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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1. 2023

농심 고구마깡 -1

-소설가가 요양보호사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불과 몇 년 전, 1년 4개월간 요양보호사로 살았다. 

하우스푸어 시절이었다. 

집을 나서기 10분 전, 그 10분 동안 무엇이든 글을 썼다. 

그 기록은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 글 재산이 되었다. 

얼마 전, 그때의 어느 기억이 떠올라 순식간에 원고지 50장을 메웠다.

가슴 아픈 기억이었지만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 시절을 보낸 내가 대견스럽다. 




 얼마 전 집 앞에 큼직한 슈퍼가 문을 열었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밤늦도록 불빛이 환한 가게였다. 고객은 보이지 않는데 가득가득 쌓여있는 상품들. 슈퍼에 가서 몇 바퀴를 돌다가 나도 모르게 농심 고구마깡을 집어 들었다.


  TV를 보면서 아삭아삭 과자를 먹는데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나는 왜 내가 농심 고구마깡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는지 알고야 말았다. 오늘은 영하 8도! 정오가 지난 시각인데. 금싸라기 같은 햇살이 온 누리에 펼쳐져 있는데.      


  아침 여덟 시 어귀에 언제나 길을 나섰던 작년의 이맘때가 떠오른다. 집을 나서기 전 조금이라도 여유의 시간이 있으면 그것이 그렇게도 아까워 글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어 했던 시절이었다. 겨우 십 분이나 이십 분 정도의 짬이 어찌나 소중하던지. 

  두툼한 코트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시간에 글을 계속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이었으므로 당연히 추웠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걸었다. 지저분하게 변한 눈 더미와 얼음이 반짝이는 길을 딛는 나의 발도 금세 얼어가고 있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날 선 바람이 뺨을 가르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정류장에 서 있었다. 앞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차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빼고 저 멀리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오는지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틈을 내어 몇 줄의 글을 쓰고 서둘러 길을 나서는 나의 일과는 앞으로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은 슬펐다.      


  어르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거의 언제나 십분 전 아홉 시였고, 숨을 고르며 벨을 누르는 시각은 어김없이 9시였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일층 현관의 게시물을 읽으며 시간을 맞추었다. 

  가끔 4층의 어르신을 돌보는 다른 요양사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음에도 만날 때마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편하게 말을 놓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초리가 무례한 여자였다. 일상의 순간마다 생각을 입히는 것은 때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참고 넘어갔다. 


  벨을 누르면 작고 아담한 체구의 딸이 문을 열어주었다. 어르신의 딸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 언제나 머리에 루프를 말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잠옷차림이었다. 

  집안은 언제나 고요했다. 나는 TV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그 집이 참 좋았다. 정말 이상한 일은 어르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르신을 꼭 끌어안고 인사를 한 후 제일 먼저 TV를 켠다는 것이다. 내가!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딸과 사위는 물론이고 어르신조차 거의 TV를 보지 않았다. 길에서도 들릴 만큼 커다랗게 거실이며 안방이며 TV를 틀어놓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이전의 어르신 댁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어르신은 거의 말이 없었다. 이것 역시 이전 어르신 댁과 정반대였다. 


이전에 보살펴드렸던 어르신은 여든세 살 된 치매 할아버지였다. 여든두 살 된, 같이 사는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면서부터 내가 다시 문을 나설 때까지 쉬지 않고 말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연속극의 여주인공에서부터 스쳐 지나간 모든 상황을. 나는 네 네 하면서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가끔 묻기도 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눈빛이 쓸쓸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바투 다가앉아 이야기꾸러미를 풀어내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집안 통틀어 나 뿐이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늘 고개를 할머니 쪽으로 돌리고 할머니의 하소연, 넋두리, 슬픈 인생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갔다.  나는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맞장구를 쳐주는 것.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는 것.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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