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 LTE, 진화의 끝에 서다
2008년 10월 2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파수 회수 재배치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 중 2012년 디지털TV 전환으로 회수되는 700MHz 주파수에 관심이 쏠렸다. 2012년말 아날로그TV를 디지털TV로 전환하면서 698~806MHz 대역, 총 108MHz폭의 유휴 자원이 발생하는 것. 소위 황금주파수로 불리는 700MHz 경쟁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당시 미국은 2007년 아날로그TV 방송종료 후 700MHz 주파수를 경매제 방식으로 통신에 재배치했다. 독일 등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700MHz 대역을 차세대 이동통신의 황금주파수로 여기며 활용을 서둘렀다. 우리나라 역시 통신에 무게추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2011년 역사상 최초 주파수 경매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1.8GHz, 2.1GHz 대역과 함께 700MHz 대역 역시 경매매물로 등장할 것이라 여겼다. 2011년 4월 경매에 앞서 개최된 주파수 경매 공청회에서도 700MHz 포함 여부가 급부상했다.
하지만 방송업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방송에서 쓰였던 대역인만큼 향후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위해 남겨놔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4K UHD 방송과 3D TV 등의 서비스를 위해, 또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 확보를 위해서도 특정 기업에 독점화되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적으로 2011년 1차 주파수 경매에 700MHz 대역이 제외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보다 깊어졌다. 정부는 계속해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신중론을 펼치기는 했으나 2012년말까지는 가부를 결정해야 했다.
2012년 1월 방송과 통신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장기적 주파수 로드맵인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의결한다.1) 2020년까지 600MHz대역폭 이상의 주파수를 단계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며, 2013년까지 700MHz, 1.8GHz, 2.1GHz 등 3개 대역에서 총 170MHz폭을 확보키로 했다.
논란의 700MHz 주파수는 그 중 40MHz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추후 방송통신 기술진화와 상황에 따라 결정하도록 문을 열어 놓았다.
주파수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통신계와 방송계는 들불처럼 일어났다. 앞서 이동통신 전면 재배치가 예상됐으나 경매 매물에서도 제외되고, 실제 배정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다보니 통신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방송계 역시도 소위 ‘알박기’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2월 전세계 주파수 협의체인 세계전파통신회의(WRC-12)에서 700MHz 대역을 2015년 이동통신용으로 분배하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아프리카와 아랍지역 국가들이 부족한 유선망을 대체하고 4세대 이동통신 도입을 위해 700MHz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데 화답한 것. 다만 실제 가용 여부와 추가 대역 검토를 이유로 3년 가량 유보시켜 내린 결정이다.
이같은 결정으로 통신계는 700MHz 대역 활용을 기존 방통위가 추진했던대로 전면 이동통신용 재배치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계 결국 아날로그TV를 중단해 정부만 배불렸다고 비난하면서 보편적 시청권을 사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진영이 끝없는 싸움을 이어갔으나 정작 중재할 당사자가 없었다. 방통위는 최시중 위원장이 물러나고 수장이 공석인 상태가 지속됐다. 다행히 3월 9일 이계철 방통위원장이 공식 취임하면서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됐으나 역시나 의견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아날로그TV 종료를 1개월 가량 남긴 11월 22일 방통위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가 공동 주최한 ‘700MHz 이용정책 및 모바일 광개토 플랜 토론회’가 개최됐으나 방송계는 보이콧을 선언했다.
700MHz 주파수를 이용하는 무선 마이크 대역을 회수해 청정지역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이동통신용으로 40MHz 대역 우선 배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세계 LTE 로드맵에 따라 주파수 조화를 위해서도 남은 대역 역시도 통신에 배정될 공산이 커졌다. 방송계는 차세대 방송과 DTV 난시청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따랐다.
