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에 의한, 나폴레옹을 위한 그림
나폴레옹에 의한, 나폴레옹을 위한 그림
‘나폴레옹’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흰 말을 타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험한 산을 넘는 모습일 겁니다. 그 유명한 장면,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1801)이죠. 그림 속에서 말은 앞다리를 높이 들고 금방이라도 질주할 듯 긴장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위의 나폴레옹은 한 손을 하늘로 뻗으며, 마치 “앞으로!”라고 외치는 듯하지요. 붉은 망토와 흰 말이 만드는 강렬한 대비, 산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끌어당깁니다.
이 장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1800년, 나폴레옹은 병사들과 대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했지요. 실제로는 말이 아닌 노새를 타고 산을 건넜습니다. 다비드는 그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말을 탄 나폴레옹으로 그려 넣었지요. 위험한 산길을 헤쳐나가는 장군이 아니라, 결단력 있는 지도자, 시대를 이끄는 영웅으로 보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자신을 세상에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담은, 일종의 ‘이미지 연출’이죠. 그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나폴레옹’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 바로 이 그림이니까요.
내 왕관은 내가 쓴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단순한 장군이 아니라, 품격과 권위를 지닌 지도자로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 대표작이 바로 《나폴레옹의 대관식》(1805–1807)입니다.
1804년 12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이날은 프랑스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제1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던 날이었지요. 원래는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는 전통이 있었지만, 그는 그 관습을 거부했습니다. 직접 왕관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올리고, 이어서 아내 조세핀의 머리 위에 왕관을 얹었죠. “내 권력은 하늘이나 교황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지요.
다비드는 그 장면을 웅장하게 담아냈습니다. 화면의 중앙, 황금빛 망토를 두른 나폴레옹이 서 있습니다. 로마 황제를 연상시키는 월계관이 그의 머리에 얹혀 있고, 손에는 왕관을 들어 무릎 꿇은 조세핀에게 올리고 있지요. 실제 역사에서는 순서가 달랐다고 전해지지만, 화가는 이 구도를 선택해 장면에 극적인 힘을 더했습니다.
그림의 한쪽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중심이 아닙니다. 의식의 주관자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교황은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손은 축복을 위해 들려 있지만, 시선은 끝내 나폴레옹을 향하고 있죠. 모든 조명이 한 사람에게 쏠려 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에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대성당 안에서 천천히 막이 오르는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다비드는 이 장면이 웅장해 보이도록 연출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을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길 바랐는지를 완벽하게 설계한 것이지요. 그림 속 나폴레옹은 신의 대리자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제국의 주인입니다. 그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왕이 아니라 자신의 신화를 쓴 인간이 되었습니다.
대성당의 무대, 빛은 나폴레옹에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가까이에서 보면 압도적입니다. 가로 10미터에 달하는, 루브르에서 두 번째로 큰 그림이죠. 벽 전체를 가득 채운 그림 앞에 서면,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나폴레옹과 조세핀입니다. 황금빛 망토, 손에 든 왕관과 조세핀의 하얀 드레스까지, 빛이 닿는 부분마다 인물들이 한층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결국엔 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요. 보는 이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그 중심으로 끌려갑니다.
화면 위쪽, 발코니에 앉은 여인 한 명이 보이시나요? 그는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입니다. 흥미롭게도 실제 대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어요. 아들의 결혼 상대 조세핀이 여섯 살 연상인 데다 과부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다비드는 그녀를 그림 속에 넣었습니다. 황제의 사적인 감정보다 ‘가문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지요.
참고로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은 따로 있습니다. 파올로 베로네세의 《카나의 혼인 잔치》(1563)인데요. 가로 9.94미터, 세로 6.7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입니다.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그 성서 속 장면을 화려하게 담아냈죠.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모나리자》와 같은 방에 걸려 있다는 점이에요. 조용히 미소 짓는 《모나리자》가 왼쪽 벽에, 그 맞은편엔 웅장한 《카나의 혼인 잔치》가 자리하고 있죠.
그 사이에 《나폴레옹의 대관식》까지 더해지면 이 공간은 루브르 관람의 ‘하이라이트 구간’이에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 그림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그 공간을 바라보세요. 그 순간, 루브르가 왜 ‘예술의 성전’이라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혁명과 황제의 화가, 다비드
그렇다면, 다비드는 이 장면을 그리며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나폴레옹의 모습이 혹시 거만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가장 염려했습니다. 교황 앞에서 왕관을 들어 조세핀의 머리에 올리는 장면은 자칫 ‘권력의 과시’로 보일 수 있었으니까요.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정면이 아닌, 살짝 비스듬히 그렸습니다. 표정은 엄숙하지만 차분하고, 손끝에는 품격이 느껴집니다. 권위보다는 품위를 택한 구도였죠.
그림 속 인물 배치는 그야말로 정교했습니다. 다비드는 실제 대관식에 참석한 인물들을 직접 관찰했고, 그 자리의 공기까지 화폭에 옮기려 했지요. 그 수가 무려 190명.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옷자락이 살아 있습니다. 그림 앞에 직접 가 보면 대성당의 문이 열리고, 그 웅장한 종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비드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어요. 그는 늘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그림을 그렸지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마라의 죽음》(1793)을 보면, 욕조 속에 쓰러진 혁명가 마라가 성인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 셈이었죠. 1814년,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루이 18세가 왕위에 오르며 프랑스는 다시 왕정복고 시대로 돌아갔습니다. 왕은 다비드에게 궁정화가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혁명과 나폴레옹의 화가다.”
이후 다비드는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해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생을 마쳤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루브르의 한가운데 걸려 있습니다. 프랑스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그의 화폭 속 ‘나폴레옹의 시대’는 여전히 루브르의 한가운데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숨은 감정, 드레스에 담다
루브르에 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가까이에서 보면 숨이 막힐 만큼 웅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르사유 궁에도 같은 크기의 복제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두 그림은 거의 똑같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차이가 있죠. 조세핀 뒤편에 서 있는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의 드레스 색이 다릅니다. 루브르에서는 흰색, 베르사유에서는 은은한 분홍빛이에요. 이 미묘한 차이 때문에 ‘혹시 다비드가 폴린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졌던 걸까?’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두 그림을 번갈아 보며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색을 바꿨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그림 속에는 이런 ‘숨은 이야기’들이 더 있습니다. 발코니 위쪽 군중 사이,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인물이 하나 보이시나요? 그를 다비드 자신의 모습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화가들이 작품 속에 자신을 살짝 남기는 건, 당시엔 꽤 흔한 일이었거든요.
그림 속 발코니에는 실제로 참석하지 않았던 어머니 레티치아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 대관식에는 불참했지만, 다비드는 그녀를 통해 ‘가문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폴레옹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랐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한 ‘이미지의 역사’였죠. 그래서 인물의 배치나 드레스의 색, 그 작은 차이들까지 모두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사진이 없던 시대, 그림은 권력의 언어였으니까요.
나폴레옹의 시대에는 캔버스가 무대였지만, 오늘 우리의 무대는 스마트폰 화면일지도 모릅니다. 시대는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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