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요양보호사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부엌은 물기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단 한 번도 설거지거리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르신만 사용하는 욕실도 마찬가지였다. 물을 쓰는 곳인데 물기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어르신을 목욕시킨 후에 젖은 몸을 닦아드린 젖은 수건으로 세면대, 변기 주변, 욕조의 가장자리, 타일 벽과 바닥까지 한 방울의 물기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닦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 어르신의 목욕 도우미는 힘들었다.
나는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힘을 쏟아야 했다. 결국 나의 몸도 땀으로 온통 범벅이 되었지만 내 몸을 이곳에서 씻어도 되는지, 어르신 목욕까지만 요양사의 일이므로 욕실을 사용할 권리는 혹시 없는 것은 아닌지 몰라 포기했다. 나는 끈적끈적한 몸을 견디면서 이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요양사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결정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팔 개월 동안 그 집을 드나드는 동안 나의 마음의 약속을 거스른 날이 두 번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 어르신 옷을 입혀드린 후, 내 몸에도 물을 끼얹었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고 샤워기 밑에서 몸을 씻는데 두려웠고 어쩐지 무섭기까지 했다. 드디어 샤워가 끝나고 물이 똑똑 떨어지는 샤워기를 걸대에 걸어놓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뻐근해진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속의 어떤 것이 폭발할 것처럼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여전히 가슴을 두 손으로 꽉 누른 채, 벌거벗은 채 한참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놀랐다. 나는 일할 때는 슬픔이라는 감성을 많이 제쳐두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어르신 댁의 욕실이 정말 부러웠다. 그 무엇보다 목욕을 마칠 때까지 균등한 온도로 물이 나오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사는 집의 보일러는 너무 오래되었고 낡아서 온수 버튼을 누르면 한참 뒤에야 겨우 따스한 물이 나왔는데 급작스레 미친 듯이 데일 것처럼 뜨거워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얼음물처럼 차갑기도 하면서 두서없었다. 때문에 샤워기를 들고 순간순간 소스라치면서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던 것이다.
앗 뜨거 와 앗 차거를 반복하면서도 마실 물조차 없는 끔찍하도록 가난한 나라의 여인들을 떠올리면서 이게 어디야, 이만 해도 어디야, 하면서 감사했다. 하지만 어르신 댁 욕실로 비교 대상이 달라지니 가끔은 불행해졌다. 나도 한 시간씩 온수를 틀어도 언제나 균등한 온도로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거처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곳은 어르신 댁처럼 언제 틀어도 아무리 오래 틀어도 늘 균등한 온도의 온수가 나왔다. 최신 열병합 시설이 구비된 중앙 집중식 난방 온수 체계이어서 가능했다.
나는 샤워기 밑에 서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조금만 더 음악에 대한 실력이 있다면 이렇게 편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기쁨을 가스펠로 만들어 나의 충만한 행복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다.
레버를 돌리면 딱 그만큼의 온도가 높고 낮아지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이사한 후 만난 오랜 친구에게 머리를 다 감도록 몸을 다 씻도록 같은 온도로 온수가 나오는 경이로움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는데 친구 말에 의하면 그 말을 할 때 나의 표정은 천하가 다 내 것이라는 제왕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