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스트 앤 본 Rust & Bone> 2013 리뷰
스테파니는 범고래 조련사로 일하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다. 한편 알리는 무일푼으로 아들과 함께 누나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생계를 위해 클럽에서 가드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일하는 클럽에서 스테파니를 도와주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두 캐릭터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며 상호 보완한다. 알리는 생존에만 관심이 있는 강인한 육체를 가진 남성이다. 복싱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고, 키가 크며 체격이 건장하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에 쓰레기 통을 뒤져 얻은 음식을 아들과 같이 먹고, 일하는 직장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과 관계를 갖는 등 본능에 충실한 인물이다. 먹고살기 위해 길거리 싸움판으로 뛰어들었으며 감성보다는 이성,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남자다. 1차원 적이며 편견이나 차별이 없는 성격이다. 그의 성격이 스테파니가 그를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한다.
스테파니는 범고래 쇼 훈련사로서 강한 생명체를 조련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갈구한다. 알리와 스테파니의 첫 만남은 클럽에서였는데 스테파니가 어떤 남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며 소동이 일자 안전 요원이던 알리가 와서 현장을 정리한다. 손목을 다친 알리의 치료를 위해 스테파니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녀의 남자 친구가 알리에게 꼼짝도 못 하자 그의 비겁함을 비웃는다. 범고래는 바다에서 깡패로 불리며 최강자로 군림하는 포유류다. 그런 범고래를 조련하고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두 다리를 잃게 되지만 그럼에도 다시 범고래를 찾아 교감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에피소드는 스테파니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알리는 강한 육체를 가졌지만 감정적으로 모자라며, 스테파니는 두 다리를 잃음으로써 신체적으로 매우 연약하지만 사고를 극복하며 강한 정신력을 얻게 된다. 극 중 가장 큰 상실을 당하는 인물은 스테파니로 그녀의 상실이 영화 전반에 작동해 그녀가 극을 이끌 것 같지만,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인물로 알리를 선택했다.
오히려 더욱 삶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를 가진 것은 스테파니였다. 스테파니는 두 다리를 잃게 된 후 우연히 알게 된 남자 알리에게 연락해 그에게 물리적으로, 성적으로 도움을 갈구하고 그에게 의존하는 한편, 그에게 삶의 이유를 부여하는 보조적인 인물이다. 스테파니가 사고를 당한 뒤 알리에게 전화로 연락을 한 동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만남으로 알리는 스테파니에게 무심할 정도로 그녀를 전과 다르지 않게 똑같이 대한다. 그의 그런 무심함이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그는 그녀에게 '출장(성관계를 하자는 신호)'을 제안한다. 스테파니는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무심함이 오히려 그녀에겐 안정을 준다.
물론 오해를 사기도 한다. 알리는 스테파니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섹스 파트너가 있었다. 그에게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에게 스테파니 역시 파트너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그녀가 뻔히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먼저 나가면서 인사까지 한다. 그 행동이 스테파니에게는 관계를 헛갈리게 만들고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묻지만 알리는 따분해한다. 알리의 말과 행동으로 내면이 요동치는 것은 스테파니지만 캐릭터의 역할이 보조로 제한되면서 이야기의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두 사람의 관계는 스테파니가 의족을 차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면서 역전된다. 길거리 싸움에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 반쯤 죽어가던 순간 차에서 당당히 의족을 드러내며 걸어 나오는 스테파니의 모습을 지켜본 알리는 각성 하며 상대를 때려눕힌다. 그의 파이트머니를 책임져주던 남자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스테파니가 그 일을 대신 맡게 되고 그녀는 알리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지위에 오른다. 그의 삶에 스테파니가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편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이 누나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원인으로 작동하면서 알리는 아들을 남겨둔 채 집을 떠난다. 누나, 매형 심지어 스테파니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러다 아들을 잃게 될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추락하고 그 순간 스테파니의 부재를 절실하게 느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생존에만 본능적으로 반응하던 그가 그녀에게 스며든 것이다.