2013년 1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가 내놓은 ‘방송통신정책’ 중 당시 임동민 KISDI 통신전파연구실 부연구위원외 작성한 ‘초점: 주요국 디지털 디바이든 대역 정책 동향’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해외 주요국이 700MHz 대역을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규모의 경제 효과 달성을 위해서라도 국제조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실었다.
2013년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자 방통위와의 업무 분장 문제가 대두됐다. 특히 주파수 정책의 경우 미래부와 방통위, 국무조정실 등 3개 부처로 쪼개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관련 업계와 학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반대 성명서를 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주파수 자원임을 고려해야 했으나 여야의 정부조직개편 협상에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방송 주파수는 방통위로, 통신 주파수는 미래부가 담당하고 총괄은 국무조정실이 하면서 주파수심의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부처간 갈등은 당연지사고 신속한 정책판단은 함흥차사가 될 공산이 컸다.
특히 방송과 통신업계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700MHz 주파수 배치 건은 업계를 떠나 정부부처간, 여야간 정치싸움의 한복판에 발을 들이게 됐다.
시작부터 부처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서로 700MHz 주파수 중 용도확정되지 않은 68MHz폭에 대해 각각 통신용, 방송용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도 서로가 유리한 쪽으로 줄을 서는 태도를 보였다.
6월 12일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통신학회가 공동 주최한 공동 심포지엄에서는 학계마저도 양분화된 모습을 보였다.2) 대체적으로 보편적 시청권에 기댄 공익성, 글로벌 정세와 유용성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의 싸움이었다.
심화된 진영싸움에 결국 700MHz 주파수 용도결정은 원점으로 회귀했다. 9월 30일 미래부와 방통위는 700MHz대역 주파수에 대한 효율적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양 기관 공동으로 연구반을 구성하고 10월 4일 킥오프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3) 두 부처가 손을 잡았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앞서 수많은 검토가 이뤄졌음에도 또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었기에 전진보다는 후퇴에 가까웠다.
이 가운데 양 부처는 UHD방송추진협의체를 통해 UHD 방송 활성화를 위해서는 700MHz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통위는 이에 따라 ‘UHD 방송 종합 발전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지상파는 UHD 방송을 위해서 700MHz 대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맹공세를 펼쳤다.
2014년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새롭게 취입하면서 700MHz 주파수 중 이동통신용으로 우선배정한 40MHz폭에 대한 용도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상파 UHD 서비스를 위해서는 재난망 20MHz폭을 제외한 모든 대역을 방송용으로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
최문기 장관을 이어 미래부 수장으로 임명된 최양희 장관은 이와 관련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주파수심의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올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두 부처의 수장이 또 다시 갈등의 길로 빠져든 형국이었다.
결국 미래부와 방통위는 다시 손을 잡았다. 촤관급 정책협의회를 구성키로 했다. 방통위 상임위원과 미래부 차관을 중심으로 주파수 할당과 UHD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의회를 마련했다. 또 다시 700MHz 주파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4년 10월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700MHz 주파수 정책을 꼬집고 나섰다.4) 700MHz 재난망 활용을 계기로 다시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에 돌입해야 한다는데 주된 주장이다. 대체적으로 지상파에 700MHz 대역을 할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었다.
업계와 정부를 넘어 정치권이 가시적으로 정책 수립에 개입하게 된 것. 이같은 움직임은 11월 11일 개최된 700MHz 대역 용도 관련 공청회’에 더욱 표면화됐다.5)
공청회는 중요 정책 사안에 대해 심도 깊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다. 하지만 그 자리는 마치 국정감사를 방불케 했다. 여야 정치권이 정부를 대상으로 호통과 질책만 계속해서 쏟아냈다. 심지어 “예, 아니오로 답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말을 가로막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참다못해 한 학계 관계자는 대화를 하려고 나선 자리에서 질문만 쏟아낸다면 정부가 아닌 오히려 정치권이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소신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 욕설까지 난무했다는 정황도 의심됐다. 원하는 답이 나올때까지 계속된 질의에 패널들도 지켜만 갔다.
