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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달 Sep 29. 2024

신혼집인 줄 알았는데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

  3년 전쯤 도시 변두리의 집을 분양받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덜컥 당첨이 되자 기분이 얼떨떨했다. 꼭 당첨되겠다는 일념으로 신청한 건 아니었으나 다들 축하해 주길래 그냥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 정말로 입주할 때가 다가오자 결정해야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사전점검을 하고 가전을 새로 사고 가구를 이삿짐센터를 예약하고 꼭 필요하거나 혹은 나의 작은 만족을 위해 이러저러한 시공들을 알아보러 다녔다. 날짜를 잡은 것도 예식장을 예약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당연히 이 집이 우리의 신혼집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애는 입주박람회며 백화점이며 나를 잘 따라다녀주었다. 내가 기대한 그럴듯한 프러포즈는 없었지만 그 애는 종종 바쁜 시기가 지나고 이사를 끝내면 식장을 알아보러 가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애가 몇 달 전부터 자주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그럴 때마다 우리가 다투는 것도. 데이트 대신 이사준비를 하러 다니는 것도. 어쩐지 우리 집에 오는 날이 줄어들고 전화통화가 짧아지고, 카톡의 이모티콘이 줄어드는 것도- 우리 관계의 지나가는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사가 끝나고 서로에게 여유가 생기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우리 관계의 단단함을 믿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넓은 집에 혼자 남겨져 있다.


6년간의 세월이 어떻게 그렇게 한 두 마디 말로 끊어지는지

한 두 달의 서먹함으로 우리 관계의 끝을 그릴 수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집이 생겼지만, 그가 없는 집이 무슨 의미일까-

6년 간 그는 내게 돌아갈 자리였다.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나를 안아주었고, 멀리 방황하다 돌아온 나를 반겨주었다. "이사해서 좋겠다.", '집에 넓어져서 좋겠다.'는 지인들의 말에 그저 웃었다. 


어쩌면 나는 집이 생긴 것이 아니라, 집을 잃어버린 것 아닐까?



혼자서 시간을 쓰는 법도 밥을 먹는 법도 잠을 자는 법도 잊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 고장 나버렸는데

그 애는 괜찮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나는 너를 잃고 텅 비어버렸는데

어쩐지 너는, 나를 놓고 가벼워진 것 같아 보인다.


누군가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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