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빌헬름 홀소에 Carl Vilhelm Holsøe/독서하는 여성 Interior with a Woman Reading
요가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조금 일찍 일어나 내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년 여름부터 내 의도와는 다르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우연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 끝맺음을 했다. 정작 하려던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묵묵히 앉아 곰처럼 글 쓰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고 열심히 필라테스를 병행하고 있었다. 우연히 발을 디디게 된 다양한 일들에 어쩌면 마음을 더 많이 빼앗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지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했다. 글 쓰는 시간을 모두 쪼개 쓸 정도로 몰입했었다. 그렇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도 모르게 주어진 우연의 결과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다면 이제 깨어나야 한다. 잠시 멈춰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감사하다.
살아가는 일은 큰 욕심이나 기대 없이 그저 하루를 성실하게 살았을 때 우연히도 어떤 기회들이 주어진다. 너무 큰 기대를 가졌을 땐 오히려 좋지 못한 성과를 얻었고 실망도 컸다. 그걸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대체로 좋은 삶을 살기로 했다. 당장 체력적인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욕심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도전했던 일이 며칠 동안 여파가 있었다. 책을 다 써놓고도 출판사에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또 한 번 왜 책을 내려고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역시 그런 때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몸의 기운이 바닥이 났을 때 정신적인 한계가 함께 오기 마련이다.
오전 10시. 월, 수, 금은 핫요가를 하고 화, 목은 필라테스를 한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모닝 페이지를 적어두고 책에 들어갈 내용들을 수정해 본다. 남편 미숫가루를 타 두고 아이의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아침엔 간단하게 나도 미숫가루나 두유 하나를 마시고 운동을 간다. 그 시간에 아이는 엄마가 차려둔 아침밥을 혼자 먹는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내가 살아야 아이도 살 수 있으니 무조건 운동을 간다.(방학에 해당하는 이야기)
한 번 시작하면 열심히 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 결석하지 않는다. 수영을 하면서 내게 새겨진 어떤 철칙 같은 것이 있다. 한정된 돈과 시간.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명상으로 호흡을 하는 동안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 그리고 책을 내고자 한 이유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와 같은 수많은 엄마들이 그저 엄마로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생각을 열어갔다. 마흔 중반의 우리도 다시 꿈을 꿀 수 있으니 힘을 내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나를 위한 위로의 말들이었고 더 나아가 내 아이가 좀 더 커서 엄마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글을 쓰면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원고 마감을 하고 읽고 또 읽으면서도 눈물은 비슷한 대목에서 쉼 없이 흘러내렸다. 수정을 거듭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이다음에 커서 엄마가 남긴 이 책을 들추며 아이의 어린 시절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고 또 함께 꿈을 꾸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무겁고 답답한 머리와 가슴속 생각들을 이렇게 비워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초심.
나는 운동을 시작하며 가족들의 몸 상태도 돌아보게 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코로나가 2년째인 현재 복부지방이 무섭게 늘어있다. 바빴던 몇 개월 동안 배달음식이 늘었고 인스턴트로 식사를 대체했으니 내 건강 못지않게 남편과 아이도 식습관을 해치고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가족들을 더 세심히 챙겨야 한다. 청국장을 끓이고 샐러드와 각종 반찬을 만들어 세 끼를 신경 쓰고 있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면서 내가 몸을 얼마나 혹사시켰는지 그래서 또 얼마나 많은 근육들이 굳어버렸는지 섬세하게 느껴고 있다.
에너지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닌 내가 그동안 열심히 달렸으니 이제 좀 쉬면서 몸을 돌보라고 마련된 시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은 이런 시간이었나 보다. 오늘도 대단한 욕심 없이 어떤 큰 기대 없이 주어진 내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능소화가 지천에 피어 있는 한옥에서 가족들이 모여 묵은 수다를 풀어내는 그런 그림을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칼 빌헬름 홀소에
Carl Vilhelm Holsøe, Danish Painter :1863~1935
덴마크 출생으로 주로 자신의 주변 공간과 대상을 그려냈던 화가예요. 마치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베르메르의 빛을 좋아해 그의 작품을 오마쥬 했다고 하네요.
공간 속에서 맴도는 빛을 신비롭고 따뜻한 느낌으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묻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작가의 특징은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데 많은 그림들이 모두 뒷모습으로 보여 여유로움 뒤에 어딘지 모를 외로움 같은 것도 느껴져요.
완벽한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따뜻한 햇살이 그득 쏟아지는데 드는 차가운 느낌. 어딘지 묘하게 언밸런스한 느낌이라 그림을 더욱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작가기도 하고요.
제가 가져온 작품은 그래도 옆모습이고 햇살도 더 많이 담고 있어 저희 집에서 느끼는 요새의 제 모습 같아 가져와봅니다.
모든 게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조용한 아침.
그 가운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이와 남편을 챙겨주는 그저 소소한 일상의 제가 이 안에 있는 것 같아서 소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