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
행복의 정복. 얼마나 자신감 있는 책 제목인가. 지구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 하지만 쉽게 얻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은 행복을 정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한 때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진 적이 있었다. 기억해보면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던 지, 그게 1년 전이었나, 2년 전이었나 3년 전이었나,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알 수 없는 순간까지 가는 것이다.
만약 그 시기에 이 거창한 제목의 'The Conquest of Happiness' 를 읽었다면 우울을 뿌리치고 행복해졌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워낙 우울에 빠져있어서 다른 좋은 사상을 느끼고 이해할 머리가 없었고, 지쳐서 잠 만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밝은 마음으로 다른 사상을 공부하고, 잠만 자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에 몰두할 마음이 생긴다면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행복은 분명히 그 길 안에 있고, 사람을 그리로 이끄는 것은 노력과 운명이다. 저자 버트런드 러셀이 강조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심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행복에 필요한 조건을 차근차근 설득력 있게 논하고 있다. 서술은 전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어떤 유형의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해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행복의 정복 이라는 제목이 전혀 거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의 명문 백작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디프테리아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고 2년 뒤에는 그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기관지염 합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러셀은 조부모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친할아버지 존 러셀은 1878년 세상을 떠났는데, 러셀은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탄 친절한 늙은 신사로 기억했다(이 늙은 신사는 손자를 무척 귀여워해 주었나 보다).
러셀은 공교육에 반대한 할머니 덕분에 집안에서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사상 혁명기에 엘리트 교육을 받는 장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대인공포증도 키워준다(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니). 백작 할머니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종교 이외의 부분에서는 진보적이었고 손자에게 사회적 정의에 대한 시각을 심어준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출애굽기의 구절(23:2)인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는 러셀의 좌우명도 되었다.
러셀의 사춘기는 굉장히 고독했으며, 몇 차례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회고했다.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수학이 재미있어서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종합해보면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양친은 빨리 죽고, 대인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지만 수학 공부하고 싶어서 자살 안 했다는 특이한 유년기였다. 이런 아픔을 딛고 일어나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 수학자, 사회 개혁 운동가가 되고 노벨상 까지 타게 되는 걸 보면 인간 마음의 노력은 정말 많은 걸 가능케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 투쟁해서 행복을 쟁취한 자가 쓴 이 '행복의 정복' 책을 정독할 가치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