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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Aug 04. 2019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을 아시나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주일 4편

다음 주 내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겠단 저의 말에 친구는 '진해'보다 작은 도시에서 뭐 할 게 있냐고 말했습니다. 맞아요.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일주일 있기는 길다고 저도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갑분진지)

루스키섬 뱌탈린곶 내려가는 길

여행이란 자신이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내가 만든 여행이 내 맘 같지 않고, 여행하면서 만나는 어려움이 곧 추억이 된다는 것을 처음엔 몰랐어요. 당황하고 심장이 뛰면서 짜증스럽던 순간들도 있었죠. 그런데 몇 번 여행을 하고 보니, 그런 에피소드 없이는 여행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말입니다.


여행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은 이렇습니다. 하나, 사서 걱정하지 않는다. 순간을 즐긴다. 둘, 예상치 못한 일은 반드시 생긴다. 그러니 더 느긋해지자. 셋, 화창해도 비가 와도 좋다. 넷, 할 수 있는 건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해보자.


오늘 나누고 싶은 제 여행 경험에 이런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서 해 볼 만한 5가지! 에피소드가 많았던 루스키섬 반야 체험과 루스키섬 트래킹을 먼저 소개할게요.


루스키섬 반야 체험

땀 쫘악- 빼고 바다에 풍덩- 반야에 반했어


반야는 러시아의 전통 사우나를 이릅니다. 반야는 원래 슬라브 증기 사우나를 이르는데, 슬라브의 뿌리를 가진 러시아에 그 문화가 이어져온 것입니다. 반야는 사우나를 이르기도 하지만, 대중목욕탕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로 만든 사우나에 들어가면 돌을 얹은 스토브가 하나 있는데요. 이 뜨겁게 달궈진 돌에 물을 뿌려 생긴 증기를 이용해 몸을 데우는 방식입니다. 물을 뿌려 온도를 더 높일 수 있어서 좋았어요.

Depiction in the mid-1920s of a rural banya by Russian artist Boris Kustodiev: Russian Venus러시아 예술가 Boris Kustodiev의 1920년대 중반 시골 반야를 묘사한 그림.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nya_(sauna)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갑자기 결정한 탓에 마약 반야, 쓰리히어로즈 반야 등 유명한 곳은 예약이 다 찬 상태!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루스키섬 입구에 새로 생긴 독채 반야가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기로 했어요. 마이 리얼 트립을 통해 예약했고요.


반야 체험 시간은 2시간 30분, 숙소 앞에서 픽업해 반야까지 데려다주는 비용 포함 11만 원이었고요. 당시 이벤트 가격이라 2인 예약이 불가능해서 3인으로 예약한 가격이었습니다. 준비물은 비키니 또는 수영복, 세면도구, 수건, 간식, 마실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공짜로 주는 물은 거의 수돗물이라 안 드시는 게 좋아요!)


반야 바로 앞에는 바다가 있어서 유명한 '마약 반야'와 같은 방식으로 사우나에서 땀 빼고 바다로 풍덩! 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영어는 전혀 못하셨지만, 그녀는 제스처의 달인이었습니다. 소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루스키 반야 앞 전경

반야 가기 전에 하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당일 픽업 기사가 약속을 잊는 바람에 여행사 대표님께서 직접 픽업해줬어요. 한국인이었고요. 아주 좋은 차가 왔습니다.(쾌적) 이동하는 동안 루스키섬 트래킹을 하기 위한 정보와 여행정보 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반야까지는 20-30분 정도 소요되고요. 늦은 시간만큼 연장해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또 루스키섬 트래킹을 하는 저희를 위해 주인아주머니께 트래킹 출발지까지 가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미리 얘기해줬답니다.


픽업이 늦어서 친구와 약간 투닥거리고, 반야 체험을 망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는데 오히려 그 기사가 약속을 까먹어서 다행이었어요. 우린 루스키섬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곳이 택시로 2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인지는 몰랐거든요. 루스키섬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ㅎㅎ 가실 때 참고하세요.

반야 앞에 선베드가 있고, 저기 보이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다로 들어갈 수 있어요
뜨거운 물을 돌 위에 부어요! 그럼 증기가 쏴아----
독채 안에 있는 테이블과 식기류!(왼쪽), 독채 바깥 바다를 바라보고 놓여져 있었던 선베드(오른쪽)

반야는 정말 좋았어요. 여행 내내 반야 체험 한번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독채인 데다가 선베드도 있고, 독채 앞을 나름대로 잘 꾸며놓으셨고요. 사우나의 위생도 양호했습니다. 러시아 여행에서 위생은 사실 좀 포기한 편이었는데,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생각했어요. 엄청 막! 깨끗해! 이런 건 아니고요. 저흰 맥주와 컵라면을 사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냉장고도 있어요)


그리고 제 취향을 저격한 것! 바로 반야 모자! 너무 귀여웠어요. 사우나가 워낙 고온이라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선 꼭 쓰셔야 합니다.


사우나는 계단 형태로 되어 있어서 6명 까진 수용할 수 있는 크기고요. 저흰 둘이라 아래층과 위층에 누워서 반야를 즐겼습니다. 돌에 물을 부으면 온도를 높일 수 있어서 온도 조절도 가능합니다. 단, 한번 올라간 온도는 잘 내려오지 않으니 주의하셔야 해요. (계속 물 부었다가 친구한테 혼쭐)

반야 모자 feat. 만천하에 공개된 광활한 나의 등짝(왼쪽), 선베드에 누워 맥주 마시기(오른쪽)
꿀맛 맥주와 컵라면. 러시아에서 먹은 맥주 중에 이 맥주가 제일 맛있었어요.
바다에 풍덩! 바다 엄청 깨끗했어요 :)

사우나에서 땀을 쭈욱- 빼고 바로 바다에 풍덩 들어가면! 하아. 진짜 짜릿합니다! 선베드에 누워서 맥주를 마시니 더 꿀맛.