정부는 소신을 지켜갔다. 국무조정실 주파수심의위원회는 11월 14일 우선적으로 재난망 20MHz폭 우선 분배를 확정했다.6) 남은 대역은 88MHz폭은 2015년 상반기 심의위원회 상정을 목표로 활용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국회 미방위는 주파수 소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가 공동할당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통신과 방송에 각각 할당하자는 대안이었다. 다만, 주파수는 파편화될수록 그 가치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 역시 이같은 결정에 아연질색했다. UHD도 이동통신도 최소 50~60MHz대역폭이 필요했다. 국제 추세에도 맞지 않았다.
정부는 또 다른 대안을 들고 나왔다. 2015년 5월 19일 국회 미방위 주파수 소위원회에 나선 미래부와 방통위는 40MHz폭을 이동통신용으로, 24MHz폭은 지상파에 주되 나머지 대역을 EBS DMB 서비스에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일명 ‘4+1’ 대안이다. 물론 모두에게 외면받는 대안으로 전락했다.
국회는 또 다시 정부를 압박했다. 이번에는 EBS를 포함해 지상파에 700MHz 주파수를 몰아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영성과 공공성을 지킬 수 있도록 국회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게 이유였다.7)
결국 700MHz 주파수 향방은 업계도 아닌, 정부도 아닌 국회가 결정했다. 또 다시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국회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었는지, 아니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또는 전세계 흐름에 규합했는지, 아니면 갈라파고스에 빠진 헛발질인지는 향후 UHD 방송이 어디까지 효용성 있게 주파수를 활용하는가라는 미래 청사진에 달려 있다.8)
이와 달리 당시 주파수 소위원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국가 재원인 주파수를 낭비할 수도 있었지만 이를 바로 잡아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할당이 가능하게 됐다며 서로 공을 돌렸다. 당시 주파수 소위원회는 조해진 위원장(새누리당)과 전병헌, 최민희 의원(이하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속해 있었다.
정부는 7월 27일 제3차 주파수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미래부가 상정한 700MHz 대역 주파수 분배안을 심의 확정했다.9) EBS를 포함한 지상파 4사의 UHD 5개 채널인 6MHz폭씩 30MHz폭을, 이동통신용으로 40MHz폭을 분배하는 안으로 결정됐다. 주파수 분배표 고시는 행정예고를 거쳐 8월 개정이 완료됐다.
무려 약 7년간 옥신각신하며, 원점 회귀만 수없이 되풀이했던 700MHz 대역 용도활용이 결정된 순간. 이 판단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미래에 알 일이 됐다.
1) 정책브리핑, 주파수 영토대국 ‘모바일 광개토 플랜’ 추진, 2012. 1. 2.
2) 김현아 기자, 학자들이 만났지만 700MHz 주파수 '방송-통신' 대리전, 이데일리, 2013. 6.12.
3) 김문기 기자, 700MHz 주파수 향방, 해빙기 위한 공동 사투 시작, 아이티투데이, 2013. 9.30.
4) 정미하 기자, 미방위, '700㎒' 대역 배분 놓고 공방전 전망, 아이뉴스24, 2014.10.13.
5) 이호연 기자, 정부 “700MHz 재난망, 아태지역 기준에 따라야”, 아이티투데이, 2014.11.11.
6) 채수웅 기자, 재난망 700MHz 주파수 할당, 정부안으로 확정, 디지털데일리, 2014.11.14.
7) 채수웅 기자, 국회, 지상파 일편단심…“700MHz 전부 UHD방송용으로 써야”, 디지털데일리, 2015. 5.19.
8) 정윤희 기자, 700㎒ 세계 첫 방송할당… 전문가 “개탄할 일”, 디지털타임스, 2015.7. 6.
9) 허준 기자, 방송-통신 나눠쓰는 700㎒ 주파수 분배안 '확정', 아이뉴스24, 2015. 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