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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달 Oct 16. 2024

오늘 유난히 네 생각이나

우유가 아니라 참치캔이 상할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오늘 유난히 네 생각이나.


  연휴를 허전하게 보낸 건 아니었어. 친구들이랑 캠핑을 가서 신나게 놀고 가족들이랑 제사도 지내고 식사도 했어. 정말이지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씻어야지 생각했었지. 이 정도면 네 생각이 날 틈이 없어야 하잖아. 그치?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난히 네가 생각이 나더라.

이런 연휴의 끝자락이면 우린 꼭 함께 시간을 보냈었잖아. 나는 돌아가는 길에 너에게 전화를 하고, 너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뒤에 몇 가지 음식을 챙겨서 우리 집으로 왔지. 배가 너무 부르지만 편안한 곳에 꼭 붙어서 같이 영화 같은 걸 보면서 한잔 했을 것 같아. 난 잘 못 마시니까. 결국 내 몫까지 네가 마시겠지만. 그리고는 산책을 하며 달에게 소원을 빌었겠지?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좋은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같이 사는 게- 그게 꿈이었어. 네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 게 늘 섭섭했지만, 그래. 네가 아니더라도. 그러고 싶다고. 늘 그렇게 빌었어. 너는 알까? 그렇게 소원을 빌면서도 - 그게 너였으면 생각했다는 걸. 


  캠핑을 준비하면서 집에 있는 것들도 조금 챙겼어. 떨어졌다며 네가 사 온 소금. 핫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해서 샀었던 메이플 시럽. 네가 집에서 가져온 치즈. 할인한다고 한 박스나 사놓은 숙취해소제. 그런 것들. 사실 우리 집에 있는 음식들의 대부분은 다 네 손길을 거친 거였지. 난 음식에도 요리에도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 친구들이 술도 잘 안 마시면서 집에 숙취해소제가 왜 있냐고 묻더라. 치즈가 정말 정말 맛있어서- 더 네 생각이 났어.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세상에는 사랑 노래 아니면 이별노래뿐이라며 친구와 불평을 하면서 [좋아서 하는 밴드]에 '유통기한'을 들었어. '우유가 상할 때쯤'이라니 우유는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서 어림도 없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참치캔'정도는 되어야 할 거라며 웃었어. 참치캔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너를 떠올리며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우유가 상할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낯선 이의 전화번호
지나는 차 번호판
우유의 유통기한까지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너와의 의미 있는 숫자들, 날짜들이
언제까지 날 두근거리게 할까

[좋아서 하는 밴드] '유통기한' 中


  세상 모든 것이 다 너를 떠올리게 해. 청명한 달이, 해지는 노을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불어오는 바람이, 어쩐지 슬픈 기분이. 해지는 게 너무 예뻐서 멍하니 보다가 작년에 같이 봤던 화산이 떠올랐어. 여행을 정말로 많이 다녔지만, 나 그때 정말 '감동'이란 걸 했었거든. '내가 살아서 활화산을 보다니!' 라이트형제에게 감사하고, 존재함에 감사하고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고 함께 하는 너에게 감사했어. 그러고는 너에게 우리 이렇게 오래오래 같이 여행 다니면서 좋은 거 많이 보자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 별거 아닌 말 같지만 나 그때 정말이지 진심이었다? 그 순간 너랑 함께 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가족들이랑은 올 겨울 떠날 가족 여행 이야기를 했어. 내가 지금까지 함께 여행해 본 사람 중에 네가 가장 여행 소울 메이트였는데. 나 이제 누구랑 여행하지? 제사를 지낼 때는 언니네 가족들이 같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 이게 가족이구나.' 싶더라. 그 뒷모습이 너무 부러웠어. 언니랑 나이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내 나이 때 둘째까지 낳았던 것 같은데. 이번 명절에는 가족들이 이상할 만큼 나한테 결혼이나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아. 참 그게 고마우면서도 너무 슬퍼. 


  아직 내 세상은 온통 너야. 괜찮은 척하려 했지만, 온통 너야.

  너는 뭐 하고 있을까. 가족들이 북적이는 날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뭘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벌써 다른 사람이 생겨서 다른 사람과 산책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지는 않을까. 얼마 전에 네 번호를 개새끼라고 저장했는데, 너한테 또 연락을 하고 싶어서 휴대폰을 들었다가 그 단어를 보며 한 번 더 참아야지 다짐해. 사실은, 연락한들 네 마음을 흔들어 놓을 자신이 없어. 네가 연락도 받지 않으면 난 또 한 번 구차해질테니까. 또 한 번 이별할 테니까.


넌 진짜 나쁜 놈이야.

네 말대로 넌 날 버리고 도망간 나쁜 놈이고 비겁한 사람이야.







차 안에서 [스텔라장]의 '어제 차이고'가 흘러나왔다.


잘 지내라던 그 말 꼭 새겨들을게
근데 넌 못 지냈음 좋겠다 난 꼭 잘 지낼게
그래 이새꺄 솔직히 나 아직 너 좋아해
근데 날 위해서 꼭 독해지도록 할게
쓰레기 같은 놈 진작에 버릴 걸 그랬어
친구들이 놀지 말랄 때 들을 걸 그랬어
애써 질질 끌면서 썩은 연앨 했어

[스텔라 장] 어제 차이고 中


L과 간 콘서트에서 스텔라장은 이 노래를 부렀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이 노래를 만들 때쯤 자기가 좀 허세에 차 있던 중 2병 같았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이 노래는 그녀의 경험을 담았으리라. 그녀는 조금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여전히 어제 차인 기분에 사로잡힌 나는 노랫 속 화자가 허세에 차 있거나 중 2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을 방금 겪은 사람의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감정과 분노 섞인 슬픔을 허세라고 하고 싶지도, 중 2병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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