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목마름

by 서령

밤이 깊어질수록 목이 타들어 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단순히 물이 고픈 육체적인 갈증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온종일 무언가를 채우고 또 채웠는데도, 이상하게 잠들기 전에는 부족하다는 기분이 몰려온다. 마치 하루 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둔 빈 공간이 밤이 되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낮에는 정신없이 바쁘다.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 수없이 오가는 메시지 속에서 나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밤은 다르다.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세상이 고요해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시끄러워진다. 목마름은 바로 그 순간 찾아온다.


그 갈증은 단순히 물로 채워지지 않는다. 책 한 장을 넘기고 싶어 지거나, 잊고 지낸 이름을 떠올리고 싶어 지거나, 혹은 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의 한 조각을 꺼내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갈증의 모양으로 변해 다가오고, 또 어떤 날은 사소한 후회가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 모든 것들이 밤이라는 그릇 안에서 ‘목마름’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진다.


생각해 보면 목마름이란 참 정직한 신호다. 몸이 물을 필요로 하듯, 마음 또한 무언가를 원할 때 목마름으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목마름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족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고, 또 더 깊이 바라보고 싶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거다.


나는 때때로 그 갈증을 억지로 달래려 했던 적이 있다. 밤늦게 무심코 열어버린 냉장고, 아무 생각 없이 켜놓은 드라마, 혹은 손에 쥔 휴대폰 화면. 순간은 달콤했지만 결국 남은 건 더 큰 공허감이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고 더 갈증이 심해진 것처럼. 그때 깨달았다. 목마름은 억지로 지워야 할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라는 것을.


밤은 우리에게 그 목소리를 더 크게 들려준다. 낮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묻어두었던 마음의 갈증이, 고요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갈증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다. 어떤 이는 글을 쓰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눈을 감고 오래 호흡한다. 방법은 달라도 결국 그 갈증은 우리를 더 깊은 내면으로 이끌어준다.


밤과 목마름은 닮아 있다. 둘 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성장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밤이 있어야 하루가 온전히 마무리되듯, 목마름이 있어야 우리는 다시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목마름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갈증을 느낀다는 건 아직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오늘도 잠들기 전, 목이 마르다는 신호가 찾아온다. 나는 천천히 물 한 잔을 마시며 그 갈증 속에서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목마름은 단순히 목구멍의 건조함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묻는 또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고.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