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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달 Oct 13. 2024

언니, 그런 사람이 결혼을 했겠어요?

결혼 선택하지 '못 한' 사람들이 받는 눈초리에 대하여

  6년 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한 순간에 결혼 '안 한'이 아닌 '못 한' 30대 중반이 되었다.


  매일을 울며 깨고 울며 잠들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30대의 미혼녀의 지인들이 어쩔 수 없듯, 만날 때마다 '대체 이 언니가 언제쯤 결혼을 결심하는지' 궁금해하던 친구에게, 내게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내가 그와 오래 만났던 것을- 가끔 섭섭하고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지지부진하게 만남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언니가 헤어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 말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내가 너무 사랑했었나 봐."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라니. 단어를 고르고 고르며 말을 하는 편인데 그렇게 어려운 단어를 이렇게 망설임없이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제서야. 


  사실은, 반년 전쯤 그 친구가 결혼할 때 L과 함께 가서 부케도 받았더랬다. '부케를 받고 6개월 안에 결혼 못하면 3년간 결혼 못한다던데' 하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고 싶었지만 지금 내 꼬락서니를 보면 영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못내 서글퍼졌다.


"나 그래도 6년 동안 그 애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울었는데... 요즘은 웃을 일이 없어."

"언니, 이제 울게 하는 사람 말고, 웃게만 하는 사람 만나요."


  남편과 연애하는 동안 감동해서 우는 것 외에는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내게도 그런 인연이 찾아왔으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예전 직장에서 만났던 이상한 직장동료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하나하나가 어이없는 성희롱이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이러쿵저렇쿵 하다가 그 사람의 결혼 유무를 묻자, 친구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언니,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었겠어요?" 


  친구의 말에 어떤 악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쩐지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언제고 한 번은 저런 말을 듣는 순간이 오게 될까? 오랜 연애 끝에 결혼과 한 발 멀어지고 나니,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혼을 '못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직장에서건 사회에서건 제 몫을 제대로 하고 개념을 잘 챙기면, 그런 말을 들을 일 없을 거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나를 부러 오해하는 사람도, 또 기어코 비틀어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언젠가 누군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그런 말로 지칭하는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너무 비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결혼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러니까 아직도 결혼도 못했지."
"걔가 결혼을 했겠냐?"


혹은


"그런 애도 제 짝을 만나 결혼했다니, 진짜 짚신도 짝이 있나 봐!" 같은 말.


  결혼이 인생의 잘 살았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 없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런 말들 속에서 꿋꿋하게 마음을 지켜낼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저런 말들에 낙오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건 결국에는 나도 결혼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임을 말하는 거겠지 싶다.


'그까짓 게 뭐!'라고 대차게 외면할 수 있다면 

이렇게 서글픈 기분이 들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혼도 못했지." 같은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결혼, 까짓것 안 해도 상관없는 건데?"라고 진정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고 혼자서 굳세게 살아갈 자신이 아직은 없다. 



언젠가 정말로 나를 울리지 않고 웃게만 만들어 줄 영원한 내편, 영원한 내 단짝이 나타날까? 


그가 아니라면, 내 짝은 어디 있을까?

영혼의 단짝인 줄 알았던 L을 잃고 나니 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혹여나 그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을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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