰져 있습니다. 시력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검문소가 등장합니다. 신분증과 면허증을 요구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까지 꼼꼼히 적습니다. 검문소 바로옆은 휴게실입니다.
어렴풋이 예전 기억이 납니다.
맞다.. 이곳에서도 멋진 사진 한 장 찍었었는데..ㅎ
이번에는 단체로 멋진 사진 한 장 남겨봅니다.
휴게소를 벗어나자마자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얼마 못가 좀 전 휴게실에서 보았던 미니버스 두대가 멀찌감치 앞에서 서는 것이 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 듯한데… 무얼까?
여행객들이 철망 앞에서 모여서 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몬가 강한 예감이 옵니다. 버스 뒤에 정차하고 따라서 내려봅니다.
철조망에서 20미터쯤 안쪽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면 송아지 만한 거대한 콘돌이 양을 뜯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불편했나 봅니다. 양고기 뜯던 것을 멈추고 콘돌이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육중한 몸이 바로 날아오르지를 못합니다. 네댓 번 정도일까.. 무거운 날갯짓을 퍼덕퍼덕 거리더니, 휘청휘청 거리며 바람을 탑니다. 살짝 오르는 듯 내리는 듯 하더니 이륙에 성공합니다.
예상 못한 광경에 놀라 넋 놓고 바라봅니다. 번뜩 정신이 들어 사진기를 꺼냅니다.
콘돌이 멀찌감치 날아오른 후에야 모습을 담습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
역시…
첫인상부터 강렬합니다.
이런걸 난생 처음보는 광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 하루 어떤 어드벤처를 만나게 될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대만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