영화에는 두 인물이 사회와 부딪히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알리는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구한다. 그의 아들 샘은 집도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알리가 새로 시작하게 되는 일은 매장 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이는 방범의 목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감시를 목적으로 한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발생하면 고용자는 몰래카메라에 녹화된 그들의 사사로운 잘잘못을 들춰내 해고할 목적이었다.
"누가 법 다 지키면서 돈 버나?"
결국 알리의 누나는 알리 때문에 해고당한다. 반면 스테파니는 보험의 혜택을 누리며 두 다리를 잃어도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집도 나오고, 보험이 적용 가능한 의족을 지원받아 두 다리로 일어선다. 이 역시 두 인물의 대비되는 상황을 통해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해야 할 통로를 마련한다.
영화는 삶과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알리에게 생존이라는 갈등을 만든다. 감독은 스테파니라는 인물에게 두 다리를 절단시키는 위기를 만든다. 감독은 그녀에게 장애를 주고 삶의 의지를 꺾는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삶의 좌절부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까지 훌륭한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그녀를 통해 삶의 의지, 포기할 뻔한 삶의 살아가게끔 하는 어떤 동력, 용기, 자존감 등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스테파니는 알리의 존재로 인해 타인의 눈치, 사회적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의 투박한 삶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의 곁에 머문다. 그를 이용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를 컨트롤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와 함께 동행한다. 그렇게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사랑은 부차적일 뿐이다.
감독은 왜 제목을 <녹과 뼈>라고 지었을까.
인간의 손 뼈는 27개로 이루어져 있다. 침팬지의 손 뼈는 5개가 더 많아 32개이다. 뼈는 한 번 부러지면 완전회 회복되지 않는다. 싸움을 할 때면 손에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데 그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
이는 영화의 원작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캐나다 작가 크레이그 데이비스의 단편집 <러스트 앤 본>에 실린 두 작품 <러스트 앤 본>과 <로켓 라이드>를 보고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됐다. 단편집에 실린 두 작품을 함께 어울려 각색했다. <로켓 라이드>의 이야기 주인공은 다리를 잃게 되는 남성 고래 조련사이다. 이 남성 캐릭터를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스테파니로 각색한 뒤 다시 스테파니를 소설 <러스트 앤 본>의 스토리 안에 넣어 두 주인공이 만나는 형식으로 영화 <러스트 앤 본>을 각색했다. 즉 기존에 각각의 두 단편에 있던 주인공을 한 명의 성별을 바꾼 뒤 하나의 세상에서 만나게 한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로 시작하는 이유는 영화의 전체 스토리 구조는 단편 <러스트 앤 본>을 따르고 있으며 그 안에 새로운 인물 설정을 단편 <로켓 라이드>에서 차용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만 빌려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밸런스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알리의 생존 문제이지만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더 몰입하게 되는 인물은 스테파니가 된다. 영화의 결말로 달려가면서 알리는 자신의 생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지 못한다. 아들을 구하려다 주먹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완전한 해결보다는 그 상태로 지속되는 삶을 영이 영화의 결말이다. 손이 부러졌고, 복싱을 할 때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럼에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알리가 가족을 떠나게 되면서 혼자 남겨진 스테파니는 어느 순간 영화에서 사라져 버린다. 의족을 차게 되면서 다시 두 발로 서게 되지만 알리에게 의존적인 인물이 된다.
알리가 사랑을 고백하며 영화는 끝난다.
무명의 복싱 선수 알리를 다룬 단편 이야기 <러스트 앤 본>은 복싱 선수의 녹이 슨 뼈, 닳고 닳은 주먹이라는 이미지가 맞아떨어진다. 감독이 두 인물을 함께 엮을 수 있었던 두 인물의 교차점은 사랑보다는 상실과 생존에 더 가깝다.
개봉: 2013.05.02
장르: 멜로/ 로맨스, 벨기에/ 프랑스, 120분
감독: 자크 오디아르
주연: 마리옹 꼬띠아르(스테파니 역),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알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