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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는 왜 팔이 없을까?

'밀로의 비너스' 완벽한 비율의 비밀

by 김상래
매주 화요일 '까뮤의 미술 칼럼' 연재합니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미술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 모아 둔 내용을 바탕으로 유럽 7개국 미술관의 대표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번 편은 루브르 박물관의 <밀로의 비너스>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비율, 상상으로 완성되다. ‘팔이 없는’ 이유에서 시작해 ‘새로운 해석’이 자라는 루브르의 비너스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 Venus de Milo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 김상래


완벽한 비율, 상상력으로 완성되다

《밀로의 비너스》는 루브르 박물관 쉴리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이 모여 있는 전시실인데요. 그중에서도 비너스 앞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들지요.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서면, 다른 조각들을 지나 정중앙에서 마치 여신을 맞이하듯 《밀로의 비너스》가 서 있습니다. 높이는 약 2미터 4센티미터로 관람객보다 조금 높게 세워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바라보게 돼요. 이렇게 올려다볼 때 비너스의 몸을 따라 흐르는 곡선과 대리석에 스치는 빛이 더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힌 자세는 정지된 순간임에도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요. 얇은 옷자락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천처럼 흘러내리고 대리석 피부에는 은은한 빛이 퍼져나가고요. 머리를 살짝 옆으로 돌린 얼굴과 다문 입술, 고요한 눈빛은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드러냅니다.


무엇보다 팔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상상의 여지를 주는데요. 만약 그녀의 팔이 있었다면 어떤 동작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빈자리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밀로의 비너스》는 흔히 ‘완벽한 비율’을 보여주는 조각으로 꼽힙니다. 전체 높이가 약 2미터가 조금 넘는데, 몸의 비례가 아주 조화로워서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지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그릴 때 ‘아름다운 비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교과서 속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눈앞에서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작 방식이에요. 당시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렇게 큰 조각을 만들 때 하나의 돌만 쓰지 않았습니다. 몸통과 다리, 팔과 발을 따로 조각한 뒤 금속 말뚝을 박아 이어 붙였지요. 《밀로의 비너스》를 자세히 보면, 특히 다리와 발 사이에 대리석을 이어 붙인 흔적이 남아 있어 고대 조각가들의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조각에는 팔이 없을까요? 1820년 에게해의 밀로스 섬에서 발견될 때 이미 팔은 부서져 있었고, 몇몇 파편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원래 어떤 동작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예요. 관람객은 "혹시 사과를 들고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손을 뻗고 있었을까?" 하고 저마다의 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지요. 어쩌면 두 팔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신비로운 매력은 조금 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신화 속 미의 여신 이름은 아프로디테(Aphrodite)입니다. 이 이름이 로마로 전해지면서 비너스(Venus)가 되었죠.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라 그런지 지금도 ‘비너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미의 상징을 떠올리게 됩니다. 《밀로의 비너스》는 바로 그런 여신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조각은 1820년 멜로스 섬에서 한 농부가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몸통과 다리, 얼굴이 따로 흩어진 채 묻혀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당시 섬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관리가 압수하려 했다는 이야기, 프랑스 외교관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결국 루브르로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집니다. 프랑스가 이 조각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 Venus de Milo프랑스 루브르박물관 ⓒ 김상래


비너스는 왜 팔이 없을까?

앞서 언급했듯, 발견 당시부터 팔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후 학자들은 다양한 복원 가설을 내놓았지요. 왼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어진 황금사과의 상징), 혹은 방패를 붙들고 있었을 것, 또는 흘러내린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을 것 등. 하지만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이 빈자리가 상상력을 키우고, 지금의 비너스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신화의 배경을 잠깐 볼까요? ‘황금 사과’ 사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신 에리스(Eris)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를 던지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요. 심판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넘어가고, 헤라는 권력, 아테나는 지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헬렌을 약속하죠.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면서, 그 결정은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루브르에는 이 장면을 그린 〈파리스의 심판〉도 전시되어 있어 연결해서 보면 더욱 좋아요. 회화 속 아프로디테는 종종 큐피트, 바다의 상징인 거품, 조개와 함께 등장하니 이런 단서를 찾는 재미도 있어요.


‘완벽한 비율’은 어떻게 느껴질까?

비너스의 몸에서는 균형과 조화가 먼저 보입니다. 오른발에 체중을 두고 상체가 살짝 뒤로 젖혀지는 콘트라포스토 자세, 부드럽게 이어지는 S자 선, 얇은 옷자락이 만드는 깊이를 볼 수 있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1:1.618 황금 비율을 정확히 적용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안정적인 비례감을 늘낄 수 있습니다. 미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지지만, 이 작품이 지금도 사랑 받는 이유는 시대와 취향을 넘어서는 균형감 때문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해석의 탄생

《밀로의 비너스》는 현대 예술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는데요. 살바도르 달리의 〈서랍이 달린 비너스〉(1936)가 대표적이지요. 달리는 원형을 변주해 이마, 가슴, 배, 무릎에 작은 서랍을 달아 놓았습니다. 열어보고 싶은 비밀 상자처럼 보이는 이 서랍은, 그가 말한 무의식의 욕망과 비밀을 상징합니다. 고대의 이상미가 20세기에 들어와 심리의 조각으로 다시 읽힌 거지요.


루브르에는 또 하나의 여신이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의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바로 그 여신이죠. 두 팔은 사라졌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과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동작 때문에 지금도 날갯짓하는 듯한 역동성이 느껴지지요. 드농관 다루 계단 맨 위에 전시되어 있어서 올라서는 순간, 마치 여신이 우리를 맞이하는 듯한 장관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모나리자》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3대 여인상’으로 불립니다. 세 작품은 각 시대와 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여행 중 이 방을 떠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움이란 완전함이 아니라, 상상하게 만드는 여백이라는 것을 말이죠.


오마이뉴스에도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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