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내가 아직도 그 개새끼를 사랑한다는 데 있다.
개의 새끼는 사실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데, 그게 욕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최대의 욕이 개새끼이므로, 그를 개새끼라고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사랑스럽다는'점에서까지 그는 개새끼를 닮았다.
나는 그 개새끼를 정말로 사랑했었는데, 예를 들어 그가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는 것도 할 일없이 바닥에 누워있는 것도 사랑스러워했다. 언젠가부터 키우는 동물의 먹이를 챙겨주듯 내 밥을 챙겨줘야 된다는 일말의 의무감을 느끼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토마토와 오이를 편식하고 과일을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내 생각에 가끔 장바구니에 과일을 담아 오는 것도 사랑스러웠고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을 우리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도, 내가 오면 싱긋 웃여주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직장에서 있었던 짜증 나는 일을 털어놓는 것도 오늘 본 뉴스나 유튜브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내가 어딘가 가고 싶거나 무엇인가 먹고 싶다고 하면, 일단은 그러자고 말해주는 것도 좋았다.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애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사랑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그 애의 사랑이 시들해져 나를 별로 안아주지 않았던 그때도 나는 그를 '귀염둥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 호칭은 때로는 자기가 되거나 여보가 되거나 사랑둥이가 되거나 여러 가지 변형이 있었지만 정확한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그를 불렀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내 식사에도 내 일과에도 관심이 없었고 우리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법이 없었다. 내게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오늘 본 콘텐츠의 이야기를 재잘대지도 않았다. 그리고 잘 챙기지 않았던 가족 생일이나 가족 휴가, 직장 회식이나 친구들과 약속 같은 것들이 나와의 일정보다 우선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내가 사랑하는 애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기 몇 달 전부터 늘 울적했는데, 어쩌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헤어지는 날, 지난겨울에 다녀온 여행사진은 그래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실은 그것도 그가 스스로 보내줬다기보다 보내주지 않아 내가 한 번 더 요청을 했더랬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더 휘젓고 싶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몇 글자 더 적어본다는 그의 메일 내용은 알알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의 말투는 아주 적당히 예의 바르고 아주 적당히 재수 없으며 아주 적당히 냉정했다. 덕분에 그 메일이 나의 마음을 좀 더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그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으리라 생각한다. 몇 줄 되지 않는 메일의 내용은 꽤나 알찼는데,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아니, 요약이라기보다 내 마음에 박힌 말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나도 너랑 헤어진 이후 나도 너무 심란하고 외로워서 잠들지 못한 날도 있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매일 울며 잠들고 울며 깼다. 아무리 늦게 자도 이른 새벽 눈이 떠지는 바람에 늘 퀭한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가만히 있으면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매일을 그렇게 살았는데 너는 '그런 날도 있었구나.' 싶었다.
문득 이럴 거면 더 빨리 헤어졌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일기에서 오래전 헤어질 결심을 했던 때 쓴 편지를 찾았다. 그때 헤어졌더라면 우리 모두 지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그 말이, 정말로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더 나은 삶'이라니.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그는 그렇지만 헤어지지 않았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럼에도 내가 없는 '더 나은 삶'을 상상했다는 것 자체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해. 메일에 답장하지 말아 줘.
내가 보낸 카톡을 읽씹하고 구태여 언제 읽을지 모르는 메일로 답장한 그의 마지막 문장. 내가 미련 없이 떠난 사람을 붙잡아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도 붙잡고 싶었던 그였는데, 이 문장을 읽으니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가 후회했으면 좋겠다.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이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가 매일 밤마다 질질 짰으면 좋겠다. 나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는 아주담담하게 나를 잊어갈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나쁘다. 개새끼.
p.s. 어느 날 그 개새끼의 카카오프로필에 음악이 추가되었다. 그런 걸 하는 위인이 아닌데 무슨 노랜가 싶어서 봤더니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였다. 어쩜. 내 사랑스런 개새끼는 한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의 그런 점조차 나는 사랑했었는 데,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냐 싶다.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