여행 와서 물갈이를 하는지 둘 다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왔었는데, 반야 후엔 꿀피부를 되찾았어요.


다시 여행을 가도 반야 체험은 꼭 할 겁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재미를 꼭 느껴보세요.


루스키섬 트래킹

겁도 없이 개별 투어로 갔지 뭐야


도시와 멀지 않은 곳에서 대자연과 만날 수 있는 루스키섬 트래킹. 자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숲길을 걸을 수 있고, 북한의 지형과 비슷한 모양을 한 '토비진곶'(일명 북한 섬)에서 인증샷을 찍을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야생여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루스키섬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어요. 인정합니다. 사전에 조사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힝)

뱌탈린곶 전경

반야가 끝나고 주인아주머니가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루스키섬 트래킹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아, 이날은 정말 스펙터클했어요.


가는 길에 주유소에 잠깐 들렀는데, 나오는 길에 차 사고가 났어요. 차 뒷바퀴 쪽을 다른 차가 박았습니다. 그쪽 좌석에 타고 있던 제 친구의 충격이 좀 있었지만 다행히 다친 덴 없었어요.


기사가 내려 상대방 운전자와 얘기를 하더니 러시아어로 막 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고 구글 번역기를 켰어요. 그가 열심히 말하니, '다른 차가 곧 도착할 거예요'라고 번역이 됐어요. 기사는 그게 신기했는지 한번 더 말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익살스럽게 웃으며 뭐라 뭐라 말하더니 번역되어 나온 말은!

"내 차가 고생했다"


우리 셋은 박장대소했습니다. 우린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고,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어요. 아 정말 차 사고가 나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나.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루스키섬. 우리가 내린 곳은 뱌틀린곶이었습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북한 섬이라 불리는 '곶'은 '토비진곶'인데, 우린 그까지 가진 못했어요. 루트를 몰랐거든요.

여기도 절경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늑대개들이 있어서 좀 무서웠어요.) 둘러보니 현지인들의 캠핑 사이트도 보였고,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린 숲길을 따라 1시간가량 트래킹 했습니다. 꼭 제주도 사려니 숲길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평화롭게 울리던 새소리와 난생처음 보는 식물들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어요.

루스키섬 숲길 트래킹

그렇게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트래킹에 빠져있던 우리는 얼른 내렸던 장소로 돌아갔습니다. 막심을 이용해 택시를 불렀는데 오는데 40분이 걸린다지 뭡니까! 확실히 루스키섬에서 막심으로 택시를 잡는 건 힘들어 보였습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나갔던 차 한 대가 후진해서 돌아왔어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여자, 운전석엔 좀 긴장한 러시아 남자가 타고 있었어요. 그리곤 흔쾌히 우릴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위험하다면서. 차선책이 없어 우린 너무 고맙다며 차를 얻어 탔어요. 루스키섬 입구에서 내려주면 택시를 부르겠다고 했는데, 그들은 우릴 아르바트 거리 숙소 근처까지 태워줬어요. 단둘이 택시를 타고 이까지 왔다고 했더니,


"와, 너네 정말 용감하구나! 둘이서 여길 올 생각을 하다니"라고 하더라고요. 하핫. 머쓱. 좀 무모했나 싶었어요.

루스키섬 야생화

그 둘은 연인이었고, 하바롭스크에 살고 있으며 휴가차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집이 블라디보스토크라고도 했죠. 만난 지 8개월이 된 풋풋한 연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러 그녀는 여러 번 한국을 여행했다고 해요. 차에는 태극기가 그려진 곰돌이 인형이 매달려있었어요. 그들이 아르바트 거리까지 가주겠다고 했을 때, 정말 괜찮다고 내려달라고 했어요. 그런 우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도 한국에 갔을 때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들은 정말 친절하게 날 도와줬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아. 당신은 에인절-

내가 붙인 이름 : 루스키섬 나홀로 나무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린 어느새 서로가 하는 일을 묻고, 그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제가 했던 일과 그녀가 하는 일이 동일했어요. 그녀는 인스타그램이 너무 싫다고 했어요. 하핫.


아르바트 거리에 도착해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고,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어요. 그리곤 뭐라도 주고 싶어서 가방 안에 있던 큰 감자칩을 선물했죠.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고맙다고 했지만 러시아산 감자칩을 주다니, 얼마나 웃겼을까요.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전하며 그들과 정말 헤어졌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겪으며 루스키섬 트래킹을 하고 보니, 개별 투어 보단 단체 투어를 추천하고 싶어요. 물론 잊지 못할 여행의 추억을 만들었고, 러시아 사람에 대한 편견을 깬 경험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동하기 힘들다는 점, 트래킹 루트를 알기 어렵다는 점, 곳곳에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는 점, 현지인이 위험하다고 했다는 점이 있어, 한인민박 투어 또는 여행사의 반나절 투어를 추천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마린스키 발레극장에서 발레 공연 보기,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과 미술관 탐방하기, 도보투어로 블라디 한 바퀴 돌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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