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Peder Severin Krøyer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일까? 에 대한 의문은 책 한 권으로 내 짧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런 것에 합당한 대화가 가능한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한 권을 쓰면서 나는 통째로 꼭지를 여럿 들어냈다. 책의 타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리고 여전히 꿈을 간직한 여성들로 잡았는데 내가 쓴 글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글과 정치적으로 대립될 만한 글들이 있다는 이유로 여럿 가운뎃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 꼭지들을 재차 수정하면서 이 생각조차도 다를 수 있다면 아예 덜어내고 다른 글을 끼워 넣자고 생각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출판사에선 첫 책을 내는 나를 위한 배려, 그리고 출판사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대략의 분위기를 짐작해 나도 거기에 건강하게 대응하는 방법으로 통째로 덜어내고 무난한 다른 글을 실었다.
그렇게 덜어낸 꼭지들을 따로 모아두었다. 요새 정지우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이 되고 있고 더 많은 부분 생각이 겹친다. 내가 덜어낸 꼭지들과 비슷한 결이 느껴져 내가 책을 더 여러 권 내서 인지도가 생기면 덜어냈던 꼭지들을 이렇게 묶으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의 실마리를 열어주기도 한다. 글을 쓰고자 했을 땐 한 번 하고 말 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약 전에도 고심이 컸고 책을 완료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던 부분이다. 평생 쓰고자 했으니 내가 갈 방향을 정하고 싶었고 첫 책이 나온 후에는 어떤 책을 쓸지, 그다음은 어떻게 진행해 갈지 내게는 나름 고민의 계획이 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겠지만 계획 없이 맹탕으로 시간을 보내다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아 소소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진 않더라.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고 그 안엔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행하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보다는 오래 묵은 진중함이 스며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게 솔직한 글, 그래서 내게 울림을 주는 글, 내게 위안이 되는 글, 가식을 걷어낸 글을 쓰고 싶다. 책 팔아봐야 얼마나 돈이 될까? 내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작가라도 된다면 모를까 돈을 벌려고 책을 내는 것이 아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며 내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에 시작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역사를 알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사실 용기를 내었다. 나는 나로 살아가는 삶, 그 안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감정들을 남기며 여자로 태어나 아내로 살다 엄마가 되어가는 그런 삶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며 앉아 있는 나는 누구의 무엇도 아닌 온전히 나인 게 좋아서 또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다.
내게 좋은 글이란?
서툴러도 진실이 느껴지는 글이 좋다. 억지로 끼워 맞춘 글이거나 알맹이가 없는 가벼운 글은 지양하는 편이다. 아이를 낳고는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왜 그리 오래 전해져 내려오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기왕이면 좋은 책과 만나 좋은 글을 읽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계속해서 읽고 있는 정지우 작가의 글은 젊은 시절 패기와 사유의 깊이를 모두 가지고 있는 듯 보여 내게는 좋은 책, 좋은 글이다. 특히나 눈여겨보고 있는 점은 그가 글에서 나타내고 있는 생각의 건강한 방향성에 대한 것이다. 라테만을 강조하거나 남성우월주의, 또는 청년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확고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올바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의 글에 빠져들고 있다. 여성과 남성을 반으로 가르지 않고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는 그야말로 온전한 정신을 가진 요즘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잘 팔리든 그렇지 않든 소신 있게 10권이 넘는 책을 꾸준히 집필해온 그의 나이 이제 서른여섯. 나와는 열 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런 사람을 보면 나는 그동안 뭘 하며 살았나 약간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글에서는 시샘이 들기도 한다.
시작이 반이다. 나는 이제 시작했으니 80이 넘어서도 꾸준히 글을 쓰려면 올바른 판단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책을 집어 들고 그들의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얘기해 줄 필요성을 느낀다. 좋은 건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알리고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운 교수? 이제는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며 사는 김정운 작가의 사고도 꽤나 재미있어 그의 책도 두루두루 읽고 있는데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나는 그런 게 궁금한 사람이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쓰는 어투도 사뭇 다르지만 어느 부분에선 묘하게 겹쳐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 누구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그런 조합을 꿈꾸기도 해서 내가 그럴 능력이 주어진다면 둘을 함께 초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진다.
새벽에 일어나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한 꼭지 적어놓고 나면 뭔가 아침 등산을 했을 때처럼 개운한 기분이 든다. 마치 습관처럼 공부를 마친 착실한 기분이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런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태어난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는 덴마크 스카겐에 모여들었던 일군의 화가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는 또 덴마크의 '빛의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코펜하겐의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 여러 지역을 여행했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자들의 빛의 특성에 대한 관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그는 복잡한 빛의 효과, 특히 일광과 램프의 불빛을 포착하고 싶어 했죠. 아내이자 뮤즈였던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의 아내는 그의 문하생이었다고 해요.
광적인 그림을 그리는 그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 그의 부인이자 뮤즈였던 마리 크뢰위에르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사랑받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은 바닷가에서 홀딱 벗고 마음껏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인데요. 글을 쓸 때 저는 좀 저런 느낌이 들어서요. 글 속에서는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다. 틀에 박히고 싶지 않다. 환한 빛만이 존재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져와 봅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나를 벗기는 일이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때때로 책을 내나 마나 고민이 되는 대목입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온전히 내 색깔을 드러내고자 그림만은 자유로움이 물씬 나는 작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