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를 드리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재능 없는 효녀흉내를 내보려 애쓰는 요즘이다.
엄마는 밥은 잘 챙겨 먹었느냐 오늘은 뭐 했느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 이런 말들을 하시다가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너하고 싶은 거 다 해.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눈물이 났다.
별말 아닌데 전화기 너머의 엄마와 나는 서로가 왜 우는지 알았다.
"엄마도. 엄마도 지금부터라도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아팠다.
암이란다.
하루 3끼 꼬박꼬박 건강하게 챙겨 먹고 새벽이면 운동을 나가고 남들보다 일찍 잠드는 아빠는 우리에게 언제나 세상 건강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할머니 근처로 오겠다며 잘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우여곡절 끝에 하던 사업이 나름대로 잘 굴러가 사장님 소리 들으며 남들만큼 넉넉하게 생활하고 있는 아빠였다.
큰 욕심 없이 자기 자리에서 올곧게 사는 사람.
살갑거나 푸근하진 않아도 믿음직하게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하던 사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20년 정도 하던 사업을 접고 '늦기 전에 모아둔 돈 쓰며 엄마랑 같이 놀러나 다니면서 살려고' 했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단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암에 걸려도 곧 잘 이겨내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쉬엄쉬엄 나들이 다니며 맛있는 거 먹고 손자손녀 재롱이나 보며 말년을 보내실 줄 알았다.
아니면 적어도 2-3년은 더 병상에라도 누워계실 줄 알았다.
아빠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잦은 연가에 꼭 가야만 하냐고 직장상사가 물었다.
"저 사실 너무 무서워요. 이렇게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을 까봐 너무 무서워요."
그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3개월 동안 8년 직장생활동안 쓰던 것보다 더 많은 연가를 썼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돌아가며 곁에 있으려고 했다.
코로나 탓 같았다.
백신을 맞고 한 달 뒤부터 아프기 시작하신 것도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면회도 안 되는 것도
병실에 보호자 출입이 어려운 것도
다 아빠의 죽음에 기여한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원망해 봤자 아빠가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님을 알지만 더는 백신을 맞고 싶지 않았다.
아- 사람은 이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구나
언젠가 나도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너는 -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엄마 말에 눈물이 맺힌다.
그 말이 그렇게 아픈 말인 지 몰랐다.
2022.1.1.