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2022 리뷰 및 평론입니다
크리스와 토니는 창작 활동을 위해 유럽 예술 영화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노년을 보냈으며 그의 영화 5편을 찍은 배경인 포뢰섬으로 떠난다. 포뢰섬은 많은 예술가들이 찾는 장소다. 크리스와 토니도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디자이너, 예술가, 작가, 영화감독 등 거장 베르히만이 사랑했고 창작 활동을 했던 그 장소에서 자신들도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도달하는 장소인 것이다.
포뢰섬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감독은 크리스와 토니가 서로 사랑하지만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각자의 가치관과 글은 다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이것이 크리스가 삶을 대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크리스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포뢰섬에 도착한 크리스는 그곳 관리자들과 만나 잉그마르 감독의 영화 외적인 생활을 듣게 되면서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에게 갖고 있던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은 6명의 아내와 9명의 자식을 뒀으며 육아와 가정 일에는 철저하게 소홀했다. 크리스는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감독의 기대치 못한 현실에 실망감을 느끼지만 남편 토니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베르히만 감독이 육아까지 담당해야 했다면 그만큼 훌륭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누구나, 모두가 가는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녀만의 독특한 길을 찾으려 한다. 토니는 베르히만 감독의 삶을 돌아보는 가이드 코스로 포뢰섬을 체험하지만, 크리스는 GV 도중 극장을 나와 포뢰섬에서 나고 자란 한 대학생을 만나게 되고 그만이 알고 있는 베르히만 감독의 흔적과 포뢰섬 그 자체를 경험한다. 크리스의 경험이 창작을 위해 영감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의 모습에 가깝다.
지금은 관광 코스가 된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에 나왔던 집에 대해 토니와 크리스는 다른 경험을 한다. 토니는 편하게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해 가이드가 안내해 주는 설명을 듣는다. "영화 속에 나왔던 그 집은 외벽만 지은 것이고 사실은 세트 촬영이었어요. 지금은 그 벽도 허물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뒤늦게 그 집을 찾아 나선 크리스는 그 집을 쉽게 찾지 못한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그 집은 이미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에게 베르히만 투어 템플릿을 보여주며 집을 찾는다고 질문하자 그들은 거부감을 드러내며 모른다고 말한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려 흠뻑 젖어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토니에게 이야기하는데 토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설명해 준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은 독특한 구성으로 영화를 전개했다. 전반부는 크리스와 토니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 뒤 중반부는 크리스의 페르소나인 에이미와 조셉을 만들어 낸다. 에이미와 조셉은 크리스가 창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나리오의 주인공들이다. 크리스가 토니에게 들려주는 스토리 속 에이미는 크리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추측할 수 있는데 영화 후반부 크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에이미에서 크리스 자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에이미와 같은 옷을 입고 일어나는 크리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크리스의 현실과 크리스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가 뒤섞이면서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매력적인 결말로 끝난다. 크리스는 토니에게 자신이 하는 창작 활동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자기 복제는 싫지만 글을 쓰는 것이 피를 토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다"
토니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쓰지 말라고 말하지만 크리스는 글을 써야만 한다. 반면 토니는 이미 성공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글을 쓰는 것에 막힘이 없고 자신만의 방식을 이미 찾았다. GV도 성공적이었으며 그를 좋아해 주는 관객들도 있다. 크리스는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그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을 갖고 있지만 그를 사랑한다. 크리스가 베르히만의 사생활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갖던 환상이 깨졌듯, 크리스는 몰래 토니의 창작 노트를 펼쳐보고 그 안에 담긴 성적인 낙서들과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그의 내면을 본다. 그동안 그는 그녀에게 창작 노트를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토니 또한 환상으로 존재했다. 그녀가 그토록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 에이미를 통해 알 수 있다.
에이미는 친구의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간다. 그녀는 결혼식에 입을 옷을 들고 갔는데 가진 옷이 흰색 드레스밖에 없어서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하다.
"흰색인지 미색인지 사실 헛갈리는데 사실 어떤 사람은 미색으로 보기도 해서 흰색은 아닌 것 같아"
친구들의 조언처럼 아주 다른 색 옷을 사거나, 빌리거나, 처음부터 불편할 일이 생기면 그 요소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에이미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토니에게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중에도 크리스는 반복적으로 특정 요소들을 선택하지 못한다.
"시간대가 8월 말이나 9월 초여도 괜찮고 여름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
흰색인지 미색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태도로 글을 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사랑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셉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낀다. 에이미는 조셉의 곁을 맴돌면서 조셉이 관계를 확정 지어 주기를 바란다. 계속해서 근처에 머물면서 마음을 표현해도 애매한 태도의 조셉과의 관계를 이어가지도 끊어내지도 못한다. 결국 조셉이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에이미는 무너진다.
조셉은 현재 크리스와 토니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페르소나로 해석할 수 있다. 에이미와 조셉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들어간다. 크리스와 토니가 포뢰섬으로 들어오는 것과 유사한 설정이다. 에이미는 조셉과 처음 느꼈었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려 다시 시작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조셉은 이미 다른 연인이 있어 그녀의 마음을 받아 주기 힘들다. 토니는 자신의 일을 위해 크리스를 남겨두고 잠시 포뢰섬을 떠나고 조셉 또한 에이미를 남겨두고 말없이 떠난다. 에이미는 끝내 조셉에 대한 마음을 접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들어와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열중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의 마음을 대변한다. 토니가 섬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가 함께 한다. 토니와 아이 중 크리스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아이다. 토니의 캐릭터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삶과 유사해 보인다. 그는 남성이며 유명한 감독이고,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며 인정을 받는다. 실제로 토니는 육아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의 말처럼 창작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르히만이 6명의 아내와 9명의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 이 영화의 감독 미아 한센-러브가 여성 감독이라는 사실은 유의미하다.
우리는 <베르히만 아일랜드>를 통해 한 여성 창작자의 현실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크리스의 갈등 대상은 토니가 아니라 그녀의 내면과 현실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고통, 자신에게 마음이 떠난 것 같은 남편, 흰색인지 미색인지가 중요한 자신의 성향,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육아에 대한 고민 등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그녀 자신을 이룬다.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공간, 촬영장, 촬영이 모두 끝난 여유 속에서 진정 편한 잠에 빠질 수 있다.
포뢰섬에 대한 환상은 예술의 환상과도 같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는 거장이 남긴 이미지, 선입견이 포뢰 섬을 가득 덮고 있으며 원주민들의 삶과 인간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실제적인 삶이 담겨 있는 섬이기도 하다. 대 감독의 영향력과 뜬구름 같은 환상을 걷어내고 크리스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포뢰섬 자체를 느끼며 자신의 작품에 도움이 되는 영감을 얻기를 바라는 유일한 사람이다.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실제 그의 작업을 존경하는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관객들은 그의 흔적을 기대하고 영화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구름 같은 환상을 걷어내고 이 영화 한 편을 독립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개봉: 2022.08.04
장르: 멜로/ 로맨스/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독일, 멕시코, 브라질, 영국/ 113분
감독: 미아 한센-러브
주연: 빅키 크리엡스(크리스 역), 팀 로스(토니 역), 미아 와시코브스카(에이미 역), 앤더스 다니엘슨 리(조셉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