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뮤니에
봄이면 작은 생명들이 발 아래 꿈틀거리고
향긋한 풀꽃들이 지천에 깔리는 곳
여름이면 온통 푸르름 사이로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곳
가을이면 꿈결처럼 몽롱하게, 꿈속처럼 책임 없이
그렇게 한없이 낮잠이 밀려오는 곳
겨울이면 그런 단정한 한옥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겉모습은 늙어 초라할지라도 마음 어느 곳에도 거짓이라곤 없는 그런 성품으로
지난날을 떠올리며 말갛게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옥토넛의 바나클 대장보다 동료들을 돌보는 페이소를 좋아하던 아이의 어린 날을 떠올리며
금세 커버림을 아쉬워하면서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의 그날을 바라보며 나는 능소화처럼 환하게 피어있고 싶다
나의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를 떠올리며 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바람
그때 아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라면
그 예쁜 아이도 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아이를 참 많이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 되어준다면,
그래서 둘이 더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쓰는 책이, 내가 남기는 글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남겨지는 일이면 사실 그걸로 모든 게 되었다
날이 쨍하게 바스러질 거울처럼 추운 날 새벽
미래의 한 소실점을 몹시도 끌어당기고 있는 그런 새벽
까만 공기 사이로 미래를 열어간다
에밀 뮤니에 (Emile Munier / 1840~1895)
행복을 그리는 화가 하면 에바 알머슨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18세기 프랑스에도 따뜻함을 그리는 화가가 있었어요.
바로 에밀 뮤니에입니다.
파리 살롱전에 전시해 성공할 정도면 학회와 평론가, 대중의 사랑을 모두 받았던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 결합 아카데미 화풍을 보여주던 화가예요.
아이들과 동물, 엄마와 아이의 따뜻함을 솜털로 폭신하게 감싸듯 표현된 그림을 보며 추운 날을 다스려 봅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마주 보고 있었다면 이 그림은 더 좋지 않았을까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아이의 간절한 두 손 보다 매력적인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꼭 꿈을 좇는 제 모습 같달까요. 아이의 간절함은 어쩌면 엄마가 더 오래 자신을 봐주고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일 텐데요.
그림 속엔 자신의 마음이 담기는 법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