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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omile Jan 14. 2016

신을 위한 분사 憤死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에 나타난 죽음의 형태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에 소개된 책이어서 관심을 가지고 처음 읽었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이 쓴 <우국>의 주인공 다께야마 신지 중위처럼 칼로 자기 배를 갈라 자결했다. 향년 45세. 이 할복자살은 그가 평생 꿈꾸어 온 환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우국>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고, 할복을 연상시키는(배를 드러내고 일본도를 든) 모습의 이상한 사진집들을 찍기도 했다. 극단의 통증을 스스로 만들며 죽는게 어떻게 판타지가 되는지 아연해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학 형태를 가진 죽음은 현대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소화(昭和) 11년(1936년) 2월 28일, 즉 2.26사건 발발 3일째, 근위보병 제 1연대소속의 다께야마 신지 중위는, 사건발생 후 반란군에 가입한 친구들 문제로 번민을 거듭한 끝에, 황군끼리 서로 쏘아 죽여야만 하는 사태로 치닫게 된 정세를 통분, 요쯔야구 아오바쬬우에 위치한 자택의 다다미 8장 짜리 방에서, 군도로 할복자살하였으며, 그의 부인 레이꼬도 역시 남편의 뒤를 따라 칼로 자결하였다. ... 열녀열부의 최후, 참으로 혼백마저 울릴 기개 있도다. 중위 나이 향년 30세, 부인은 23세였다. 화촉을 밝힌 지 아직 반년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소설의 도입부이다. 2.26 사건은 일본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이며, 책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심취했던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시마 유키오와 박 대통령 둘 다 이 사건을 높이 평가했는데,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젊은 장교들의 기개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기어린 쿠데타는 곧 저지되고, 천황의 칙명에 따라 반란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총살될 처지에 놓인다.


쿠데타 주동자들과 신지 중위는 친한 사이였는데, 그들은 중위가 신혼 생활 중인 것을 고려해 거사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위는 친구에 대한 신의와 천황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할복 자살할 것을 결심한다.


"그래." 중위는 몇 일 동안 제대로 잠도 못잤을 텐데도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을 당당히 뜨고, 처음으로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난 오늘밤 할복하겠어."

레이꼬의 눈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 둥글고 귀여운 눈에서 나오는 의욕의 눈빛은 큰 방울소리와도 같았다.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함께 뒤를 따르게 해주십시요."


중위가 결심을 말했을때 아내 레이꼬는 놀라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다만 따라 죽을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한다. 중위보다 자살 결의가 더 커보이기도 한다. 이 둘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종교적 희열이라는 말로 설명이 된다. 


레이코는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말대꾸하지 않았으며, 중위도 아내를 꾸짖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했다. 아래층의 신전에는 황태신궁에서 받아온 부적과 함께, 천황 황후 폐하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중위는 아내와 함께, 이 신전 아래에서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신전에 바치는 물은 매일 아침 새로 떠다 놓았으며, 신전에 꽂힌 비쭈기 나무는 언제나 윤기가 나고 싱싱하였다. 이렇듯 두 사람의 세계는 모두 엄숙한 신의 권위로 지켜지고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온몸 구석구석까지 몸서리쳐질 듯한 쾌락 또한 넘치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종교인 신토(神道)가 있다. 일본 창세 신화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가 천손강림 후 천황 가의 시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천황의 핏줄은 만세일계라고 믿어지고 있고, 세속의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자가 되었다(더글러스 맥아더도 천황가를 손대지 못함).


기독교 신자가 십자가를 보며 예수님을 경배하듯이 중위 부부는 매일 천황 부부의 사진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반란군 친구를 죽일 수 없고, 현인신이 내린 칙명을 거스를 수도 없으니 자결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다 읽고 이런 확신이 들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현대 시대에 중동에서 태어났다면 황군 대원으로 할복하는 대신 IS 대원으로 용감한 자살 폭탄 테러를 했을 거라고. 두가지 모습 모두 신神을 위해 죽는 분사(憤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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